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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tic Eagle Apr 08. 2024

2124년에는 내가 없겠지만
오늘은 내가 있었다는 기록

2024.04.08. I was Here


해운대의 밤의 

향연이 가신

아침

그 특유의 

낯섦과 어색이 섞인

공기가 

내 방 아침 공기의 자격으로 

입장한다. 




매일 사는 

시공간이지만

낯선 향기가 

비집고 들어올 때가 있다. 




그 때는

거부감보다는 

반가움이 더 섞여 있는

기분이

드는 것 같다. 




타인의 나를 향한

마음과 관심의 정도가

공간의 밀도를 결정하고

감정의 채도를 결정하며

시간의 중력을 

더하기도

하고, 

'빼기도' 하는 

듯, 




어제의 관성이

데려온 오늘이지만

어제와 같이 

살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면



매일 경험하는

'오늘'이라는 사건은

항상 고유한 

값을 지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생각을 한다. 




뻔한 하루는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달력을 보는데 

2124년에는

반드시 내가

살지 않을 것을 

기억하게 된다. 




다음 개기일식이든

월식이든,




그 올라가는 연도의 

숫자가 커질수록

아. 내가 없겠네.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면서

내 남은 인생에 대한

이성적 집착을 하게 

된다. 






늘 주어지고

늘 있을 거 같은

하루 하루가 

없다고?





내가 없어도 

이 지구는 

생명에 의한

생명을 위한

존재를 하게 된다는 것. 





내가 있어도

지구에 큰 이바지는

하지 않은 듯 보이지만, 




내가 없어도 

잘 흘러갈 세상에 대한

이성적 질투에 

사로잡힌다. 





나도 살고싶은

인간이구나 싶다. 






괜히 살기 싫다고 부리는

투정은 누구를 위한

언행인지에 대한

생각을 한다. 





방문할 사람도

없고

나에게 오려는 사람도

없는 그 

시간과 공간은

움직이지 않았다. 





나의 뒤척임에 의한

공기의 흐름만

바뀌며



어느 누구도 

내 이름을 부르지 않을 때, 

혼자 깨어나

알람에 의한 

강제 기상을 하고 

출근을 위한 

움직임을 하며, 





구성되는 

내 인생에 대한

생각을 한다.






외롭다는 정의 보다는

이렇게 삶을 구축하는 것이

기본이고 시작이라는 것을 

이해하며




애써 침착하며

나를 보살피는 중이다. 





그렇게 나를 보살피며

타인을 보살핀다는 것에 대한

개념 또한 

이해하는 중이다. 





그렇게 나를 보살피며

결국 나를 궁극적으로 보살필 

사람은 본인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중이다. 







2124년에는 

나는 없겠지만, 





2024년에는

내가 있었다는 것을 







기록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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