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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민 Sep 28. 2020

새벽 바닷가

#27. 우리가 얼마나 아름다운 서로의 장면 속에 있었는지


새벽 바닷가에서 터지는 폭죽을 보며, 그에게 말했다.⠀


-  사람들이 터트리는  폭죽일까, 아님 저들 나름대로의 낭만일까?

- 글쎄. 그것보단 그냥 불을 붙었다는 게 중요한 거 아닐까. 지금 이 관계가 어떻게 될진 모르겠지만, 이미 불이 시작되었다는 거?



한동안 우리는 말없이 새벽의 고요를 방해하는 폭죽을 내버려 두는 것으로, 사람들이 터트리는 것은 낭만 쪽이라는 무언의 합의를 보았다. 굳이  새벽 바다까지 와서 폭죽을 터트리는 사람들이라니. 편의점에서 파는 폭죽은 형편없는 딱총 소리를 냈고, 잊을 만하면 저 멀리서 다시 들렸지만 폭죽을 터트리는 사람들끼리는 즐거웠던 모양이다. 바람 소리에 먼 웃음소리가 섞여 흐른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서로 다른 세계에 있지만, 우리와 새벽 바다를 공유하는 저 멀리 있는 누군가-그러니까 바다 도로를 걷는 사람이나, 해변을 따라 세워진 건물에서 바다 쪽을 바라보는 사람들, 폭죽을 터트리는 이들-가 우리를 본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우리가 그들을 살피듯, 그들도 곁눈질로 우리를 보지 않을까. 하늘과 바다의 선이 분명하지 않은 새벽의 바다까지 찾아오는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그럴  같았다. 정적인 듯 보이지만, 어딘가 들뜨고 상기된 몸짓을 가진 사람들. 평소엔 숨어 있다가 초여름 바닷가에만 오면  생기는 어느 나쁜 습성처럼, 그들은  멀리 섬처럼 앉아 있는 우리를 보고 나름 여름 찾고자 하진 않을까.


사람 없는 바닷가에 앉은 우리 둘. 지나고 돌아보니 그날의 대화가 오래 마음에 남는다. 배경을 채우던 사람들 소리는 다 지워버리고, 우리만의 바닷가에 앉아있던 시간. 저 멀리 들려오는 소리만으로 다른 공간의 틈을 인지하던 순간. 나란히 앉아 바다 끝에 무엇이 있을까 이야기하던 시간. 조금 울먹이며 꺼내 놓은 각자의 상처까지. 새벽의 대화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모르고, 흐르는 대로 털어놓았던 새벽.


잠들지 못하는 어느 밤, 그 날의 새벽 바닷가를 다시 걸어본다. 그러다 내 뒤에서 폭죽을 터트린 사람의 폭죽에 맞을 뻔한 아찔한 기억까지 흐르니, 화들짝 회상에서 깨어 나온다. 여름 바다에선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이 이상하게 뒤섞여 있다. 여름이라 그런 걸까. 벌써 새벽 3시, 내일 출근을 위해 이제는 정말 자야 하는 시간. 눈을 꼬옥 감아보지만, 파도가 춤을 추고, 보드라운 바람이 부는 해변에서 서로를 마주 보며 웃던 우리 둘 만의 밤이, 자꾸만 삐융 삐융 떠오른다. 행복했던 날을 걷는다. 새벽 밤바다가 주는 분위기였을까, 아님 초여름이 주는 계절의 촉감 때문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당신 때문이었을까.


어쩌면 우리만 몰랐을지도 모른다. 끝없이 펼쳐지는 밤바다를 앞에 두고 앉은 우리의 뒷모습이 얼마나 반짝였는지, 우리가 얼마나 아름다운 서로의 장면 속에 있었는지, 서로에게 털어놓은 각자의 이야기들이 얼마나 유의미했는지. 여름의 바람도 새벽의 바다도 다 아는 걸, 우리만 이렇게 뒤늦게 알아챈 지 모른다.


함께 한 시간의 힘으로 우리는 내일까지 살아낼  있다는 .




* 바다에서 폭죽을 터트리면 안됩니다 :)

* 100일 매일 쓰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해당 원고는 초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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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민│淸旻
* mail   _ romanticgre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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