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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민 Feb 24. 2016

할머니의 손

할머니는 괜찮다고만 했다.

<글 섭취법>

이성이 사로잡는 낮보단, 감성이 고개 빼꼼 내미는 새벽에, 신나는  노래보다는 김필의 <청춘>과 산울림의 <청춘>을 들으면서 읽으시면, 조금은 풍성한 시간이 될 거라 믿어요 :)








일상 수필집 14_할머니의 손


외할머니는 꼭 소설 속에나 나오는 주인공 같았다고 박완서 작가님의 소설에나 등장할 것 같은 느낌이랄까굳게  마른 할머니의 주름은 꼭 깊은 사막 같았고몇  년째 비 내리지 않는 가뭄 같았다. 나에겐 처음부터 단단했고,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 같던 할머니가, 수분 가득한 소녀처럼 웃을 때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자식과 함께 있는 시간이었다










"야야괜찮다."


할머니는 괜찮다고 했다외할머니 댁에 물건을 전해주려 왔던 길이었다오랜만에 뵙는 할머니가 반가와카메라를 들고 할머니를 찍기 시작했다할머니 사진이 별로 없으니지겨워하실 만큼 사진을 찍어 두라는 엄마의 당부가 있기도 했고대문을 엶과 동시에 나는 할머니의 뒤꽁무니만 졸졸 쫒아 다녔다.     


친할머니와는 어렸을 때부터 왕래가 잦았지만외할머니는 이상하게 성인이 되고서야 기억이 뚜렷하다그 심리적 거리감이 충족된 것은 고작 스물을  넘긴 후였다. 그래서인가 외할머니의 이미지는 뚜렷하다옳고 그름이 분명하고 강단이 있으신 분아흔이 가까운 나이에도 직접 농사를 짓고매일 빨래를 하시며이른 아침에 손수 밥을 지으시는 분그 작은 손으로 집에 들어오고 나가는 모든 것을 만지시는 분나에게 할머니는 그런 분이셨다그저 내 엄마의 강단 있는 엄마이며저 멀리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사시는 분때가 되면 자식들에게 대추며 감자며 바리바리 싸 보내시고할머니 댁에 자식들이 놀러만 오면 너희 시간 없다고 빨리 가라고 재촉하시던 분나에게 할머니는 그런 분이셨다.     


카메라 속의 할머니는 내가 결론 지어버린 이미지와는 사뭇 달랐다언제나 머릿속에서 한결같았던 할머니는카메라를 꼭 쥔 내 손 앞에서 다채로운 사람이 되셨다시시한 이모의 농담을 듣고 피식 웃는 할머니농사지은 가지가 볼품없다며 몇 마디  늘어놓으시면서도 비닐봉지에 가지를 바리바리 싸는 할머니내가 감히 오르지 못하는 언덕인 엄마를 단 한 순간에 잡아버리시는 할머니꼬불꼬불 활기 치는 머리카락을 쓱쓱 물 축여 넘기는 할머니그 오랜 시절을 할머니와 마주했으면서이렇게 할머니에게만 집중한 시간이 있었나 싶었다그 머쓱한 마음은 할머니의 손으로 시선을 돌렸고나는 이상한 낌새를 놓칠 수 없었다.     





"할머니손이 왜 그래요?"


나는 놀라 당장에 할머니의 손을 부여잡았다그리곤 엄마엄마 하며 크게 가족들을 불러 모았다할머니는 그 작은 손으로 내 등짝을 퍽하고 몇 대를 계속 때리면서별 것 아닌 것에 왜 이리 소란이냐며 잔소리를 시작하셨다가족들은 나의 유난한 소란에 한데 모였고엄마할머니 손 이상해-란 내 말에 맞추어 할머니 손에 시선을 모았다할머니는 자꾸 됐다, 괜찮다 하시며 손을 또 다른 손으로 가리셨다. 할머니의 손엔 이상한 혹이 있었다. 엄지손가락 3개쯤은 모아둔 크기였다. 색도 이상했다. 사람 손이 원래 보라색이었는가 싶을 정도로 보랗게 익어 있었다.     


