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민 Sep 30. 2015

흔들린 사진들에 대한 태도

조금 흔들리면 어때.






일상수필집 09 _흔들린 사진들에 대한 태도

- 그녀는 사진을 참 좋아했다. 셔터를 누르고 후회하는 법이 없었다. 그녀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흔들리고, 초점이 나간 사진들도 고스라이 간직하곤 했다. 그들도 그들만의 이야기가 있고, 마음이 있는 법이라며 종종 농담을 던지곤 했다.









'흔들린 사진 좀 지워라, 쓸데없이.'


S가 말했다. 함께 작년 여행 사진을 보고 있던 중이었다. 그녀의 논지는 그랬다.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사진을 용량 차지하게 두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라고. 그녀는 이미 형태는 일그러졌고, 시간은 지나갔고, 비슷한 사진을 그렇게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 굳이 그런 사진까지 가지고 있을 이유가 뭐냐며,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나를 타박했다. 그녀의 타박은 나의 모성애를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내 어린 자식이 구박받는 기분이었다. 자기는 사진 제대로 찍을 줄도 모르면서, 그녀가 듣지 못하게 나는 속으로 투덜댔다. 그리고 조금은 자신 있게(?) 그녀에게 말했다. '야, 흔들린 사진들에게 예의 좀 지켜라. 뭘 사진 가지고 그러느냐!‘     


나는 흔들린 사진을 소중히 여기는 편이다. 꽤 예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 계기가 있다. 제주도 행 밤비행기에서 야경이 예뻐, 카메라를 들어 셔터를 눌렀다. 셔터 스피드를 맞추지 않아 셔터 소리가 굉장히 느리게 났다. '처어어얼커어어컥' 아뿔싸! 속으로 실수를 감지했다. 비행기가 다른 방향으로 틀기 전에, 서둘러 셔터 스피드를 맞췄지만 실패했다. 결국 나는 그 비행기 안에서 제대로 된 야경 사진을 건질 수 없었다. 아이고, 망했네. 한숨을 푹 쉬곤, 카메라를 열어 찍은 결과물을 확인했다. 그런데 결과물은 생각보다 훨씬 더 운치 있었다.



사진을 찍으면서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이 있다. 사진을 찍으면 찍을수록 어렵다는 게 그 첫 번째다. 처음엔 카메라 용어와 조리개를 맞추는 게 어려웠다면, 지금은 어떤 것을 담아야 할지 혼란스럽다. 보는 사람의 관점마다 좋은 사진이란 게 다 다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사진은 어떤 공기를 담고 있는 사진이다. 물론 그 짧은 시간 동안, 시간보다 앞서 그 감정을 포착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두 번째는 사진은 사진가의 마음 밭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점이다. 사실 카메라 렌즈로 보는 세상은 두 눈으로 보는 세상과 썩 다르지 않다. 참 보통의 세상이다. 나는 그 평범함을 더 있어 보이게 찍어보겠다는 명분하에, 세상을 원하는 방식으로 크롭(crop)시킨다. 내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내 셔터도 일을 하지 않았다. 렌즈로 보는 그 보통의 세상은 철저하게 내 마음대로 움직였고, 그 편견은 꽤 고질적이었다. 갈수록 더 완벽한 구조를 추구했고, 사람들이 감탄할 사진을 만들겠다며 치기 어린 마음으로 친구들에게 종종 훈수를 두기도 했다.


그런 내게 흔들린 그 한 장의 사진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흔들린 사진은 그토록 내가 지키고자 했던 규율을 비웃듯이, 찢어버렸다. 흔들린 사진에겐 구도라든지, 스피드라든지, 주된 피사체라든지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냥 흔들린 세상 하나만이 그 조그마한 프레임 안에 덩그러니 남겨져 있을 뿐이었다.


규칙 없고, 주인공 없는 흔들린 사진 속에는 내가 그렇게 원하던 무언가가 있었다. 이십 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나는 꽤 초조했다. 친구 한 명은 어학연수를 끝내자마자 보란 듯 대기업에 취직했고, 우리 나이에 만질 수 없는 돈을 벌고 있었다. 내가 존경했던 선배는 졸업과 동시에 그 어렵다는 임용고시를 한 번에 붙었고, 엄마 친구 아들래미 녀석은 좋은 멘토를 만나 인생이 빛나는 일만 남았다. 그 사이에서 나는 딱히 뭔가 보여줄게 없었다. 취업 준비는 잘 되냐는 친구들의 말이 생선가시처럼 걸렸다. 그래서 나는 더 사진에게 집착했다. 이건 누구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니까, 여기서만은 내 올곧은 욕망을 풀 수 있으니까.



사실 그 흔들리는 사진은 내 모습이었다. 제주도행 밤 비행기에서 그 단순한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의 난, 도망가는 중이었다. 남들 다하는 취직도 못하고 있는 내가 너무 우스워서, 친언니 같은 사촌언니가 사는 제주도로, 언니의 육아를 돕는다는 핑계로 도망가는 중이었다. 그러다 흔들리는 사진과 만났다. 비행기에서 바라보는 D도시는 아름다웠다. 그토록 나를 쫓던 감정들은 어디에서도 보이지도 않았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도종환 시인의 시 한편이 떠올랐다. 그리고 나는 그 흔들리는 비행기에서 그 사진을 보았다. 그래, 뭐 사진 갖고 그랬냐, 쪼잔하게. 나는 항상 그렇게 흔들거리며 살면서, 하며 강퍅했던 그 마음을 나무랐다. 어쩌면 흔들렸던 것은 사진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세상은 그저 그 곳에 가만히 있었을 뿐이다. 흔들렸던 것은 당신이 아니었을 것이다. 가만히 있는 당신을 이렇게 담아버린 건, 온전히 나였다.


