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빛났던 순간

by 낭만피셔

공기가 제법 서늘했던 늦가을 아침이었다. 아스팔트 위로 마른 나뭇잎이 구르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을 위해 현관문을 나섰다. 아파트 단지를 거의 빠져나갔을 무렵 정해진 동선을 따라 움직이던 몸이 어떤 예고도 없이 그 자리에서 멈췄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충동에 사로잡혀 고개를 돌려 내가 사는 동의 아파트를 올려다보았다.


5층, 우리 집 창문 그 사각의 프레임 안에 두 사람이 서 있었다. 아내와 아기. 두 사람은 나를 정확히 내려다보며 작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유리창을 사이에 둔 채 소리 없는 웃음이 여기까지 전해지는 듯했다. 내 주머니 속에서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아내였다.


"어떻게 알았어?" 그녀의 목소리에 장난기가 섞여 있었다.

"그냥, 느낌이 왔어" 내가 답했다.


그날 이후 그것은 나의 아침 의식이 되었다. 매일 아침 두 사람은 내가 출근하는 길목 항상 그 창가에 서서 나를 배웅했다. 그 모습을 볼때마다 가슴 한편에서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꼈다. ‘영원히 함께할 사람들이, 나의 하루가 무사하기를 빌면서 매일 나를 이렇게 지켜봐 주는구나’ 그 사실이 나를 살아가게 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었다. 나는 그들의 시선 속에서 존재 이유를 찾았고 하루를 살아낼 에너지를 얻었다. 햇살 아래 반짝이는 두 사람의 모습은 내가 살아가는 이유를 담은 그림 같았다.


내 평생 가장 차갑고 길었던 겨울이 지났다.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었던 계절은 잔인할 만큼 느리게 흘러갔다. 그리고 마침내 계절이 바뀌어 3월의 공기가 창문 틈으로 스며들던 오랜만의 출근길. 나는 습관처럼 단지를 완전히 떠나기 전에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5층, 같은 자리, 같은 프레임. 그 안에는 이제 한 사람만이 서 있었다. 훌쩍 자란 것 같은 아이가 여전히 작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아이의 손짓은 과거와 다름없이 밝았지만 옆의 빈 공간이 너무 크게 느껴졌다. 그날부터 나는 매일 아침 그곳에서 의도적인 착시를 겪는다. 아이의 옆, 텅 비어있는 공간에 그 가을의 아침을 불러와 겹쳐 놓는다. 오늘의 풍경 위에 어제의 시간을 정밀하게 포개는 일. 한 사람의 인사를 받으며 두 사람의 잔상을 보는 것. 그것이 나의 하루를 여는 방식이 되었다.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순간의 기억은 이제 무엇보다 날카로운 형벌의 도구가 되었다. 나는 매일 아침 가장 행복했던 좌표로 돌아가 추락을 확인한다. 5층 창문에서 시작된 나의 하루는 그렇게 아득한 낙하와 함께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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