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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tic Eagle Apr 11. 2024

인생은 관중이 무수한 관중 없는 독무인지도

그리하여 모두가 추는 춤은 비밀스럽지만 아름다운 것임을 안다.

내 속삭이는 혼잣말을

나 아닌 상대방이

듣고 반응을 해주는 경험은



꺼져가는 자아의 불씨에

산소를 불어넣어 준다. 



자아라는 

개념을 먹이고 재우고 사는 

것이 

어쩌면 사회적 인간으로 

존재하는 최소한의 

감정 노동은 아닌지에 

대한 생각을 하며




노동을 통해 

어느 정도는 

자신을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보호할 수 있는 

입장을 유지하며

지낼 수 있는 듯 보였다. 




자존심은 허락하지 않지만

자아는 자신을 알아봐주는

'경험'을 놓치고 싶지 

않은 것 같다. 




때로는 

일단 지내는 데 

경제적으로 문제가 없다면




자아는 

경험에 관대해진다. 




물론 좋은 경험만

항상 보장되는 것은 아니었다. 





존재하는 것은 

어느 순간에는 불안을, 

기쁨을, 

죄책감을, 

불편함을, 

평온함을 

선사한다. 




삶의 흐름의 

일부이자

전부로 존재하면서 




느껴야 하는 감정은

거부권을 행사한다고 

안 느껴지는 것도 아니었고, 




너무 몰입한다고 해서

특별한 보상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보상의 의미에 대한

생각을 한다. 




의미를 생각하는 것이 

주는 보상에 대한 생각을 한다. 




보상에 대한 생각이

손실에 대한 인지를 

미리 생각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생각이 완성이 되기 전에 

살아내야 하는 

사회적 사건들이

나를 구성하는 것 같은

순간에도 




'개인' 이

추구하게 된 것들이

결국

'개인'의 

삶을 구성하게 

될 것이었고, 





타인을 이해할 수 없음을 

깨달았을 때






자신에 대한 

타인에의 바운더리가 생긴다. 





기분 나쁜 순간이

현재도 이어질 필요가 없었다. 




현재는 

현재 시선을 맞추는 

자와 추는 

춤에 집중해야 하기 위해

존재하는 

귀한 '시간'이기에, 





그것이 결과적으로 

혼자 맞추는 

거울과의 시선이라도 






충분히 가치한다는 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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