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드 불빛 아래 조용히
2009년 봄, 늦은 밤. 윤섭은 자신의 기숙사 방,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스탠드 불빛만이 희미하게 공간을 밝히고 있었고, 책상 위에는 그의 낡은 폴더폰이 놓여 있었다. 그는 펼쳐진 강의 노트 위로 의미 없는 낙서만 끄적이고 있었다. 며칠 전, 동아리 모임 후 헤어지며 지현에게 추천했던 영화 '멋진 하루'. 그녀가 정말 영화를 볼까, 보고 나면 어떤 이야기를 할까. 궁금했지만 차마 먼저 연락할 용기는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낡은 폴더폰이 짧고 강하게 ‘부르르-’ 진동했다.
윤섭은 진동 소리에 살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책상 위에서 진동하는 자신의 휴대폰을 보았다.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끼며 폰을 집어 들었다. 폴더를 천천히 열자, 액정 화면에 뜬 이름.
[김지현]
윤섭의 눈이 커졌다. 마른침을 삼키고, 떨리는 손으로 메시지 확인 버튼을 눌렀다. 화면에 그녀가 보낸 짧은 문자 메시지가 떴다.
윤섭아, 나 지현인데. :)
어제 추천해준 '멋진 하루' 봤어.
와... 진짜 너무 좋다. ㅠㅠ
네가 왜 그렇게 얘기했는지 알겠어! 알려줘서 고마워! ^^
윤섭은 숨을 멈춘 채 그 메시지를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진짜 너무 좋다’. ‘네가 왜 그렇게 얘기했는지 알겠어’. 자신이 아끼는 영화에 대한, 아니 어쩌면 자신에 대한 그녀의 진심 어린 공감. 그의 얼굴에 천천히, 아주 천천히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어색함이나 망설임 따위는 없는, 순수한 기쁨 그 자체였다. 입꼬리가 점점 더 올라가 귀에 걸릴 듯했다.
윤섭, 주변을 한번 휙 둘러보았다. 좁고 어두운 기숙사 방. 아무도 없었다. 그는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소리 내지 않고 조용히, 하지만 온 마음으로 웃었다. 어깨가 저절로 들썩일 정도였다. 눈빛은 스탠드 불빛을 받아 유난히 반짝였다. 그는 폴더폰을 소중하게 두 손으로 감싸 쥐고, 그대로 가슴팍에 가져다 댔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빠르게 뛰었다. 그녀와 처음으로, 무언가 깊은 감정이 통했다는 벅찬 느낌.
의자 등받이에 등을 깊게 기대며 그는 눈을 감았다. 스탠드 불빛 아래, 그의 얼굴에는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풋풋하고 순수한 행복감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