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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민 Sep 26. 2020

선배가 농사지어 보내 준 토마토로 만든 요리들

#26. 코로나 19로 변한 식탁 풍경


코로나가 시작되고 집밥을 먹는 날이 늘어났다. 원래도 집에서 요리하기를 좋아하는 터라(요리 실험도 좋아하는 편), 잘해 먹는 사람이 더 잘해 먹는 사람의 삶을 살게 되었달까. 덕분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몸무게를 매일매일 기록하고 있지만. 무튼 코로나 19가 시작되며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직접 해 먹는 집밥 사진을 공유하는데, 하루는 대학 때 친하게 지냈던 C선배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너 집밥 자주 만들어 먹는데, 내가 줄만한 건 별로 없고.. 토마토 한 박스 보내주고 싶은데, 어때?"


최근 서로 해 먹는 집밥에 대해 이모티콘을 보내던 중이라, 선배의 선물은 하늘에서 뿅 나타난 천사 같았다. 안 그래도 마침 토마토를 사려고 했었는데! 주소를 알려주고 거듭 고맙다는 말을 보냈다. 나는 작은 방울토마토를 생각했는데, 선배는 엄청난 양의 토마토를 보내줬다. 그냥 먹기엔 방울토마토가 편하고, 요리할 때는 큰 토마토가 좋다면서 두 종류를 엄청 큰 박스에 가득가득 담아줬다. 요잘알(요리 잘 아는 사람)의 센스란. 말 그대로 토마토 파티였다.


선배가 힘겹게 농사를 지은 토마토라 그런지, 토마토 상태가 최상이었다. 터진 것 하나 없이 무사히 도착했을 뿐 아니라, 토마토 자체가 단단하고 윤기가 흘렀다. 하나를 씻어 먹어보니, 입안에서 단단한 즙이 팡 터졌다. 좋은 채소는 먹어보면 안다, 얼마나 좋은 토마토인지. 이렇게 귀한 열매를 선뜻 내어주다니. 대학 때도 주변을 살뜰하게 챙긴 선배. 졸업을 하고 나서도 이렇게 다정하다.


선배가 직접 농사 지어 보내 준 토마토. 사진이 전부가 아니다.


집콕하면서 선배가 준 토마토들로 식탁을 꾸렸다. 토마토의 최고 장점은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는 것. 요리로 먹어도 좋고 생으로 먹어도 좋은 토마토. 선배가 준 토마토들로 집콕하며 해 먹은 집밥들을 모아봤다. 먹어도 먹어도 맛있는 토마토. 언제나 남을 살뜰히 챙기던 선배의 마음처럼 토마토들이 깨끗하고 풍부하고 단단하다.





예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은 날,

토마토 리코타 파스타


코로나 19가 시작되며 요리 콘텐츠를 많이 찾아보게 되었다. 원래도 요리 프로나 콘텐츠를 좋아하는 편인데, 집콕을 하며 먹방과 요리 인스타 그래머 피드를 구경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요즘 가장 많이 보고 있는 인스타 그래머는 혜원 님(@hyenmood)이신데, 파스타를 얼마나 맛있게 만드시는지. 피드를 보면서 요리에 대한 영감을 얻는 편이다.


토마토속에 치즈를 채워 넣는 요리도 이 분의 피드를 보며 아이디어를 얻었다. 토마토 속에는 리코타 치즈를 채워 넣었는데, 이 파스타를 해 먹으려고 전날 밤에 미리 해서 냉장고에 넣어뒀다. 대구 집에선 종종 리코타 치즈를 만들어 먹었는데, 이번엔 생크림을 빼고 우유로만 만들었다. 우유 풍미는 줄었지만 토마토와 파스타까지 함께 섞어 먹으니 괜찮았다.


냉파스타는 트위터에서 아주 유명한 궁금님 냉파스타 레시피를 참고했다. 이 레시피 정말 맛있다. 올리브유가 많아 이렇게 많아도 될까 싶었지만, 의심하지 말 지어라. 화이트 와인이 있었다면 풍미가 더 확 살았겠지만, 없어도 충분히 맛있었던 냉파스타. 이 파스타는 오래오래 해 먹을 것 같다. 아! 이 레시피에선 방울토마토가 꼭 있어야 한다. 팡팡 터지는 토마토 즙이 풍성함을 더해준다.






퇴근 후 속이 가벼운 음식을 먹고 싶은 날,

부라타 치즈 샐러드


부라타 치즈를 처음 알게 된 건, 회사 팀점으로 피자집에서 먹은 부라타 치즈 피자였다. 세상에 이런 치즈도 있다니.  나이프로 겉에 쌓인 얇은 막을 뽁 터트리면, 부드럽고 풍부한 맛이 등장한다. 나이프 등으로 치즈를 얇게 펴줘야 하는, 뭔가 등장만으로 임팩트 있으면서, 접시 속 맛의 세계를 뒤바꾸는 치즈. 부라타 치즈 피자를 먹으며, 이제껏 왜 몰랐을까 싶었다.