그 도망치듯 갔던 제주 여행 이후, 나는 여전히 흔들리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SNS 속 친구들과 나를 비교하기도 하고, 종종 그런 나를 미워하곤 한다. 딱 하나 달라진 것이 있다면, 아이고. 고작 마음이다. D도시의 야경이 흔들려 불빛이 흩어졌듯, 나의 흔들림도 어느 야경처럼 빛의 흔적이 남을 것이다. 속는 셈 치고, 그 흔들림을 인정해보기로 했다. 초점도 없고, 주인공도 없고, 흐리멍덩하여 명확하지도 않은 그 한 장의 흔들린 사진은 꽤 아름다웠듯이, 혹시 모르지. 나도 저 정도는 아름다울 수 있을지.


여전히 나는 흔들리겠지만, 뭐 조금 흔들리면 어떤가.

그 흔적 또한, 오롯이 또 다른 내가 될 텐데.











흔들린 사진에 대한, 주관적인 답글

/ 그 순간 흔들렸던 것은 당신이었을까, 나 자신이었을까.



1. 두 남자는 사람들 사이에서 열띤 토론을 하는 것 같았다. 11시가 넘어가는 시간에도 그들은 창문을 지켰다. 그들은 어떤 청춘을 보내고 있었을까.










2. 난 이 사진을 개인적으로 참 좋아한다. 달리는 차 안에서 찍은 스냅이다. 아마, 시장을 지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흔들린 이 사진에는 이상하게도 생동감이 느껴진다.









3. 주황빛 케이블카는 꽤 생생했다. 땅에서부터 이 언덕까지 단숨에 날아 올랐다. 꼭 한 마리의 주황색 새가 날아오는 것 같았다. 날개를 펼친 케이블 카는 꽤 근사했다. 그 뒤로 노을이 지고 있었다. 빨간 지붕이 더 붉어졌고, 주황 빛은 더 선명하게 빛났다.







4. 그의 운전은 서툴렀다. 처음 타는 차의 구조가 어색해, 몇 번이고 주차를 다시 했다. 차가 흔들린 만큼, 그도 불안했던 것은 아닐까.









5. 노란 오토릭샤를 보며 생각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어딜 그렇게 바쁘게 가고 있을까. 요리조리 차를 피해 빠르게 달리는 릭샤를 보며 궁금해졌다.









6. 여행을 하며 가장 부러웠던 것은, 나이가 지긋이 든 어르신들께서 배낭을 메고 여행하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엄마는 꼭 배낭 메고 꿈을 찾으며 살아, 하고.







7. 버스는 흔들흔들 자신의 길을 갔다. 흔들렸던 것은 사진인데, 버스가 비틀비틀 가는 것 같았다. 유난스럽게 힘들어 보였다.








8. 자, 사진 찍어줄게 서봐. 하지만 내가 다가오는 것을 알고, 친구는 자리를 피해버렸다. 뭔가, 서로의 사진에 피해(?) 주지 않으려는 그 찰나의 배려심이 고마웠다.







중국 <베이징>

9. 사람이 참 많았다. 사실 이 사진은 다른 사진에 비해 딱히 흔들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진은 흔들린 사진으로 분류되었다. 사진만 봐도, 내가 무엇을 담으려고 했는지 알 수 없었다.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할지 몰라 횡설수설하고 있는 사이에, 셔터를 눌렀다.






10.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나른하고 노곤하다. 그래도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글│ 청민  淸旻

사진│ 청민  淸旻




아마추어 작가의 말 │일상수필, 그 아홉 번째


흔들리는 사진을 보고 있으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 순간 흔들렸던 것은 피사체였을까, 아니면 내 마음이었을까.


하루에도 저는 몇 번씩 흔들립니다.

아주 작은 선택에도 갈팡질팡 합니다.


오늘은,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도종환 시인의 시 한편을 곱씹듯 읽어보려 합니다.

그리고 마음에 새겨보려 합니다.


오늘도, 파이팅입니다.

감사합니다.







<청민의 일상수필집 이어 읽기>

링크를 누르시면, 바로 이동합니다 :)


① 또 다시 돌아온 생일에 대하여 ☞ https://brunch.co.kr/@romanticgrey/12

② 11월의 마지막 파도 https://brunch.co.kr/@romanticgrey/3

③ 제주닭발과 언니 https://brunch.co.kr/@romanticgrey/16

④ 아빠는 돈이 없었고, 나는 부유했다.  https://brunch.co.kr/@romanticgrey/31

⑤ 안녕, 회색소녀 https://brunch.co.kr/@romanticgrey/43

⑥ 디어, h-언니  https://brunch.co.kr/@romanticgrey/42

⑦  상처받은 소녀에게 바치는 노래  https://brunch.co.kr/@romanticgrey/53

⑧ 결국, 우리도 그렇고 그런 관계  https://brunch.co.kr/@romanticgrey/46?m


매거진의 이전글 아빠는 돈이 없었고, 나는 부유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