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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tic Eagle Oct 12. 2023

'실존'한다는 것의 무게

살아있는 모든 순간은 이미 충분하다. 인지하든 못하든,.






같은 진동 소리라도

내가 부여한 정체성의

이름으로 뜨는 메세지의

중력은




 달랐다








같은 문구라도

내가 의미를 부여한 대상이

하는 말은

울림이





달랐다








모든 것은

하다보면

잘 하게 된다고 했을






가벼운 만남에 능숙해지는

거부감을 느끼는 이유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나 모든

만남의 무게는

지극히

주관적이어야 했다











보고 싶다고

여겨지는 사람이 있지만







보고만 싶어해야 한다는

도 깨닫고 있는 중이다.








어쩌면

그 사람이 보고싶은 건,




그 사람이 나에게 보장하는

어떤 좋은 느낌이었고,








같은 사람을

주기적으로 만나지만





어떤 감정은

다시는 그 상대에 의해

 보장받을 수

없을 수가 있었다.











모든 건.

그렇게







순간적으로

결정됨이 약속한



영원의




영원한 소멸

그리워만 해야

하는 지도 모르는 방식으로










나의 젊었던 얼굴도

주름이

그려지고 있었다.













어떤 누구의

유일한 존재

될 수 없음이 주는



이미 섭섭한 감정이






커피

한 스푼을 더 태우고




위스키

잔의 샷을 하나

추가한다





여기요,

한 잔 더

주세요..










그럴수록

사람들과는

성공적으로 멀어진다










멀어져도

섭섭하고

가까워도

때로는 섭섭한 게







사람인지도





,







많은 감정의

늪에 있지만

글로 담아내기에는 역시





역부족이다










돌릴 수 없는

순간들의

기억

기적

기록








위험한 순간을 겪었고

누군가 도와줘서





살아서 눈을

떴다









살아있음이

실감이 나지 않은 채

출근 기록부에

이름을 찍어 출근한 지도








4일 째가 되었다







모든 순간이 새롭다





내 것이 아닌 것 같다










가족이 아닌

누군가가 살려놓은

인생을

사는

기분







이건

목숨을 걸고 할 수 있는

경험인 지도 모른다








때로는 아픔이 나를

벼랑으로 내몰지만






벼랑 아래에서

무심하게

지나가는 산책하는

사람에 의해서

삶이






 연장되기도 했다













한 걸음 디디지만

나는 뒤로 가는 것 같다








당연하고 평범한

이 스치는 모든 순간이

지금 내가 가질 수

없었을 수가 있고





지난 달 받은 월급을

쓰지도 못하고

남기고 갈 뻔 한 순간






..







타인에게 부여한 어떤

내 감정도






내가 실존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았다







거울 속에

내가 있는지

챙겨보는 중이다



내가 저기 있다







얼마나 어떻게

생겼든

누가 살려둔 이








Breath








단 한 순간도

한 사람도

중요하지 않지 않은






살아야 하는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그날 눈을 떴을 때

살아 움직일 수 있던

장면을

잊을 수 없다







두려운 순간이었다.

살아있음과

어떤 방식으로 눈을 떳음이

주는 불안, 두려움, 정적, 적막.









기억의 상실.















어쩌면 가장

잃고 싶지 않은 건 본인이다



보이는 것이 타인이라서




관심을 외주하는 순간에도

우리가 사랑하고

살리고 있는 건

본인인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잠시

한눈 팔았을 때,






누군가는

나를 발견하고

나를 살려 놓았다.








기억도 나지 않는

누군가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난 살아있는 중이다

저번 주랑 다르지 않게

살고 있다




이 한 주가

없었을 수가 있었다







그 날 눈을 뜨지 않았으면.







어떤 하루도

평범하지 않고

어떤 한 주도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 순간에도

많은 것은 평범해야 했다




평범함의

이름으로 어쩌면

많은 특별함은

간직되는 지도 모른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은





괜찮다고 치부했던 순간이

많이 겁이 났었음을 말해주는 지도 모른다







뒤늦게 흘리는 눈물

도 살아 있어야 가능했다





울든, 웃든,

삶은 그럴 수 있기에 특별하고

죽음은 그런 고생하지 않아도

되기에 축복인지도 모른다.









그날 눈을 뜨지 않았다면,

그런대로

나는 그 순간이

내 것인듯

물 흐르듯

의식을 그 순간에 맡겼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충분하다. 나는.













엄마 아빠는

딸이 살아있는 일상을

평범하게

살아계시는 중이다.







지난달 카드값 이야기

뭐 먹을 지에 대한 이야기

날씨 이야기

커피 이야기 등등.









내가 여기 없었을 수가

있었다.





이처럼



가장 평범하고 지루한

프레임은

잃고나면 구하기마저

힘든 프레임이 된다.











엄마아빠에게는 평범한

주말이지만

나한테는

1분 1초가

거짓말같다.

살아있는 것이 맞는지

계속 확인중이다.







