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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민 Sep 23. 2020

아, 오늘따라 날씨 참 좋다!

#23. 날씨가 선물해준 하나의 마음


 *2015년 6월 12일에 옮겨 적어 둔, 2012년 러시아에서 쓴 일기를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오늘따라 날씨 참 좋다!


봄이 왔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내 마음을 간지럽힌다. 나도 모르는 사이, 햇살을 따라 기숙사 밖을 나왔다. 얼마 만에 맡는 풀 내음인지. 어젠 우리 기숙사에 초등학생 쯤 되어 보이는 어린 친구들이 캠프를 왔다. 아침부터 깔깔 거리는 소리가 도브로에 마을을 뒤덮었다.


도시와 한참 떨어진 이곳은 도브로에. [친절한]이란 러시아 단어와 비슷해 어감도 좋아서인지, 봄이 찾아온 마을은 더 평온히 느껴진다. 겨울이 물러간 오늘 같은 날은 사랑스럽다. 영롱한 아이들의 웃음빛과 천천히 피고 있는 노란 꽃, 그릇을 닦는 물소리, 삐걱삐걱 그네 움직이는 소리 그리고 기분 좋게 울려 퍼지는 새들의 노랫소리. 이렇게 아름다운 사진 속에 내가 찍혀있음이 감사하다. 유명하진 않지만 사랑스럽고 아름다워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미술품이 된 기분이다. 보는 이들마다 이유 없이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 그런 그림말이다.


한국에 돌아가 ‘러시아에 있을 때, 언제가 가장 그리워?’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난 ‘지금 이 순간’이라 대답할 것 같다. 모든 순간이 살아있다고 느끼는 지금 말이다. 지금 이 순간만큼의 난 굉장히 자유롭다. 어떤 관념도 시대도 오늘의 행복을 막지 못할 것만 같다. 옆에서 들려오는, (어학 연수 내내 나를 힘들게 했던) 러시아인들의 대화도 부담스럽지 않다. 마냥 이 그림에 딱 어울리는 노랫소리가 흘러나오는 듯하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이 순간만큼은 굉장히 그리울 것 같다. 싱그러움, 생기, 영롱함. 맑은 하늘 아래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 자작나무를 조용히 어루만지는 바람, 내 머릿결을 스치고 네 머릿결을 스치는 바람.


사물뿐 아니라 얼어붙어 누군가 들어올 틈도 없던 내 마음도 스치고 지나간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 누구도 내 마음에 밀어 넣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오늘은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내 삶을 옭아매던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며 생각한다. 마음 참 우습다고. 날씨 하나에 사소한 바람과 웃음소리 하나에 이렇게 너그러워지다니! 사람을 진정으로 웃게 하는 건 큰 무언가가 아니다. 돈도 아니고, 비싼 자동차와 집도 아닌 것 같다. 사소한 바람 한줌, 엄마가 지어준 밥 냄새, 누군가의 얼굴에 피어나는 꽃 같은 웃음 그리고 따듯한 마음. 그 것이야 말로 진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라고 믿는다. 사람을 여유롭게 하며, 마음의 밭을 따듯하게 일구게 하는 것. 그것은 바로 사랑이고 마음의 전환이지 않을까.


아, 오늘따라 날씨가 참 좋다.




This is Russia!

/그 작은 마을에 봄이 오기 전, 여섯 장의 시선




1. 겨울은 혹독했다. 여기가 진정한 얼음왕국이구나, 싶었다.





2. 여기에 봄은 올 수 없다고 생각했다.





3. 매일 새로운 눈이 내렸다.






4. 어제 내린 눈이 녹기도 전에 새 눈이 내렸다. 그렇게 겹겹이 쌓인 눈을 지독한 바람녀석이 얼려버렸다.

그 쪽 덕분에 내가 얼마나 넘어졌던가!






5. 이상하게도, 지독하게 추운 날일 수록 하늘은 더 맑고 예뻤다.



6. 이렇게 긴 겨울이 지나, 이 작은 마을에 친절한 봄이 왔다. 나를 놀리던 어린 소년의 흥이 더 커지던 계절이었다.




* 100일 매일 쓰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해당 원고는 초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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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민│淸旻
* mail   _ romanticgre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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