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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tic Eagle Mar 23. 2024

상대적 즐거움 추구권

내 욕을 해서 그대가 즐거우시다면 얼마든지 ;) 

보고싶지 않은 장면이 있다. 



보면 불필요한 

상상을 하게 되고

순간적으로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하게 하는

두려움을 선사하는 장면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장면들은

예기치 못한 시공간에서

마치 내가 계획한 것마냥



정확한 시나리오로 

연출되는 놀라움을 

선사했다. 




못 본 척 지나가야 하는

숱한 장면들은 

그렇게 나에게 




이 세상에서 내 입지가

어디인지를 

미묘하게 알려주는 방식으로 




그렇다고 해서




그 일련의 시그널이 내 인생을

진실로 구성할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내 생각 회로가





내 인생을 

그렇게 구성하고 있음이 

더 맞는 표현인지도 

모른다. 





순간적으로 혈압은

올라가는데,




평정심이 얼마나 

내 무표정 속에 드러났는지



혹은 

내가 느끼는 불안이

오히려 더 많이 드러난

무표정이었을까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나간 순간이 

무색하게 




나는 그 장면에서 벗어나서 



현재




내 방 모니터를 마주하고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어느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 

시공간은 

여기에 버젓이 있는 방식으로 




온갖 방해의 요소를 가진

직장에서 당분간은 

벗어나 있는 중일 것이다. 






내일 정도까지는 

그럴 것이라는

아주 확실한 '예보'가

있다. 








이 지구가 내 것이 아니고

이 직장도 내 것이 아니고

이 지역도 내 것이 아니고



심지어 그 사람의 개인의 고유한

시공간과 몸 또한 내 것이 아니기에 



인정해야 하는 것이 있었다. 




직장에서 

나를 뒷담화 하며

재미를 추구할 '권리'가 

그들에게는 '반드시' 있음을 이해하는 순간




잠시의 평화에 머문다. 




나를 욕하든 

하지 않든





그렇게 해서 

즐겁게 인생을 영위하는 

모습이 보기가 좋았다. 




적어도 내 앞에서는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기에 




그들에게 그러한 행복 추구권이

있듯이




나에게도 행복 추구권이 있었다. 






적적한 퇴근길




즐겨찾는 영상이 

업로드 되어 있으면





즐겁다. 

좋아요부터 먼저 누르고 

보는 것들이 있다.





나에게도 재미있는 삶이

있음을 알듯이



나와 호의적인 타인이든

적대적 타인이든





그들에게도 

재미 추구권이 있음을

이해한다. 





타인의 평화와 자유를 

인정하면서 비로소 

나에게도 






내 인생에 의해 '존재'하고

내가 추구하는 재미에 의해 '상대'하고

내 웃음에 의해 '삶'을 하는 

'공간'과 '시간'이








보장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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