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마치 정오의 태양이 머리 꼭대기에서 지지 않는 것처럼.
회사에선 나의 장점과 단점이 선명하게 보인다. 마치 정오의 태양이 머리 꼭대기에서 지지 않는 것처럼.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날카롭고 분명한지 몰라서, 때론 눈앞이 핑 돌 때가 있다. 그것이 어지러움이던 눈물이던. 들키면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들키고 싶지 않으니까. 홀로 마음을 쓸어내리는 날이 있다.
한 채널과 광고를 진행하기로 했다. 협의를 마치고 일정에 맞춰 영상만 노출되면 잘 마무리되는 일이었다. 늘 해오던 일이었고, 해당 채널을 운영하는 분과는 일 년이 넘도록 연락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사이었기에, 내게 남은 일은 그저 믿고 기다리는 일뿐이었다. 하지만 영상이 노출되기 한 3일 전,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직 도서가 도착하지 않았다고, 혹 중간에 분실이 된 건지 확인 부탁드린다고. 내일 오전까지 도착하지 않으면, 도서 없이 영상을 노출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순간 앞이 아찔해졌다. 세상에. 그럴 리가 없는데, 도서를 보내는 건 가장 기본 중에 기본 업무였는데. 쿵쿵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택배 발송 리스트를 뒤졌지만, 세상에. 내가 잊었다. 심장이 뛰다 못해 터질 것 같았다.
어떡하지. 광고를 하면서 광고의 대상을 보내지 않다니. 낭떠러지 앞에 서 있는 것처럼 심장이 아찔했다. 도서 없이 영상이 업로드되면 뭐라고 보고하지, 그럼 내 실수를 모두가 알아 버릴 텐데. 머리가 바빴다. 가장 기본 중에 기본을 놓친 나를 납득할 수 없는 건 내 자신이었다. 운영자의 문자를 본 건 일요일 점심. 늦잠을 자다 문자에 정신이 번쩍 들어 주말에 회사로 출근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가까워 보이는 곳에 바로 전화를 걸어 퀵을 보냈다. 다행히 도서는 제때 무사히 도착했고, 영상에도 대문짝만 하게 도서가 들어갔다. 벌렁벌렁 거렸던 심장이 영상이 올라온 수요일에야 잠잠해졌다. 지금 와 돌아보면 별 것 아니지만, 1년 차 신입에게 얼마나 깜깜했는지.
38,000원. 퀵 값. 차마 회사에 청구하진 못했다. 그럼 사람들이 나의 실수를 다 알아버릴 것 같아서. 꼼꼼하게 챙긴다고 챙기지만 늘 이렇게 하나둘씩 놓치는 털 파리 같은 단점을 마주할 때마다, 누군가 이 자국을 볼까 불안해진다. 잘하는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 건 아니지만, 적어도 부스러기는 보이고 싶지 않아서. 나와는 달리 모두와 잘 지내고 일에 꼼꼼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다른 사람들을 보며 주눅이 드니까.
이런 날을 보내면 집에 돌아와 괜히 우울해진다. 불안이라는 큰 카테고리 속에 감정은 잘게 나뉘어 이름을 갖는다. 쩔이가 된 것 같은 패배감, 주류가 아니라는 소외감, 혼자만 뒤처지고 있다는 서글픔. 다음에는 무엇이든 꼼꼼하게 챙겨야지 다짐하다가도, 돌아서서 실수를 할 때면 나는 진짜 왜 이렇게 구멍이 숭숭 뚫렸는지 자책하곤 한다.
잘할 수 있을까. 하루에도 수없이 묻는 날이 있었고,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빈도는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묻고 있다. 취업만 하면 다 괜찮아질 것 같던 지난날은 어디로 사라지고, 불안에 마음을 빼앗기는 어른이 되었을까. 선명하게 마주하는 단점 앞에서 나는 자주 아찔하다. 누군가 알아버릴까 두렵고, 그보단 감추지 못하고 누군가 알아버려서 스스로에게 실망할까 두렵다.
그런 날엔 누군가의 문장을 꺼내 읽는다. 나와 비슷한 일을 겪은 이의 문장.
나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다.
업무에 필요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일단 배우고 본다.
말을 잘해서 발표도 잘한다. 아무리 높으신 분이 앞에 있더라도 별로 떨지 않는다.
창의적이다. 창의성을 발휘할 곳 하나 없는 회사에서
그나마 무엇이든 재밌고 새롭게 해 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내 단점 때문에 노력해온 것들이 조금 평가절하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확실한 나의 장점들을 기억하자.
단점이 있을지언정 내가 가진 뛰어난 것만으로도
충분히 능력 있는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자.
기죽지 말고 나의 강점을 펼칠 수 있는 일들을 씩씩하게 해내면 된다.
- 『불안 장애가 있긴 하지만 퇴사는 안 할 건데요』 중에서
나는 호흡이 긴 콘텐츠를 잘 만든다. 오래 생각한 일들엔 괜찮은 반응을 얻는다. 디자인 툴도 잘 다룬다. 이건 마케터에게 큰 장점이기도 하다. 나에게도 선명한 장점도 있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에게 뿌듯한 순간들도 분명히 있다. 실수를 해서 심장이 벌렁벌렁한 날에는 집에 돌아와, 이렇게 뻔하디 뻔한 청춘 영화의 결말 같은 장점 찾기를 한다. 자꾸 단점에 집중하려는 태도로부터 나를 떨치기 위해 움직인다. 아, 나는 그걸 잘했지. 그때 이 일이 큰 반응을 얻었지.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스스로에게 벌을 준 나에게, 동일한 상을 준다. 때론 뻔한 것이 누군가를 크게 위로하는 법이니까.
살다 보면 자주 이런 날이 필요하다. 나의 장점을 스스로 되짚어 줘야 하는 날. 그렇게 나만큼은 내 편을 들어줘야 하는 날. 잘못한 부분은 이미 크게 꾸지람했으니, 토닥토닥하면서 괜찮다고 어루만져 줘야 하는 날. 그렇게 나는 성장하고 있다고, 이런 날들을 반복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의심하지 않고 그냥 믿어줘야 하는 날이.
* 10/24 업로드를 하지 못했습니다. (네, 잠이 들어버렸어요..ㅜㅜ)
가능한 부지런히 써서 이번 주 내로 하나를 더 올리도록 할게요!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 100일 매일 쓰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해당 원고는 초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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