치즈에 대한 관심이 생겼지만, 생각보다 비싼 가격에 한참을 망설이다가 맘 딱 먹고 구매를 했다. 이 비싼 치즈로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가장 기본인 샐러드를 해보자 싶어 즉석에서 레시피 없이 해 본 샐러드.


로메인 잎을 싹싹 씻어서 깔고, 삶은 계란 한 개와(갓 삶은 계란이 너무 맛있어서 하나만 삶은 걸 후회했다) 선배가 준 방울토마토, 어젯밤 미리 얼음물에 담가 매운맛을 뺀 채 썬 양파를 깔았다. 그리곤 가운데에 부라타 치즈를 올린 다음, 냉장고에 있던 체다와 파마산 치즈를 갈아 넣고, 소금 약간과 후추를 후추 후추. 소스로는 올리브유와 발사믹 식초, 참깨만 한 조합이 없지. 대구 집에선 올리브유와 발사믹 식초에 꼭 깨를 넣는데(잣도 있으면 넣음), 고소함이 폭발한다.


개인적으로 바짝 구운 베이컨이 들어가면 감칠맛이 더 좋았을 것 같다. 없으니 1% 아쉬운 느낌. 하지만 진한 부라타 치즈 향과 새콤달콤한 야채의 조합이 좋았다. 나는 항상 샐러드와 죽이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 취향대로 DIY가 가능하기 때문. 간단하고 가벼우며 맛도 좋은 훌륭한 한 끼였다.







정성 가득한 식탁을 차리고 싶은 날,

생토마토 파스타와 수제 미트볼


옆 자리 과장님께서 정육각이란 고기 사이트를 알려주셔서 주문해 본 돼지고기. 삼겹살과 목살은 구워 먹고, 미트볼 한 번 만들어볼까 싶어 간 돼지고기도 샀다. 한 번도 만들어보지 않았으니, 이럴 때 필요한 사람은 요리 만능왕 다보. 전화를 걸어 미트볼 만드는 법을 물었다. 양파를 볶아 넣으면 맛있다고 해서 먼저 양파를 잘게 썰어 센 불에 볶아 식히고, 고기와 섞어줬다. 집에 밀가루 밖에 없어서 밀가루를 넣으며 조물조물 만져보니, 점성이 생겨 모양이 잡혔다. 분명 동글동글 말았는데 뭔가 부족했는지, 표면이 투박하기만 했다. 어쨌든, 생애 처음 만들어 본 미트볼.


선배가 준 큰 토마토를 깨끗하게 씻고 듬성듬성 잘라 냄비에 넣고 끓였다. 소금과 후추, 설탕을 넣어주고 약 중불로 뭉근히 토마토를 끓여준다. 집에 양파밖에 없어서 양파를 불에 볶은 다음, 삶은 면과 함께 볶고, 아까보단 힘이 생긴 토마토소스에 면을 넣어 다시 끓인다. 영화 카모메 식당에서 커피가 더 맛있어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코피 루왁' 주문을 거는 것처럼, 나도 면에 소스가 맛있게 스며들기를 바라며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주문을 넣는다. 그렇게 완성된 미트볼 생토마토 파스타.


냉장고에 얼려둔 체다 블록을 꺼내 파스타 위에 살살 갈아준다.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지만, 그만큼 더 따숩고 정이 가는 음식. 포크로 면을 돌돌 말아 미트볼을 쿡 찍어 함께 먹는다. 미트볼 안의 볶은 양파와 고기에 미소가 절로 난다. 가장 행복한 건 미트볼과 치즈를 내 마음대로 추가할 수 있다는 것. 역시 집밥의 최고 장점은 무한 리필 아닐까.







유난히 아침을 먹고 싶은 날,

브런치 한 접시


오랜만에 브런치가 먹고 싶었다. 대구 집에 살 적, 매일 먹던 브런치. 우리 집은 아침을 건너뛰고 10시 반에서 11시 사이 즈음, 토스트 기에 식빵을 넣고, 계란과 베이컨을 굽고, 냉장고에 있는 야채를 털어 샐러드를 해 먹는다. 거기에 드립 커피. 한식보다는 외국 느낌의 식단(?)을 가족이 좋아해서인데,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가장 그리웠던 게 이 아점이었다.(집에선 아점이라고 불렀다.)


집 앞 파리바게트에서 식빵을 사고, 선배의 방울토마토와 냉장고에 있던 계란과 베이컨, 아스파라거스를 구워 한 그릇에 올렸다. 원래는 인스타그램에서 본 프렌치토스트를 해 먹으려 했지만, 실패하여 계란은 스크램블이 되었으나 맛은 좋았다. 흐흐. 가족을 생각하며 커피 한 잔도 내렸다. 코로나 19가 시작되며 가장 먼저 구입한 게 바로 커피 원두다. 요즘 먹고 있는 원두는 앤트러사이트의 윌리엄 블레이크. 에스프레소보다 연하고 부드럽지만, 향이 더 풍부한 드립 커피. 아침에 일어나 온 가족이 식탁에 앉아 커피를 마시던 시절이 요즘 참 그립다. 코로나 19로 집에 못 내려간 지 오래되었는데, 어서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집콕을 한다.