속상한 표정이 역력한 엄마와 이모는, 할머니의 짐부터 쌌다. 그리고 그나마 가장 대도시에 사는 우리와 함께 가기로 결정했다. 아, 괜찮다는데 왜 그러냐, 이거 그냥 요 앞에 병원 가서 주사 맞으면 된다, 하며 할머니는 가기 싫은 내색을 하셨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가 있으랴. 결국 할머니는 온 가족과 함께 대구에 있는 큰 병원에 갔다. 비정상적인 손의 모습에 엄마의 입술은 바싹바싹 마르는  듯했다. 의사 선생님은 할머니의 손을 요리조리 살펴보시곤, 아이고- 안 아프셨어요, 하고 물으셨다. 할머니는 그제야 사실 손 움직일 때마다 불편하고 아팠다며 마음을 털어놓으셨다. 분명 얼마 전에 이모가 할머니 댁에  방문했을 때만 해도, 괜찮았던 손이 그 일주일 사이에 이렇게 부풀었던 것이다. 의사 선생님은 할머니의 손마디를 꾹꾹 만지며 말씀하셨다.


할머님손을 너무 많이 쓰셨어요.”     





할머니는 꽃다운 나이에 시집을 왔다. 여섯의 아이를 낳고, 큰 아주버님의 두 명의 조카 또한 더불어 키웠다. 스물이라 하면, 내가 대학교 1학년이 되었던 나이. 지금 돌아보면 너무나 철없어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은 나이. 스물이라는 나이란 원체 그런 것이었지만, 할머니에겐 조금 다른 나이었던 것 같다. 염증 주머니가 생긴 할머니의 손은, 항상 그 누군가를 향했다. 


육남매 그리고 조카 두 명. 할머니는 그 여덟의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키워내셨다. 그 여덟의 아이를 모두 공부시키고, 시집 장가를 보냈다. 스물, 그 어린 나이서부터 뜨거운 햇볕 아래서 농사를 지었다. 고사리같이 작은 손으로 호미를 잡았다. 씨를 뿌리고, 물을 길렀으며, 약을 치던 그 긴 줄을 잡고 있었다. 비가 오면 비를 맞으며, 바람이 불면 바람을 맞으며, 할머니는 그 땅 위에서 여덟의 아이를 키웠고, 남편과 홀시아버지의 뒷바라지를 그 작은 손으로 버텨냈다.     




할머님~ 손을 너무 많이 쓰셨어요.
연골이 거의 없어요. 뼈끼리 부딪치면서 염증이 생기신 거예요.
손을 조금 쉬도록 두셔야 해요.



150cm가 될까 말까 한 그 작은 체구, 그 아이 같이 작은 손.

하루도 쉴 날이 없던 그 작은 손의 관절 모두가 울퉁불퉁 부풀어 올랐단다. 관절과 관절 사이의 연골이 모두 닳아 염증이 자랐고, 그 염증은 그 고왔던 소녀의 손을 울퉁불퉁한 굵은 마디로 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그 낡고 오래된 손, 다른 손엔 다 있지만 할머니에게만 없는 그 보잘 것 없고 녹슨 손. 그 이상한 책임감으로 똘똘 뭉친 할머니의 손은, 늘 누군가를 향했다. 세상이 큰 상을 주는 것도 아니었는데, 할머니는 여전히 호미질을 했고, 복숭아를 수확했으며, 참기름을 짰다.


할머니는 결국 그 염증 주머니를 드러내는 수술을 했다. 손에 붕대를 감고, (원치 않으셨겠지만) 며칠 일을 쉬셨다. 그래도 할머니는 꼭두새벽에 일어나 세수를 하셨고, 정해진 시간에 식사를 하셨으며, 빨리 붕대를 풀고 싶다고 매일같이 말씀하셨다. 붕대를 풀던 날, 할머니는 뒤도 돌아보지 않으시고, 고향 집으로 돌아가셨다. 그리곤 얼마 후, 전화 한 통을  걸어오셨다.     


야야대추 갖고 가라싸놨다.’     






