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민 Sep 12. 2020

나는 당신이 계속 썼으면 해요

#12. 곁에서 쓰는 삶을 상기시켜주는 사람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카페를 나섰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쓰기 싫어 안 쓰고 있을 뿐, 다시 쓴다고 마음먹으면 a4용지 한 장은 바로 채울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네 시간 동안 카페에 있으면서 단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뭘 써야 할지도 모르겠고,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노잼 일상에 건져낼 게 없었다.


짐을 챙겨 카페를 나와 망원동을 걸었다. 어딜 갈까. 왠지 한 번도 가보지 못했지만 인스타에서 힙하다는 가게에 가서 소위 힙하다고 말하는 음식을 먹고 싶었다. 그럼 속에서 자잘하게 끓는 짜증도 사라질까 싶어서. 밖에는 1인 손님 환영이라 적혀 있었지만, 유리창 너머로 본 가게 안에는 짝이 있는 이들이 마주 보며 알 수 없는 이야기를 그렇게 신나게 하고 있었다. 뭐가 다들 저렇게 즐거운지. 괜히 베알이 꼬였다. 가게 앞까지 갔지만 신난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혼자 들어가, 음식과 분위기를 당당하게 홀로 누리며, 풀 죽은 기분을 다시 살릴 자신이 없었다. 오늘따라 유난했다.



결국 어디 갈지 정하지도 못하고 1시간이나 빙빙 돌았다. 더 걷기엔 날도 덥고 다리도 아팠다. 다보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섯 시간 전에 오늘 오랜만에 원고를 쓸 거라고 큰 소리를 빵빵 쳐대고, 그는 응원한다고 커피까지 사주고 간 이후였다. 그런 다보에게 솔직히 말하기 좀 그랬지만, 뭐.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는 내 얘기를 듣고 다보는 내가 본격적으로 잘 쓰지 못한 게 작년 가을부터 쯤인 것 같다고 했다. jtbc 마라톤에 나갔다가 무릎을 다친 후로, 당신은 더 이상 무리하지 않는 사람이 된 것 같다고. 가만히 그의 말을 듣는데 짜증이 났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다보 말처럼 언젠가부터 나는 도전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렸으니까.


사회생활은 나를 자주 지치게 만들었다. 가끔은 무엇도 도전하고 싶지 않게 만들곤 했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도 내일 같을 테니까. 뭐랄까, 내일을 향한 기대가 조금씩 옅어진다고 해야 할까. 아침에 일어나 출근해서 꼬박 8시간 동안 일을 한다. 콘텐츠를 기획하다가, 집행한 광고 결과를 추적하고, 계속 무언가를 파일로 정리한다. 일은 큰 범위로 비슷하게 흘러갔고, 큰 범위의 일들은 세부적인 변화만 있을 뿐 흘러가는 모양이 비슷하다는 걸 어느 순간부터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직장인이 되었다. 세상 특별하다고 생각했던 나도 모두와 같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직장인이.


다보는 말했다. 오늘은 딱 접고, 새로운 곳에 가보라고. 당신은 매일 똑같은 곳을 좋아하잖아. 그건 당신 취향이 더 깊어진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다른 시선으로 보면 도전하지 않는 말이기도 하니까. 다보는 자꾸 맞는 말만 했다. 오늘도 항상 가는 똑같은 카페, 똑같은 동네를 왔으니, 이젠 다른 곳에 가보라고. 오늘만큼은 실패해도 좋으니 새로운 곳을 걸어보라고 했다. 그리고 뭔가 번뜩 떠오른 듯, 등산에 가자고 했다.


다보는 주기적으로 '정신을 차리러' 등산에 갔다. 대체 차릴 정신이 얼마나 더 남았는지 모르겠지만, 그에게 산은 '정신을 다시 가다듬는 곳' 또는 '마음을 다시 세우는 곳'인 것 같았다. 산이라. 다보 말처럼 작년 가을 이후에 운동을 하지 않아 자신은 없었지만, 냅다 좋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내겐 터닝 포인트가 필요했다. 무기력한 하루하루 사이에서 빛나는 무언가를 찾을, 특별한 하루가.



우리가 찾은 산은 호명산. 가평군에 있는 산으로 우리는 용산역에서 만나 기차를 타야 했다. 오랜만에 타는 기차에 기분이 좋아졌다. 엊그제 밤에 다보가 쿠팡 새벽 배송으로 보내 준 등산 가방도 매고 왔다. 이왕 가는 김에 똑같은 가방 메고 가면 더 좋지 않겠냐고. 휴가를 내고 그와 나란히 기차를 탔다. 기차는 우리를 싣고 도시를 조금씩 벗어났다. 월요일 아침, 사무실이 아닌 기차에 있는 나. 모니터 앞에서 타닥타닥 자판을 두드리는 모습이 아닌, 운동복을 입고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풍경을 구경하고 있는 모습. 낯설지만 설레었고 신기했다.


