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할 수 없는 영상

by 낭만피셔

내 유튜브 계정 한쪽 구석에는 오래된 다락방처럼 그분이 남겨둔 시간의 조각들이 먼지 쌓인 채 잠들어 있다. 그분이 직접 찍고 편집해 올렸던 몇 개의 영상들. 함께 있을 때는 가끔 꺼내보며 웃음 짓던 우리의 빛나던 기록이었다. 그 영상들은 단순한 파일이 아니라 행복했던 순간들의 살아있는 증거였다.


유난히 길었던 밤이었다. 늦도록 잠이 오지 않았다. 침대 위에서 수십 번을 뒤척여도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렸다. 끝없이 뒤척이던 중 문득 그 영상들이 떠올랐다. 홀린 듯 핸드폰을 들어 그중 하나를 켰다. 어떤 마음이었을까. 어쩌면 무의식중 그녀를 다시 만나고 싶었던 마음의 반영이었을지도.


화면 속에는 지금은 곁에 없는 그분이 선명하게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생생한 모습으로. 나와 함께 아직은 작고 어리숙했던 아기와 함께 시간을 보내던 시절의 모습. 그분이 직접 담아낸 세상이기에 영상의 모든 프레임에는 그분 특유의 따뜻하고 다정한 시선과 시간의 온기가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화면 너머로 느껴지는 온기가 너무 따뜻해서 나는 잠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잊었다. 그분의 존재가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다가왔다.


수십 번을 보아 모든 대사와 장면이 익숙했지만, 어쩐지 모든 것이 난생 처음 마주하는 풍경처럼 낯설면서도 새로웠다. 익숙함 속 낯섦이 나를 더 흔들었다. 나를 바라보던 다정한 표정, 아기를 향해 있던 따뜻했던 눈길, 귓가에 울리던 밝은 목소리, 기억 속에 박제되어 있는 사소한 몸짓 하나하나까지. 잊고 있던 모든 감각이 한꺼번에, 그리고 날카롭게 되살아나고 있었다.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렇게 몇 개의 영상을 하염없이 반복해서 보다가 잠에 들었다.


아니 사실은 제대로 잠에 들지 못했다. 차가운 새벽 공기 속에서 뒤늦은 후회가 바람처럼 밀려왔다. '괜히 봤을까 차라리 보지 말아야 했을까' 후회가 마음속을 헤집으며 고통을 가중시켰다. 지워지지 않는 디지털 기록 속에서 완벽하게 살아있던 그분의 모습. 짧은 순간의 위안 뒤에는 결국 이렇게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의 무게와 아픈 그리움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디지털이라는 이름의 영원성이 이렇게 잔인한 형벌이 되다니. 그녀의 웃음소리가 이제는 비수가 되어 나를 꿰뚫었다.


화면은 꺼졌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영상이 계속 재생됐다. 눈을 감아도, 떠도 그분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이 고통스러운 밤의 끝에서 나는 마지막 희망을 안았다. 혹시 오늘 밤 꿈에서 그분을 만날 수 있을까. 현실에서는 더 이상 불가능한 만남이지만 환상 속에서라도 다시 마주할 수 있기를. 나는 그런 기대를 품고 어둠 속으로 잠식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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