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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민 Sep 24. 2020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

#24. 사랑은 무엇이든 이길 수 있으니까.


급하게 휴가를 쓰고 대구에 갔다. 못해도 보통 일주일 전엔 휴가 기안을 올리는데 실장님께 양해를 구할 만큼 마음이 급했다. 아빠가 아프다. 어디가 아프냐고 물어보면 정확하게 답할 순 없었지만 느낄 수 있었다. 아빠가 어떤 마음인지, 언제부터 그런 마음이었을지. 그리고 어디가 아픈지.




두 달 사이 아빠의 몸무게가 10kg가 넘게 빠졌다. 이젠 내 몸무게와 몇 kg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콜라를 좋아했던 아빠는 콜라마저 끊었단다. 코로나 19로 몇 달만에 방문한 대구 집은 낯설기만 했다. 모든 게 그대로지만 또 모든 게 변한 듯했다. 외식과 파스타를 좋아했던 집이었는데, 매 끼니때마다 간 하나 되지 않은 샐러드가 빠지지 않았다. 엄마는 식단에 부쩍 신경을 썼다. 이 정도 일지는 몰랐다. 내 평생 아빠는 생명력 넘치고 강인하고 통통한 사람이었는데 이젠 만지면 뼈의 윤곽이 만져졌다. 같이 사는 엄마와 동생은 이제 그런 아빠 모습이 적응이 된 듯했지만 나는 너무 한 순간 아빠가 변해버린 것 같아 조금 두려워졌다.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아빠를 자주 생각했다. 돈을 벌다가 그냥 다 포기하고 아빠에게 가고 싶은 날이 생길 때마다, 아빠도 얼마나 아빠의 아빠에게 가고 싶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마음을 돌렸다. 아빠도 가끔 숨이 턱 막혔을 텐데, 종종 멈춰 서고 싶었을 텐데. 그래도 아빠는 나를 지키는 사람이었고 용돈을 달라고 하면 주는 사람이었으며 차로 데리러 와달라고 하면 새벽에도 귀찮아하지 않고 오는 사람이었다. 좋은 것들을 내게 주기 위해서 아빠는 내가 모르는 사이 밖에서 들은 어떤 말을 참고, 또 어떤 시간을 인내했을까. 다 알 수 없지만 예전과는 조금 달라진 아빠를 보며 알 것만 같아 마음이 아렸다.



평일에 모두 휴가를 낸 우리는 바다를 보러 가기로 했다. 오랜만에 네 가족이 함께 움직였다. 내가 취업하고 독립하기 전까진 틈만 나면 항상 이렇게 네 가족이 함께했는데. 유럽에 가서 캠핑도 하고 우리나라도 이곳저곳 정말 많이 다녔었는데. 우리는 함께 차를 타고 다니는 걸 좋아했다. 운전은 늘 아빠의 몫, 조수석엔 모든 걸 총괄하는 엄마, 아빠 뒤엔 찬, 엄마 뒤엔 항상 내가 앉는 게 우리 집 규칙이었다.(사춘기 때 엄마한테 혼날까 봐 엄마를 피하다가 굳어버린 좌석 습관이다) 한 시간 정도 달려 우리는 동해에 닿았다. 평일의 바다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해변에 사람이라곤 우리뿐이라 차 트렁크의 의자를 꺼내 바다를 보며 앉았다. 평소처럼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다가 아빠가 말했다. 같이 있으니까 너무 좋다. 아빠는 우리 가족 넷 함께만 있으면 다 괜찮아. 


우리 가족은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을 사랑했다. 찬과 나는 가족과 여행하는 게 좋아서, 친구와의 여행을 잘 가지도 않았다. 보름이 넘게 한 텐트 안에서 먹고 자고 해도 싸우지 않는 사람들. 싸워도 삼십 분도 되지 않아 금방 화해하는 사람들. 우리 가족에겐 서로가 가족이자 친구였는데, 이런 화합은 대부분 아빠의 다정함으로 지켜졌다. 작은 것에도 크게 감동받고 누군가를 마음에 들이면 쉽게 포기하지 않는 다정함. 우리는 아빠의 다정함을 보고 자랐고 그 다정함을 중심으로 우리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조각을 나눠 가질 수 있었다. 한 때는 그런 아빠가 올드하고 답답하다고 여겼지만, 이제는 안다. 다정함이 우리를 지키고 먹이고 키웠다고.


사람 하나 없는 바닷가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아팠고 아픈 서로의 시간을 슬쩍 나눴다. 우리에겐 서로 말하지 못한 알맹이가 더 많겠지. 부모는 부모라서 자식인 나에게, 자식은 자식이라서 부모인 엄마 아빠에게. 뒤늦게 전하는 소식이 더 많겠지. 오늘처럼. 지난 10년 동안 아빠를 천천히 소진시켜 온 상처는 어떻게 해야 채워질까 하는 생각은 결국 사랑하는 아빠를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로 이어졌다. 이젠 나와 몸무게가 몇 kg 차이나지 않는 아빠를 보며 우리 가족 넷 함께만 있으면 다 괜찮다는 아빠를 보며 말했다. 아빠, 마음이 너무 힘든 날엔 얘기해. 최선을 다 했음에도 속상하면 바로 얘기 해리. 이젠 우리 집 내가 책임진다. 이미 찬이랑 얘기도 끝냈다. 내가 돈 벌어오면 쟈가 집안일하기로. 아부지 쟈가 집안일 잘 하더라. 특유의 대구 사투리로 능글능글하게 얘기하는 나와, 옆에서 오버액션으로 맞다 맞다 맞장구치는 찬을 보며, 엄마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다.



마음과 몸의 상관관계에 대해 생각한다. 지난 시간 동안 무겁게 지고 있던 아빠의 책임과 있는 자리에서 묵묵히 견딘 엄마의 시간을 떠올려 본다. 비록 우리에게 힘든 시간이 찾아왔어도 우리는 또다시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사랑하니까, 진심으로 사랑하니까, 세상 무엇보다 서로를 사랑하니까. 이제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지금 이 시간도 함께 잘 견딜 수 있지 않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무엇일까. 당장 바꿀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내가 아빠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일까. 햇살과 함께 부서지는 파도를 보며 생각했다. 그건 사랑하는 일, 이전보다 더 사랑하는 일이 아닐까. 아빠를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며, 있는 자리에서 내가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가는 일. 사랑은 무엇이든 이길 수 있으니까.


삶의 언덕을 사랑 하나로 이겨낼 수 있다고 믿는다. 지금껏 우리 앞에 놓인 크고 작은 삶의언덕을 이겨냈던 것 처럼,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겨낼 수 있다. 그래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 모두 아프지 않기를. 이 간절한 마음이 전달되기를. 소란스러운 마음을 푸른 하늘을 향해 쏟아낸 어느 날의 풍경.


사랑해,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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