자극적인 한 방이 필요한 날,

소불고기 참나물 샐러드와 야끼소바


망원동에 일이 있어 다녀오는 김에, 월명 식당에 들러 소불고기 참나물 샐러드를 락앤락에 포장 해왔다. 언제 먹어도 맛있는 최애 샐러드. 선배의 방울토마토를 반 줌 추가해 먹었다. 여기 참나물 샐러드가 너무 맛있어서, 따로 참나물을 구입해 집에서 해봤는데 도저히 이 맛이 나지 않아, 망원동에 갈 때면 락앤락을 꼭 챙겨간다.


야끼소바는 집에 있는 양배추와 양파를 팬에 후루룩 볶았다. 반숙 계란을 하고 싶었는데, 불 조절 실패로 완전 완완숙. 약간 튀겨진 맛이었달까. 하지만 익숙하고 맛있는 맛. 기름진 야끼소바와 상큼한 샐러드, 거기에 향이 좋은 유자 에이드까지. 오랜만에 한가한 주말, 넷플릭스를 켜 두고 식사를 한다. 누군가의 얼굴을 보며 밥을 먹은 게 언제인가 싶은 요즘. 넷플릭스 속 주인공들을 보며 밥을 먹는 날이 늘어났다. 자극적인 한 방의 맛이 필요할 땐, 야끼소바와 소불고기 참나물 샐러드. 좋아하는 맛으로 답답함을 위로하는 저녁.







외출이 정말 하고 싶은 날엔,

구운 가지와 애호박을 넣은 라따뚜이 파스타


냉장고에 가지가 너무 많아 뭘 해 먹을까 한참 고민하다가, 처음 해 본 라따뚜이. 집에서 요리를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내가 따라 할 수 있을 만큼 쉽고 후다닥 빠르게 할 수 있느냐 인데, 블로그에 올라온 레시피들을 보다가 이건 내 방식대로 할 수 있겠다 싶어 라따뚜이를 선택했다. 그리고 이유 하나 더. 외출이 너무 하고 싶어서. 한 번도 해 먹지 않은 실험적인 요리도 해보고 싶어 선택한 라따뚜이.


냉장고엔 가지와 애호박밖에 없어서, 그 두 가지 야채를 동그랗게 통째로 잘라 팬에 기름을 살짝 두르고 구웠다. 보기 좋은 색이 살짝 올라오면 야채를 잠시 꺼내 두곤, 시판 아라비따 소스를 야채를 볶은 팬에 넣는다. 내 입맛엔 시판 소스가 조금 강해서, 방울토마토 반 줌을 껍질을 벗겨 으께 소스에 섞으니 딱 좋았다. 소스가 한 번 보글보글 끓으면, 그 위에 구워뒀던 야채를 겹겹이 동그랗게 올린다. 마지막으론 후추와 먹다 남은 파마산 치즈를 조금 갈아 올린다.


매콤 달콤하니 참 맛있는 새로운 맛. 소스가 구운 야채를 배제하지 않고 합을 잘 이룬다. 마지막에 방울토마토 반 줌을 넣은 건 옳은 선택이었다. 먹으면 먹을수록 입맛을 쫙쫙 당긴다. 야채를 구우며 따로 삶아두었던 스파게티 면을 소스와 슥슥 섞어 먹었다. 아래 고체 연료를 넣고 식탁 위에서 보글보글 끓이며 먹는 따듯한 파스타의 맛. 소스가 다시 끓으며 면에 적당히 스며든 감칠맛이 최고였다. 외출하지 않아도 외출한 것만 같은 맛. 음식에는 그런 힘이 있다.





맛있는 한 접시의 음식은 나의 하루를 기어코 행복하게 한다. 외출이 제한되고, 나갈 때마다 마스크를 쓰고, 재택근무를 하며 일상과 일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요즘. 선배가 보내준 토마토는 나를 토닥토닥 위로했다. 마치 그래도 우리는 괜찮을 거라고,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얘기하는 듯했다. 잘 먹고 건강한 것만 잘해도 2020년은 충분히 성공한 거라고 모두가 이야기하는 올해. 정말 한 것도 없이 흘러간 것 같지만, 이렇게 선배가 준 토마토로 만든 요리 사진을 모아둔 걸 보니, 막혀 있는 건 세상이 아니라 내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순간순간 이렇게 맛있고 아름다웠는데, 나는 왜 통째로 묶어 힘들다고만 생각했을까.


선배가 보낸 토마토 한 박스로 나는 내내 행복했다. 맛으로 마음으로. 이렇게 우리는 만나지 못해도 계속 연결되어 있다.

선배의 토마토로 만든 바질 토마토 청. 탄산수와 섞어 먹으면 정말 카페 부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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