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5월 24일 12화

11화 : 같은 영화를 보고

“나도 그렇게 느꼈어”

by 낭만피셔

지현에게 ‘멋진 하루’ 감상 문자를 받은 며칠 뒤, 다시 봄 햇살이 따사로운 오후였다. 윤섭과 지현은 동아리방 앞, 나무 그늘 아래 놓인 낡은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손에는 각자 캔 커피를 들고 있었다. 이전보다 훨씬 더 편안해진 공기. 어색함 대신, 서로에 대한 호기심과 부드러운 미소가 그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윤섭이 먼저 입을 열었다.


“혹시… ‘8월의 크리스마스’ 좋아해?”


지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빛이 순간 아련해졌다.


“응. 여러 번. 볼 때마다 슬픈데… 이상하게 마음이 따뜻해지는 구석도 있고. 뭔가 말로 설명하기 힘든 감정들이 남는 영화야.”


“맞아.” 윤섭이 깊이 공감했다.


“나는 그 영화 보면, 뭔가… 사라져가는 것들의 아름다움 같은 게 느껴져서 먹먹해져. 붙잡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담담하게, 소중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거. 그런 태도가 되게 인상 깊었어.”


지현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녀 역시 비슷한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어떻게 그렇게 똑같이 생각했지? 그리고 되게 조용한데도 인물들 감정은 다 전해지는 거. 사랑한다고 막 소리치지 않아도 느껴지는 애틋함 같은 거 있잖아. 그게 오래 기억에 남아.”


윤섭은 그녀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스무 살의 그들이 이해하기엔 조금 무거운 감정일 수도 있었지만, 두 사람은 영화가 주는 특유의 먹먹함과 삶의 유한함 속에서 피어나는 작은 온기를 함께 느끼고 있었다. 같은 것을 보고 비슷한 마음을 느낀다는 것만으로도, 둘 사이의 거리는 훌쩍 가까워진 듯했다.


잠시 후, 지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비포 선셋’도 되게 좋았어. ‘8월의 크리스마스’랑은 완전 다른 느낌인데, 그것도 여운이 깊었어.”


윤섭의 눈이 다시 빛났다.


“아, 그 영화! 거의 다 대사인데도 지루할 틈이 없지.”


“맞아.” 지현이 웃었다.


“나는 그 두 사람이 쏟아내는 말들 속에 9년 동안 쌓인 시간이랑 후회, 미련 같은 감정들이 다 들어있는 것 같아서 좋았어. 너무 솔직해서 아프기도 한데, 그게 진짜 사람 사는 얘기 같잖아.”


윤섭이 깊이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다시 만났을 때, 예전이랑 똑같을 수는 없지만 뭔가 더 깊어졌다고 해야 하나? 그런 현실적인 감정들이 좋았어. 그리고... 그냥 말만 하는데도 그렇게 엄청난 교감이 가능하다는 것도. 신기했어.”


윤섭은 지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영화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는 단순히 취향이 비슷한 것을 넘어 그녀와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나 감정을 느끼는 결이 비슷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그녀와 이야기하는 것은 편안했고, 또 즐거웠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점점 더 그녀에게 이끌리고 있었다.


그는 옆에 앉은 지현을 슬쩍 보았다. 따스한 햇살 아래,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녀의 옆얼굴이 유난히 부드러워 보였다. 그녀 역시 윤섭의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려 그와 눈을 맞추었다. 두 사람의 눈빛 속에는 이전과는 다른, 조금 더 깊어진 이해와 선명한 호감이 담겨 있었다. 봄바람이 다시 한번 불어와 벚꽃 잎 몇 개를 그들 사이로 흩날렸다. 마치 이제 막 시작된 그들의 감정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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