붕대를 풀고도 할머니는 여전히 농사를 지으셨다. 여덟의 아이는 각자의 길을 잘 걸어가고, 시집 와 아무것도 없던 그 오래된 시절은 이제 다 지나갔지만, 할머니는 여전히 땅을 갈고, 과일을 딴다. 엄마의 삶을 그 누구보다 잘 아는 여섯의 자녀들은, 이제 엄마 편히 쉬면서 살자, 우리랑 좋은데 여행 다니고 맛있는 것 먹으면서 편하게 지내자 하지만, 할머니는 여전히 농사를 짓는다. 이제는 또 다른 누군가의 엄마가 된 자식들이 자주 찾아가고, 물건을 채워 놓고, 고생한 우리 엄마 조금은 더 편하시라 노력하지만, 할머니는 여전히 농사를 지었다.


할 수 있는데 까지 자식들에게 좋은 것을 주는 것.
그리고
아직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

어쩌면 할머니의 손은 평생 멈출 수 없을 것 같다. 손녀인 내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영화에서나 보던 그 오래된 시절이 담긴 그 손의 일을 할머니, 이제는 내려놓고 쉬시라 말할 수 없었다. 손에 또 다른 염증 주머니가 생기고,  또다시 그 염증 주머니가 생겨도, 나는 차마 할머니에게 그런 말을 내어 놓을 수가 없었다. 자식을 향한 그 숭고한 사랑, 그 고결한 희생, 그 끝없이 쏟아지는 신념을 어렴풋이 이해한 지금, 할머니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사랑의 방식은 할머니의 사랑을 기쁘게 받는 것이었다.     





‘엄마, 고생하는데 미안해. 고마워, 맛있게 잘 먹을게.

저번에 짜 준 참기름 정말 너무 좋더라. 애들이 진짜 맛있게 밥을 싹싹 먹더라.'     


엄마는 대추를 가지러 내려 간 그 날, 이렇게 말했다. 엄마 고맙다고, 정말 행복하고 맛있게 먹었다고. 그러자 그 오래되고 푸석한 동상 같았던, 나에겐 너무 오래된, 어디론가 동떨어진 사람 같았던 외할머니가, 수분 가득한 소녀처럼 베시시 웃었다. 그거 별로 좋은 것도 아닌데-  말씀하시면서도, 할머니는 내가  난생처음 보는 수줍음 가득한 웃음을 지었다.     






삼촌과 이모들은 더 이상 할머니 손의 일에 반대하지 않는다. 말리고 말려도 또 손을 내밀 엄마의 마음을 아니까. 그 손의 움직임으로 전하고 싶은 그 숭고한 사랑에 감히 침범할 수 없으니까. 아직도 자신이 살아있음을 표현하는 고귀한 시절의 무게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그 강인하고 강단 있는 엄마의 마음을, 엄마가 되어보니 알 수 있었을 테니까. 바로 그 손의 일이 엄마를 위한 엄마만의 자리임을 인정하는 최고의 방법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여전히 우리 집 밥상에는 계절마다 다른 채소가 오른다. 그 모든 시간을 거친 고귀한 마음이 우리의 식탁을 채운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로, 달달한 복숭아 향으로. 그리고 오래되었지만 강인하고, 책임감 있으면서 따듯한 끝없는 내리사랑으로.


할머니의 손은 오늘도 여전히 부지런히 움직인다.

바로, 그 누군가를 위하여.






가사 출처: 산울림-청춘, 네이버 뮤직.







글│ 청민  淸旻

사진│ 청민  淸旻



아마추어 작가의 말 │일상 수필, 그  열네 번째


1. 

처음부터 그런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시간과 상황이 쌓이고 쌓여,

어쩌면 나에게 그런 사람이 된 것이겠지요.


엄마의 사랑을 이길 수 있는 것이

과연 세상에 있기는 할까요.

내리사랑만큼 강력하고 강렬한 것이

세상에 또 있기는 할까요.


사랑한다고,

지금 이 순간 당신을 사랑한다고,

오늘은 이상하게 고백하고픈 날입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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