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민 Nov 04. 2020

출판사에 다니기 전엔
몰랐던 3가지 이야기

#59. 출판사에 다니기 전엔 몰랐던 사실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글 속 내용과는 다른 사진입니다.

하나.


어제오늘 200건 가까이 택배를 보냈다. 추석 동안 보내지 못한 물량을 서둘러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대부분 택배는 담당해 주시는 분께 맡기지만, 직접 기획한 이벤트의 경우 직접 포장해 발송하는 편이다. 특히 키트를 제작할 때는 확인해야 할 물품이 많기 때문. 도서에 증정 도장을 찍었는지, 기획해 제작한 사은품에 문제는 없는지, 키트를 받을 분들 중 누락된 분은 없는지. 몇 번을 반복해 확인한 다음, 택배 포장이란 단순 작업을 시작한다.     


출판사에 다니기 전엔 몰랐다. 출판사에서 이렇게 택배를 많이 보내는지. 책 한 권을 알리기 위해 사람도 책도 택배도 부지런히 발을 구른다. 송장 인쇄기가 멈추지 않고 소리를 낸다. 추석 후 급작스럽게 밀리는 물량에 기사님들의 건강이 염려됨과 동시에, 제때 도착할 수 있을까 하는 담당자의 염려가 아이러니하게도 동시에 든다.  

   

그리곤 생각한다. 세상의 대부분은 이렇게 보이지 않는 것들로 채워지지 않을까. 정말 보이지 않고, 우리가 잘 알지 못할 뿐. 세상은 이렇게 작지만 부지런한 발길들로 움직인다. 우리 손에 쥐어지는 것들 중 그냥 오는 것이 없고, 사람이 없는 곳이 없다는 걸 다시금 배우는 하루.     





지난주 읽은 책

.


출판사 직원은 출판사 직원을 알아본다. 스쳐 지나가는 작은 행동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일까. 서점 매대 앞에서 습관처럼 흐트러진 띠지를 정리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뒤집혀 있는 책의 제자리를 찾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행동을 자신도 모르게 하고선 멈칫 놀라는 이가 있다면, 그는 큰 확률로 출판사에 다니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특히 일산, 파주, 합정에 자주 등장하는데, 망원역 주변의 카페에 있다 보면 자주 마주치게 된다. 주말인데도 교정지를 읽는 옆자리 사람(누가 봐도 편집자), ‘그 책 봤냐’며 시작되는 건너편에 앉은 이들(누가 봐도 마케터), 그리고 노트북에 서점 페이지를 켜놓고 있는 나까지. 특히 합정역 근처의 빌리프 커피에선 방문할 때마다 저자와 계약하는 출판사 직원들의 모습을 매번 목격한다. 이상하게 그들만 눈에 쏙쏙 띄는 것이, 내가 출판사 직원이라 그런 걸까 아님 출판사에 다니는 사람들에겐 그들만의 특별한 분위기가 있기 때문일까. 

    

책은 이제 지긋지긋하다며, 시골 할아버지 같이 싫다는 말을 달고 살지만, 책 근처에 늘 서성이는 사람들. 문장 하나를 가슴 깊이 품고 사는 사람들, 여전히 작은 문장의 힘을 믿는 사람들. 무언가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무언가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알아본다.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나의 책상

셋.


물론 실망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문 밖에서는 문 안의 세계가 간절했지만, 문 안의 세계도 결국 하나의 세계이기 때문에. 사회에 갓 나온 뽀송뽀송한 이들이 으레 그러하듯이, 가장 먼저 문 안의 세계에 대한 이상과 기대가 무너지고 때로는 실망 한다. 이곳은 회사이니까. 삶을 흔들 만큼 감동적인 문장을 쓰는, 동경했던 작가의 이면에도,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순서 중에서도 때때로 분명한 좌절이 덮치곤 한다. 삶이란 그런 거니까.     


그런 날엔 휴가를 내고 잠시 일에서 멀어지는 시간을 갖는데, 우습게도 그런 시간에 카페를 갈 때도, 여행을 떠날 때도 허전한 마음에 얇은 책 한 권을 가방에 챙긴다. 읽던 읽지 않던 상관없이. 책에서 아주 멀어지고 싶다가도, 마음을 만지는 한 문장을 만나면 다시금 자리를 고쳐 앉고 책 속으로 다이빙을 한다. 고개를 콕 박고서 페이지 속 네모난 세상이 전부인 것 마냥.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오게 되는 것. 실망이 발목을 잡아도, 에잇 짜증 한 번 딱 내고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오는 것. 애정이지 않을까. 애증일 수도 있겠지만. 견디게 하는 마음, 다시 돌아오게 하는 마음. 독자였을 적엔 절대 알지 못했던 마음. 책 속으로 들어오고서야 더 분명히 보이는, 누군가의 마음도 있는 가보다.






* 100일 매일 쓰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해당 원고는 초고입니다:)

▲ 100일 매일 쓰기 프로젝트가 궁금하시다면, 클릭!



청민│淸旻
* mail   _ romanticgrey@gmail.com
* insta  _ @w. chungmin : 일상 여행자 계정
                 @ruby.notebook : 출판 마케터 계정


댓글과 좋아요는 힘이 됩니다 :)    

매거진의 이전글 회사에서는 나의 장점과 단점이 선명하게 보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