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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민 Nov 18. 2015

아바다 케다브라!(Avada Kedavra!)

사랑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걸까.


좋아한다. 사실 그 말은 참 무서운 말이다. 친구들이 그 애를 좋아하냐고 닦달할 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아니라고, 아니라고 기를 쓰고 부인하곤 했다. 그 애를 좋아한다 말을 하는 순간, 그 모든 것은 사실이 되어 버릴까 두려웠다. 그 애가 좋다고 말하는 바로 그 순간, 생각으로 머물렀던 하나의 추상적 단어가 살아 움직이고 숨 쉬는, 현실적으로 힘을 갖는 진지한 생명체가 되어버리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랑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걸까. 몸의 모든 세포 하나하나가 그 사람을 향해 반응하기 시작하는 것은, 대체 언제부터일까. 그 사람을 처음 마주했을 때? 그가 나를 보고 웃었을 때? 그것도 아니면 다른 사람은 알아채지 못하는 숨어있던 나를 알아봐주었을 때? 그 시작이 어떤 행위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순 없지만, 사랑은 어느새 새싹을 틔우고 모른 척 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에 뿌리를 내리곤 했다.



정말 바쁜 날이 있었다. 내 앞에 놓인 이 손이 네 손인지 내 손인지 구분이 안 갈 만큼. 눈썹 휘날리게 뛰어다니던 그날 밤, 집에 와서 번져버린 화장을 닦아내려 손에 물을 묻히는 그 순간, 손바닥이 쓰라렸다. 생각보다 깊고 크게 손바닥이 베여있었는데, 피가 흐르다 못해 딱딱한 딱지가 그새 붙어있었다. 하루 종일 멀쩡했던 손이 그 상처를 보는 순간, 쓰라리기 시작했다. 악! 소리를 내면서 그제야 모아두었던 아픔이 폭발이라도 하는 듯, 나는 손을 부여잡고 화장실에서 빠져나왔다.


인식하는 그 순간 시작된다. 상처의 쓰라림도, 공복의 배고픔도 그리고 사랑의 시작도. 당신이란 사람을 인식하는 그 순간, 시나리오는 시작된다. 레디, 큐! 감독도 나, 연출도 나, 작가도 나. 내가 주가 되는 이 세상에서 당신은 꽤 중후한 배우가 되었다가, 인기 있는 귀여운 아이돌이 되기도 한다. 당신을 바라보는 나의 눈은 별이 되고, 또 다른 카메라가 되며, 그림자 같은 은밀한 스토커가 되기도 했다.


결국은 당신을 사랑하게 될 거면서, 꽤 오랜 시간을 당신을  부정하는 데 사용했다. 배우는 단지 아이디어를 낼 뿐, 흐름은 작가의 몫이었다. 그 순간의 나는 너무나 불확실한 존재였고, 너무나 작은 존재였다. 당신은 그런 나에 비해 꽤 대단해 보였고, 풍족해 보였다. 그런 초조한 마음으로 나의 눈은 당신의 손끝 움직임까지 포착했다. 나도 모르게 모든 신경이 당신에게, 당신의 호흡에 반응했다. 당신의 공기는 풍성하고, 나의 이 공간은 초라했다. 당신이 나에게 말을  걸어올 때면,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당신을 무시하는 게 아닌데. 그냥 당신이 좋아서, 당신을 너무 좋아하게 되어서, 그래서 나도 모르게 당신을 묵인하곤 했다.



인식에서 시작된 사랑도 이렇게나 강렬한데, 그 생각을 말로 하는 것은 또 얼마나 강력할 것인가. 그 사람을 좋아한다는 그 말은 마치 해리포터 영화에 나오는 ‘아바다 케다브라(Avada Kedavra)’ 저주와 같은 것이다. 되돌릴 수 없을 뿐 아니라, 그 누구도 저항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하다. 사랑은 저주가 아니고, 더구나 숨길만큼 부끄러운 죄가 아님을 알지만, 그래도......, 당신 마음이 내 마음과 다르면 할 수 없는 거라 치부하기엔 나는 용기가 없는 작은 사람이지만, 당신은 당신 있는 그대로 빛나는 거대한 사람이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그 애를 좋아하냐는 친구들의 말에 답하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를 실타래의 굴로 집어넣어, 그 엉킨 실들을 풀라는 당신의 작업에 응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는 것을 지난 짝사랑에 미뤄 추측해 보았을 때, 누구보다 더 잘 알기 때문이다.


사랑은 부정하려 할수록 분명해지고 선명해진다. 마음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그 누구도 그를 붙잡을 수 없다. 숨어있던 모든 사랑의 세포들이 나를 가만 두지를 않는다. 내가 너희에게 그 어떤 잘못을 그렇게 했기에, 너흰 내 마음 같지 않단 말인가! 내가 그렇게 고얀 통치자였는가 회의감이 들기도 하지만, 딱히 누구의 탓을 할 수 없다. 어쨌건 당신을 인식하는 것도, 그 인식을 입 밖으로 꺼내놓은 것도 나의 결제 때문이었으니까. 세포들은 그냥 나의 결제에 따른 충신들일뿐!



그렇게 나는 당신을 좋아하게 되었다. 지금 내 상태가 딱히 정상이 아닌 것 같지만, 당신을 만난 것을 후회하진 않는다. 이 모든 시간이 당신으로 채워져도, 기꺼이 내어줄 것이다. 오랜만의 설렘이 반갑기도 하면서, 또 오랜만에 찾아온 초라함이 싫기도 하다.


뭐, 어쨌건 결론은. 웰컴 투 짝사랑 지옥!               

    











글│ 청민  淸旻

사진│ 청민  淸旻




아마추어 작가의 말 │일상 수필, 그  열두 번째


사랑이란 게 참 그렇습니다.

소리 소문 없이 찾아와 한껏 마음을 휘저어놓곤,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지요.


그럼에도 사랑은

많은 것을 남기고 갑니다.


그래서 다시, 사랑을 시작하는 거겠지요.


사랑하고

사랑받는

이번 주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감기 조심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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