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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tic Eagle Mar 20. 2024

직장의 향기

'본의 아니게 죄송하지만, 죽을 죄는 아니잖아요.'

직장에서는 많은 일이 

일어났지만


실제로 

'내' 귀에 들어오는 사건은


철저하게 


'내가 상관해야 할 일'에 


국한되는 것만 같았다. 



'가십'이라는 행위를

하지 않는 이상. 







어제까지 오던 동료는 


오늘부터 오지 않았고,



5년을 같이 일했든,


2년을 같이 일했든,


1년을 같이 일했든,


1일을 같이 일했든,



같은 정도의 '이벤트'로 마무리 되어야 하는



'만남과 헤어짐'의 




의미에 대한 생각을 한다. 




인사의 의미가 있는가. 




서로를 '다시 보지 않기'로 

취급하며




교차하는 '지점'의 

어색한 침묵은





합의하에 일어나는 듯 하지만

꽤 불편한 것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감정인걸..




같은 맥락으로 


신입의 그 화사한 '인사'는



딱 일주일만 지나면





'무표정'으로 변하는 패턴도





인지는 하지만

약간의 허탈한 웃음을

품게 한다. 






'딱 일주일 걸리네, 진짜..


Welcome to the 직장 world..'








급하게 친해져서

사악하게 멀어진 

'동료'와도

같은 층에서 같은

공간을 공유하며

지내야 하는 사건을 견디며



그 풍파를 겪고도

멀쩡한 척 살아야 하는 구간이

지나면



그 나를 옥죄고

괴롭히던 '기억'들도



'내'가 버려야 

'내' 가 숨쉬고 살아진다는 것을



엄마한테 고자질하지 않고

깨달으면서



흰머리도 많이 생기고

주름도 이빠이 생기고

조금 못생겨진 얼굴을

거울로 마주하며



이러기 위해

'직장'을 구해서

'월급'에 자존심

구겨가며

동료와 비밀전투를 해가며

결국 얻어낸 '휴전'인가 




라는 생각이 스칠 때

거울을 보며



구겨진 얼굴과 

암묵적인 No look 인사를 한다. 




'많이 늙었네 저 아이도'..




그리고



그렇게 

치열하게 

얻어낸 '휴전'을 기점으로 



회사도 

나에게 '휴식'을 

요구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잃은 것이 있다면

얻은 것도 있는 법이다. 




얻은 것은 보이지 않고

월급을 모은 것도 썩 많은 것 같지도

않고,




하지만 

저 미간의 인상은 제대로 

선명해지는 



저 이마의 주름은

제대로 깊어지는 사건에 대한



생각이 스치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에스프레소를 한 잔 더

내리러 

부엌으로 달려간다. 






꾸준히 생각하며 뭣하냐.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사건들이 더 많아지고, 



그리고 그 사건들로부터

꾸준히 멀어지는 것의 

아름다움도



알아가는 나이에 도달한다. 







아이들은 

어떤 순간에는 나에게 

전례없는 빛을 주지만



어떤 순간에는 

전례없는 빚을 안긴다. 



어찌 그러한 존재가

아이들에게 국한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한다. 




어른같아 보이는 사람들도

같은 정도로 나에게 

'의미'했다. 







3년 차 직장인인데, 


1개월 차에 하던 실수를 

또 하는 것이 보스의 눈에 띄면,



나도 내 자리를 정리할 

마음의 정리 정도는 해야 했다. 




떠나야 할 때는 없지만



떠남을 결정해야 할 순간은

반드시 오고야 말았다. 






떠날 생각을 하니



막상



누르고 살기로 결정한 것들이

봄의 따스함과 함께

피어나오며



다시 나에게 

음소거 했던

컴플레인을 하기 시작한다. 




그만두려 할 때마다

하던 생각들이 다시 나오며

내 인내심을 시험한다. 







마음을 먹는다는 것의 힘을

알아가는 중이다. 




오른 연봉과 협상하기 위해

내 자아의 '불평 불만 접수'를

보류하는 동안




어쩌면 


내가 돈을 빌미로 

괴롭힌 것이 

본인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실제로 

월급으로 얻은 삶과 경험한 것들이

더 많았다. 






월급으로 누릴 수 있던 

삶의 시야와 시각도 

무시할 수 없이 값진 것이었기에 






자아가 하는 

'이기적인' 불평이야말로 어쩌면






'수신 거부' 할 일인지도 

모른다. 









다른 종류의 '경험'을 얻기 위해

희생해야 하는 '경험' 과 '니즈'가 있었다. 






얻기 위해

잃어야 하는 것도 있는 

과도기에서 




죽음으로 가는 길에 

살아 있는 모든 순간은 

죽음이라는 개념에 상대한

위대한 경험이 아닌가 

위대한 '손실'이 아닌가. 

위대한 '이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얼마남지 않은 출근 준비를 한다. 





아니,




고유하고

위대한 오늘 '하루'를 

만끽하고자 한다. 








그리고 출근길에는 

늘 세 번 째 커피가 

손에 들려 있다. 







그 손이 점점 떨리기 시작하는 것을 

시그널로





하루 세 잔의 커피를 




두 잔으로 줄여보는 것이






좋지 않냐고 나에게 조심스럽게 묻는다. 




나는 단호하게 

무언의 대답을 한다. 






'응 안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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