등산은 만만한 게 아니었다. 처음 시작부터 숨이 턱 막혔다. 로프를 잡고 높은 경사를 허벅지 힘으로 버텨야 했다. 처음 초입부터 정산까지는 말 그대로 죽을 것 같아서, 속으로 그냥 회사를 갈걸 잠시 후회하기도 했다. 다보는 한 3-40분이면 정상에 도착한다고 했는데, 우리는 1시간 30분 만에 정상에 올랐다. 나는 올라가는 데 중간부터 웃음도 안 나오고, 다보 말도 잘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다보는 정상까지 올라가는 1시간 30분 동안 정말 쉬지 않고 얘기를 했다. 바람 좋지 않아? 와 저기 봐, 멋지지. 풍경에 대한 감탄부터, 저기 가서 물 한 모금 마시고 가자, 저기까지만 가서 5분만 쉬자, 하는 나에 대한 걱정까지. 그리고 우리가 평소에 나누는 시답잖은 썰렁 개그까지. 순간 머리가 핑 도는 느낌이 돌 때는, 좀 조용히 하라고 손으로 입을 막기도 했지만, 다보가 아니었다면 나는 중간에 내려갔을지도 모른다. 그의 풍성한(혹은 정신없는) 수다 덕에 웃으며 우리는 정산에 오를 수 있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이러다가 안 되겠다' 싶은 순간들을 마주한다. 자꾸 찌는 살, 퇴근 후 귀찮으니 대충 챙겨 먹는 끼니, 늦은 밤까지 잠 못 이루게 하는 스트레스. 몸과 마음의 체력은 점점 약해지고, 어느 순간 '아, 이렇게 가면 안 되겠는데' 생각하지만, 자주 이겨 낼 여력이 없어 그 말을 무시하거나 미뤄두거나 내버려 두곤 한다. 그런 순간들이 쌓여 나는 원래 알고 있던 내 모습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어느 순간 확 변해버린 나를 인지할 때면 수많은 마음의 경고를 무시한 나를 못났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하지만 다보는 못나지는 나를 여전히 신기하고 재밌게 봐주는 사람. 산지에서 갓 딴 과채처럼 싱싱하게 나를 봐주는 사람. 적어도 지금 나를 많이 웃게 하는 사람.




정상에 도착해 우리는 '해냈다'는 기분에 뿌듯해, 호명산이라 새겨진 기념비 앞에서 사진을 찍고 기분 좋게 크게 웃었다. 준비해 온 간식을 먹고 정리하고 이젠 능선을 따라 내려가는 시간. 체력을 회복한 내가 콧노래를 부르며 내려가는데, 등 뒤에서 다보는 말했다.


'나는 당신이 계속 썼음 해요, 무엇이든.'


나는 그 말에 순간 왜 눈물이 핑 고였을까. 지난 해 초 출판사와 계약 파기를 하고, 새로운 일과 도시에 홀로 적응을 하고,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사랑하는 곁의 사람들이 아프고. 홀로 서기를 시작하며 거쳐 온 수많은 감정들에 내가 가장 먼저 포기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가장 좋아했던 '쓰기'였다.


책상에 앉아서 다시 좋아하는 걸 해보려고 해도 할 수 없는 마음. 세상을 바꿀 엄청난 걸 만들고 싶은 게 아니라, 나는 그냥 좋아하는 걸 계속 좋아하고 싶을 뿐이었는데. 글쓰기 근육이 다 빠져버린 나는 이제 무엇을 쓸 수 있을까 고민하던 어느 날, 다보는 말했다. '나는 당신이 계속 썼으면 해요'라고.


계속 말해주는 사람. 어느 날 내가 느낀 절망을 해결해 주진 못하지만, 계속할 수 있다고 말해주는 사람. 편안한 사람. 그와 걷는 지금이 좋다. 삐죽 흐르려는 눈물을 참은 채, 호명산 능선을 계속 걸으며 다보가 한 말을 속으로 다시 꼭꼭 씹었다. 나는, 당신이, 계속, 썼으면 해요. 비록 이 말이 연인으로서 으레 하는 빈말일 지라도. 곁에서 쓰는 삶을 상기시켜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하나로 나는 오늘 새로운 사람이 되는 듯 했다.


그와 능선을 걸으며 속에 작은 용기가 피었다. 작가의 마음으로 산다면, 쓰지 못하는 순간에도 그를 작가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좋아하는 마음으로 무기력한 오늘을 살아낼 수 있다면 나는 오늘도 새로운 사람이지 않을까, 하는.


 




청민 Chungmin
* mail _ romanticgrey@gmail.com
* insta _ @w.chungmin :여행/일상 계정
               @ruby.notebook : 출판사 마케터 루비의 계정


댓글과 좋아요는 힘이 됩니다 :)  

매거진의 이전글 10원의 여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