여전히 실감나지 않는다.




그렇다 어쩌면.



어떤 것에 대한 많은 걱정과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

평범하다고 여겨지겠지만,

그 평범함 자체가 이미

우리가 추구했던 삶의 이루어짐이라면







우리가 평범하게 지내는 모든

순간은

충분히 즐겁도록 의무화 된

상태인 지도 모른다.











많은 익숙한 것들이 낯설다.








지나치게 지루한

이 시공간에

내 의식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과하게

충분한 순간인지에 대한

생각이 든다.






내가

누구의 연인일 수 있었는지는

결코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부모님에게는

미치도록 소중한

존재였으니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아직도, 그리고 영원히.

그 순간은 나에게 비밀로 묻혀 있다.

의식이 없었으니까.









다만,

버젓이 남았다.

다시 주민으로 등록된 여인만. 이렇게.

여기서.





존재하는 중이다




수시로 눈물이 흐르지만,

어떤 면에서는

내가 많이 외로웠다는 것과

일련의 상실감을 혼자 간직하면서 많이

힘들었다는 것과

어떻게든 살아있다는 것이

한없이 감사하다는 것.









모든 것이

나를 울리지만




눈물이 부끄럽지는 않다.

저렇게 비가 보란듯이 내리듯

나도 눈물을 보란듯이 내리는 중이다.







다시 내가

웃을 수 있을 때.





그 때 어느 누구를 보고

웃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나는





저 거울 속

나이들어가고

이마에 주름이 지고

흰머리를 획득해가고

주근깨가 더 많아지는

저 사람이면

충분하다.






저 사람이면

된 것 같다. 이번 인생은.

이 것이 최선의

기록인 것 같다. 내 삶에 대한.








사무치게 슬프지만,

내 삶을 애도하는 과정에서

다시 한번 나는 다른 아이덴티티를 향한

여정을 계획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죽음인들,






충분히 삶에 대한 많은 추억을

이미 남긴 것 같다.






이제 어느 순간도 평범하지

않는 행복한 불안 속에

살아있어야 하는 것이

두렵지만 나는 이미 이 두려움을

감당하고 있는 것 같다.

꽤 능숙하게.

그리고 꽤 서툴게.





'자기(self)'야,

내가 많이 사랑해.


:-)




있을 때

잘 하라는 말도

맞지만,



있는 순간들이

어쩌면

그저 충분한 순간일 뿐인지도

모른다.




잘 하고 못 하고는

추가적 옵션인 것 같다.









몇 달 전

어느 호텔에서 잠을 깼을 때

맞은 편 과 이어진 다리에서

누군가가 자살을 해서

구조대원들이

그 사람을 끌어 올리는 것을 목격했다.




그날따라

나는 호텔이 정해놓은 누울 자리의 반대편으로

머리를 두고 잤다.




내가

그대로 잤으면

내가 그 방향대로 잤으면

그 사람을 살릴 수 있었을까.




커텐은 치지 않고 자기 때문에

밖을 보려고

앞에 테이블을 다 치우고

누웠는데

나는 반대로 잤을까라는

생각에

한참을 죄책감에

있었다.






아직도

그 다리에 매달린



얼굴은 다리를 구성하는 차디찬 시멘트 벽을

향한 채

매달려있던 그 실루엣을

잊을 수 없다.




차마

어느 누구에게도

말로 해내지 못한

그 날의 기억을

기록하는 중이다







그의

삶과 등지고자 하는

의지가 나를

돌려눕혔을까.





많은 생각은 스칠 수 밖에

없었다.






삶.





살아있음.






살아있다는 개념.






삶이라는 개념에

생활을 채워가는 레퍼토리가

아직도 나에 의해 영위되는 중이다.





아직도 실감나지 않는다.





덕분에 어떤 대상도

필요 이상

실감할 수 없는 장점과





나조차 실감할 수 없는 단점

혹은 장점을

살아내고

있다.








'존재'의 개념과

'실존'의 무게를 감당하는

것은

그 영역을 달리하는 방식으로

한 사람의

삶의 과제로 주어진다.





아직도

살아있음이 실감나지 않는다






그러나 매 순간

살아있음이

가장 흥미롭고 즐거운

일이었음을 깨달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존재하는 아기를

귀엽게 바라볼 수 있듯이

나의 행동 하나 하나가

나에 의해서

기록되고 익혀진다.





어쩌면

본인.을 위해

본인에 의해

본인을 향해 산다는 것이

가장 지루하지만

가장 의미있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결국 아무리

어떤 언어로

얼마나 가까운 사람에게

감정을 풀어내든

다 전달해내지 못하는 영역만

어떻게든 살고 있는

기분이니까



것을 부정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는 방식으로

비로소

나를 만난다




이보다

더 살 수도

덜 살지도 못하는

어느

즈음에서



그리고

실존한다는 것의 무게가

단지

내 몸무게뿐만은 아니라는 것도

함께 깨닫는 중이었다.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ㅜㅜ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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