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이 고수하던
삶의 래퍼토리가
타인의 삶의 진행과의
교차점이 생긴다는 것은
가장 어색한
어떤 것인 방식으로
때로는
멈출 수 없는
그 특정 장면에서
경험할 수 있는
전례없던
감정에
삶의 초점이
옮겨가기도 했다.
때로는
긍정적 결과가
보장되어야
시도할 수 있는 어떤 것보다
결과의 보장 없이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그 모든 감정을
놓칠 수 없을 때가 있는 것 같다.
엄마의 허락도
아빠의 허락도 필요없이
혼자 개척하는
그 미지를 향한
내딛음.
그 모든 순간이
자존으로 귀환한다.
자존.
감으로.
여전히 어떤 종류의 보호는
필요한 방식으로
괜찮다면
초라한 나이지만
외로움에 세상을 등졌던 나이지만
정말 조심스럽게
함께하고 싶은
장면이
어느 순간 나타나기도 하는
것 같다.
어느 정도의
오류는 포함하고 있는
정의겠지만,
오류가 무시되는
감정의 확신이
있을 때가 있다.
평일 , 혹은
주말,
모든 시공간의
풍경은 항상
건들지 말라는
시그널을 주며
폰에 시선이 가 있는
사람들로 채워진다.
그러다
보면
어떤 아이는
신호등이 빨간 불인데도
횡단보도를 폰에 시선을 두고
걷는 방식으로
양쪽에서 오는
차들의 진로의 속도를
줄이게 한다.
그런 방식으로
삶을 개척하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때로는 표면적으로 지켜야
하는 어떤 것보다
소중한 것들을 위해
규칙이 무시될 수 있어야 함에
대한 생각을 한다.
녹색불이지만,
속도를 줄이거나 멈출 수 있고
긴급한 상황에서는
빨간불에서도
어떤 차는 움직여야 하듯
그 모든 룰 안에서
보장되는
더 중요한 것을 지켜야 하는 마음이
지킬 수 없는
규칙에 대한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