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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민 Aug 17. 2019

다들 그런 마음으로 살지

여름 몽골에서 쓴 일기 원본

#청민의플레이리스트

오늘은 일기장의 한 부분을 가지고 왔습니다. 실제 제 일기인데요, 그냥 몽골이 그리워서, 그리워져서, 툭- 올려보고 싶어 올려 봅니다. 정말 일기, 저 혼자만 쓰고 읽던 일기의 원본을 올리는 지금, 꿈속에 그냥 쏙 숨어버리고 싶네요. 오늘의 추천 곡은 이민혁의 <이 밤, 꿈꾸는 듯한>입니다. 한동안 이 노래를 무한 반복하지 않을까 싶어요. 설레고 불안하고 그래서 눈부신 마음으로.









다들 그런 마음으로 살지.

어떤 무거움으로.



쌓인 피곤 때문에 괜히 여행에 왔나 하는 생각을 문득 했었는데 오랜 친구의 고백을 듣고서야 아, 내가 여기에 온 건 너 때문이었구나 생각했어. 네가 나를, 우리 우정을 그런 마음으로 소중히 아끼고 있었음을 이제야 알아챘다니. 어쩌면 나는 너를 우리를, 우리는 너를 나를, 잘 몰랐기에 서로 긴 오해를 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어제는 함께 보드카를 마시며 서로가 살았던 어느 깊은 조각을 얘기하다가, 서로에게 그 기억이 어떤 의미로 자리 잡았는지 그래서 어떻게 지금의 자신이 되었는지 이야기하다가, 결국 이상형은 무엇인가-하는 술 마시고 하는 뻔한 이야기들로 흘렀지만, 그래도 나는 좋았어.


술을 못 마셔서 긴 술자리를 버티는 걸 싫어하는데, 솔직한 어떤 인생들의 고백에 눈물이 나서 몽골에 와서 처음으로 뚝뚝 울었지.


어.. 잠시 이상형이란 무엇인가로 가보자면,  나는 다정한 사람이 좋다고, 나와 닮아 자연스레 믿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짧게 말하려는데, 다른 애들은 각자 한 5분씩 말하더니, 나는 '다정한 사람' 한 마디에 훅 순서가 넘어가 버렸다. 조금 억울했는데, 그래도 좋다. 술 마시고 하는 뻔한 얘기 들이란.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는 얘기라곤 변하는 게 없어 우습다.


무튼 삶이란 누구도 자기 대신 살아줄 수 없어서, 각자가 각자의 몫을 매번 선택하고 책임져야 하는데, 그 중간중간에 생기는 외로움을 다들 이렇게 모여서 풀어본다. 그것도 이렇게 먼 몽골까지 와서.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무게를 가지고 몽골에 왔다. 역시 청춘답게 헤어진 사람, 헤어질 사람, 헤어지지 못한 사람 등으로 이뤄졌는데, 그래서 어떤 순간 외로움으로만 가득 찬 사람들이었는데, 나는 그래서 좋았다.






어제 몽골 여행 함께 온 애들 중 막내랑 둘이 게르에서 난로 불을 피우고 물을 끓이다가, 야 너 너무 착하지 말라고, 너무 양보하고 배려하고 참지 말라고 말하는데 걔가 이렇게 대답하더라. 누나, 누나처럼 그걸 알아봐 주는 사람도 있으니까 나는 괜찮은 거야. 그 말이 참 좋았다. 이십 대 후반이 되니 어떤 성숙을 경계하게 되는데, 나를 재고 따지는 어떤 것들의 약음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그래도 나 아직 약은 사람은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사람과 사랑에 있어서는 영원히 용기 있고 싶고 치기 어린 사람이고 싶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고 싶다. 앞으로 다가 올 (30대라는) 성숙의 시간도 기대되지만, 여전히 나는 솔직한 용기와 빛남에 마음이 잔뜩 흔들리니까. 책임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운 지금, 나는 꼭 무엇이든 저질러버리고 싶기도 하니까.







스물아홉이 되고, 매일 다짐한다. 성숙하지만 솔직하고 용기 있는 사람이 되자고. 적어도 내 마음을 두려움에 너무 쉽게 저버리는 약은 사람은 되지 말자고, 눈에 보일 만큼 득과 실만 계산하는 뻔한 사람은 되지 말자고. 그러니까 삶과 사람에 대해 순수함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자고. 무튼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고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결국 이상형 대화 타임에 얘기하진 못했지만, 동생의 말에 기대고 오랜 친구의 고백에 기대고 얼큰히 취한 서로 다른 사람들의 사연에 기대는 밤이었다.


.

.

.


한국에 돌아가는 건 여전히 두렵지만 몽골에 오길 참 잘했다는, 그래서 언젠가 사랑하는 이와 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 메모는 진심도 있지만 진심이 없기도 합니다. 여기는 그런 공간이니까요. 나 혼자 쓰고 나 혼자만 읽고 그래서 아무 말이나 늘어놓는 나의 일기장이니까요. 우리는 다들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하고 사람과 사랑에 신경과 마음을 쓰며 살아가는, 다들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니까요.


아, 벌써 오늘이 시작되었다. 새벽 4시까지 보드카를 마신 사람들. 자신의 조각을 이 여름밤, 툭 내어놓은 사람들. 얼큰히 취한 사람들이 잠에서 덜 깨어 세수하고 옷을 갈아입고, 정신없이 오늘 일정 준비를 하는 걸 기다리며, 게르 앞에서 배낭을 메고 잠깐 써보는 일기.


다들 그런 마음으로 살지.

어떤 무거움으로. 또 어떤 가벼움으로.









2019년 8월 17일 청민의 말:


몽골에 잘 다녀왔습니다.

오늘 무슨 글을 올릴까 고민하다가, 그냥 몽골에서 썼던 일기를 그대로 옮겨 보았습니다.


진짜 일기라서 올릴까 말까 고민하다가,

다른 글을 새로 쓸까 아니면 예전에 쓴 글을 올릴까 고민하다가,

몽골 여행이 그리워서 그 날의 일기를 덜컥 올려 봅니다.


일기라서 앞뒤가 이해가 되지 않으실 것 같아 걱정되고,

처음으로 나만 보던 일기를 공개해서 걱정되지만,

그래도 툭 가벼운 일기를 올려 봅니다.


어쩌면 무거운 마음으로 썼고, 또 어쩌면 가벼운 마음으로 썼을,

여름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툭, 에라 모르겠다 하며!

고치지 않고 그대로 올려 봅니다.(올리고 또 부끄럽겠지요.)


여름 내내 행복했습니다.

돌아보니 모두 사람과 사랑 때문이었네요.


늘 함께해주어 고맙다는 말과

무더운 여름의 토요일도 행복하시라는 말을 조용히 남기며

오늘의 말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청민 Chungmin

mail _ romanticgre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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