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성산일출봉에서 보내는 청민의 감성 사진.
첫 번째.
하늘은 바다를 닮았다. 사실 둘의 차이를 잘 모르겠다. 어디서부터 하늘인지, 또 어디까지가 바다인지 종종 헷갈리곤 한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날씨가 썩 좋지 않을 때엔 그 둘의 경계는 더 모호하다. 가끔 멍하니 바닷가에 앉아 그 모호한 경계를 보고 있으면, 바다가 꼭 나를 부르는 것만 같다.
두 번째.
사방이 벽 같은 곳에서 나도 모르게 미운 말들과 오해하기 쉬운 행동들을 하게 된다. 사실은 내가 이런 것 때문에 그런 거야,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냐-라고 모든 사람들을 설득시킬 수 없다면, 결과의 모든 것을 아무렇지 않게 넘길 용기가 필요하지만, 나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못한 채로 남아있다.
그 밋밋한 마음으로 나는 이 작고 네모난 공간에 갇혀있다. 누구도 넘어오지 못하게 바리케이드를 치면서도, 누군가 넘어오기를 바라는 밍근함으로 남아있다. 몸도 마음도 열정적이지도 냉정적이지도 못하는 바로 그런 미지근함으로. 그 어느 쪽도 될 수 없을 바엔, 스스로의 기대치를 낮추는 것이 유일한 탈출구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세 번째.
푸른 빛은 사람 마음을 덩달아 맑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탁했던 공기를 정화시킨다. 어두웠던 내 마음을 환하게 비춘다. 딱히 들키고 싶지 않았고, 누구도 모를 거라 생각했던 마음이 갑작스레 드러난다. 푸른 빛은 뭐랄까, 부끄러움을 깨닫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네 번째.
성산일출봉에 오르며 몇 번이나 감탄했는지 모른다. 한국에도 이런 곳이 있구나, 한국에도 이런 경관이 있었어, 하며. 어쩌면 내 마음은 편견에 둘러싸여 있었을 지도 모른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외국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나라를 더 사랑하지 못했던 나의 얼룩 아니었을까. 이 언덕을 오르면서 생각했다. 이번 겨울에는 우리나라를 여행해 보아야지, 하고.
다섯 번째.
저 곳에 내려가 보고 싶단 생각을 했다. 저 곳에 내려가면 하늘과 더 가까워질 것만 같았다. 한 눈에 바다와 하늘 그리고 땅을 안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눈을 감고 그 거친 바람을 맞으며 상상했다. 하늘을 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하늘을 나는 새들은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갈까.
여섯 번째.
언젠가부터 생각이란 게 내 인생에서 줄어든 것 같다. 삶의 한 조각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감사해하던 나의 모습이, 어디론가 흩어진 것 같아 아쉽다. 열여덟의 나에겐 내 방 형광등 색깔을 궁금해하던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 덕분에 나는 풍족했고 도전받았으며 끊임없이 그리고 치열하게 나를 사랑할 수 있었다.
언제가 되어야 나는 온전히 내가 될 수 있을까. 이 초라한 시간이 지나면 나는 다시 열렬히, 나를 사랑할 수 있을까. 초라하면서도 풍족하고, 열렬하면서도 차분한 그런 날이다.
일곱 번째.
제주에는 높은 빌딩이 없었다. 그래서 하늘이 유난히 잘 보였다. 외국 같았다. 이래서 사람들이 제주 제주 노래를 부르는구나 싶었다. 하늘을 보고 사는 것이 언젠가부터 마음 먹어야 가능한 일이 돼버렸다. 기억하려 노력하지 않으면, 시간은 이미 흘러가 버렸다. 인생은 어쩌면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여덟 번째.
딱 한 달만 제주에서 살고 싶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생각하지 않고. 아마 제주를 찾는 많은 사람들이 그 생각을 한 번쯤은 다 하겠지.
아홉 번째.
다음에는 우도에 꼭 가봐야지, 다짐했다. 날씨 화창한 날에 가면, 그렇게 예쁘다던데. 물 속이 훤히 다 보인다고 한다. 나는 언제쯤 우도를 갈까 생각하다가도, 다음에 제주를 한번 더 올 기회가 생겨 흐뭇했다.
글│ 청민 淸旻
사진│ 청민 淸旻
아마추어 작가의 말 │일상수필, 그 열 번째
제주에 가고 싶습니다.
높은 하늘을 바라보며, 거친 바람을 맞으며
가만히 앉아 제주의 바다를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오늘 밤엔 제주 사진을 봐야겠습니다.
따듯한 저녁시간 되셔요.
감사합니다.
덧붙이는 말
+) 밍근하다 : 약간 미지근하다.
<청민의 일상수필집 이어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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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또 다시 돌아온 생일에 대하여 ☞ https://brunch.co.kr/@romanticgrey/12
② 11월의 마지막 파도 ☞ https://brunch.co.kr/@romanticgrey/3
③ 제주닭발과 언니 ☞ https://brunch.co.kr/@romanticgrey/16
④ 아빠는 돈이 없었고, 나는 부유했다. ☞ https://brunch.co.kr/@romanticgrey/31
⑤ 안녕, 회색소녀 ☞ https://brunch.co.kr/@romanticgrey/43
⑥ 디어, h-언니 ☞ https://brunch.co.kr/@romanticgrey/42
⑦ 상처받은 소녀에게 바치는 노래 ☞ https://brunch.co.kr/@romanticgrey/53
⑧ 결국, 우리도 그렇고 그런 관계 ☞ https://brunch.co.kr/@romanticgrey/46?m
⑨ 흔들린 사진들에 대한 태도 ☞ https://brunch.co.kr/@romanticgrey/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