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5월 24일 13화

12화 : 소문

by 낭만피셔

며칠 뒤, 수업이 끝난 한가한 오후의 영화 동아리방. 창가 쪽 책상에 앉은 윤섭의 얼굴에는 지난번 지현과 벤치에서 나눴던 대화의 여운이 남아있는 듯, 편안한 미소가 감돌았다. 그는 오래된 영화 잡지를 뒤적이며 흥미로운 기사를 읽고 있었다. 그녀와는 취향뿐 아니라 세상을 느끼는 방식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들떴다.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그때, 같은 학번의 동기가 과자 봉지를 들고 다가와 윤섭 앞 빈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는 윤섭에게 과자를 하나 권하는 척하며, 슬쩍 떠보듯 말을 꺼냈다.


“야 근데… 너 김지현이랑 좀 친하지 않냐? 요새 붙어 다니는 거 같던데.”


윤섭은 잡지에서 눈을 떼고 무심하게 동기를 보았다. 조금 전까지 지현 생각을 하고 있었던 터라, 그녀의 이름이 나오자 살짝 놀랐지만 티 내지 않았다.


“어? 뭐... 그냥 같은 동기니까 그렇지.”


동기는 의미심장하게 씨익 웃었다.


“에이~ 그냥 동기는 아닌 거 같은데? 아무튼, 너 들었냐? 재현 선배가 지현이 좋아한다던데.”


‘지현’이라는 이름 뒤에, 처음 들어보는 ‘재현 선배’라는 이름이 따라붙는 순간, 윤섭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 잡지를 넘기려던 그의 손가락이 허공에서 잠시 멈췄다. 심장이 이유 없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재현 선배? 왜 지현이한테 관심이 있다는 거지?


동기는 윤섭의 표정 변화는 아랑곳없이 말을 이었다.


“요즘 둘이 과제 핑계로 맨날 붙어 다닌다는 소문도 있고… 문자도 엄청 자주 한대. 혹시 너는 뭐 들은 거 없어?”


윤섭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최대한 평소와 같은 목소리 톤으로 대답했다.


“…아니? 처음 듣는데. 난 그런 얘기 못 들었어. 과제 때문이겠지.”


동기는 장난스럽게 윤섭의 어깨를 툭 쳤다.


“그래? 너네 둘이 은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혹시 나만 그런 거냐? 재현 선배보단 너지, 안 그래?”


윤섭은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쓴웃음을 지으며 시선을 다시 잡지로 돌렸다.


“…쓸데없는 소리 하네. 재현 선배 정도면 뭐, 괜찮은 선배잖아. 지현이도… 뭐 알아서 하겠지.”


그의 목소리 끝이 자신도 모르게 살짝 날카로워진 것 같았다. 심장이 괜히 더 빨리 뛰었다.


동기는 별 대수롭지 않게 과자를 마저 먹고는 다른 친구들에게로 휙 가버렸다.


혼자 남은 윤섭. 그는 더 이상 잡지의 글자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손에 쥔 펜을 평소보다 힘주어 쥐었다가 놓았다. 혹은 잡지 페이지를 의미 없이 탁, 덮어버렸다. 그의 시선은 창밖 어딘가를 향해 있었지만 초점은 흐릿했다. 미간이 살짝 찌푸려져 있었고,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조금 전까지의 편안함과 설렘은 온데간데없고, 그의 마음속에는 ‘재현 선배’라는 낯선 이름과 함께 정체 모를 불안감과 아주 희미하지만 분명한 질투심의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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