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건>, <7월 4일생>, <레인 맨>처럼 어릴 적 비디오로만 접했던 그의 영화들부터 <제리 맥과이어>, <미션 임파서블>, <바닐라 스카이> 등 본격적으로 극장에서 보기 시작한 그의 영화들은 물론 <마이너리티 리포트>, <우주전쟁> 같이 스티븐 스필버그 (Steven Spielberg) 감독과 같이 작업한 영화들까지 어느 하나 실망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필모그래피가 굉장히 화려하기도 하지만, 실은 대단한 Actor power를 가진 배우라는 생각이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멋있는 Tom 아저씨.
<작전명 발키리>도 2009년 개봉 당시, 극장에서 사뿐히 감상해 주었던 기억이 아직 있고, 영화도 꽤 마음에 들어 자연스럽게 구매한 오래 전 블루레이 디스크도 아직 소장하고 있다.
이 영화는 2차 대전 당시, 독일에서 일어난 아돌프 히틀러 (Adolf Hitler)의 암살 시도에 대한 실화를 다룬다.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 (Nazi -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중 앞부분인 National Sozialist의 줄임말)가 지배하던 독일 제 3제국이 그 배경으로, 영화 말미에도 나오지만, 히틀러에 대한 암살 시도는 총 15번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1944년 7월에 일어난 이 영화의 소재인, 발키리 작전이 마지막 암살 시도였다.
실제로 발키리 작전 이후 채 10개월이 되지 않아, 히틀러는 자살로 최후를 맞이하고 독일은 그들이 한 때 점령했던 프랑스에서 항복문서에 서명을 하게 되는데......
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은 - 정확히는 Nazi를 주제로 한 영화들은 몰입감이 굉장한 편인데 - 너무도 잔인했던 탓에, 유태인에 대한 박해와 홀로코스트를 보며 같은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잔혹한 행동의 한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게 되고, 그 잔인함과 이유 없음에 고개를 내젓게 되곤 했다. <쉰들러 리스트>나 <피아니스트> 도 대단한 영화였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에서도 같은 주제를 다룬 챕터가 있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 '악의 평범함 (한나 아렌트의 저서 중에 이걸 다룬 책이 있다)'이라고 그랬던 듯.
여하튼, 히틀러의 존재 그 자체가 이 영화에서는 굉장한 스릴러로 작동하는데, 그의 주변에는 언제나 무슨 음모가 꾸며질 것 같고, 그가 없어지길 바라는 무리들은 도처에 널려 있다. 그래서인지 히틀러가 등장할 때마다 무슨 일이 생기는 걸까 하며 더욱 집중하며 보게 되곤 한다. 비록 그 많은 암살 시도는 실제로 모두 실패하고, 결국 히틀러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을 모두가 알고 있음에도 이 스릴러의 긴장감은 신기할 정도로 영화 내내 유지된다.
안타까운 일인 건, 그런 반인류적인 중범죄자는 공개 재판을 통해 죄를 낱낱이 까발리고 철저하게 잘못을 인정하게 한 뒤 사과를 받아 내고 그에 대한 죗값을 톡톡히 치르게 해도 모자랄 판에, 그저 총 한 자루로 간단히 생을 스스로 마감해 버린 것. 유일하게 그걸 깨 버리고 통쾌함을 안겨준 영화가 타란티노의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이 아니었을까.
영화로 돌아가 보면, <유주얼 서스펙트>처럼 치밀하고 지능적이진 않지만, 감독 브라이언 싱어 (Bryan Singer)는 결과가 정해진 (그것도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실화라는 한계 속에서 비교적 최선을 다한 영화라는 생각이다. 짧은 시간 속에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개개인의 개성이 잘 살아나 있고, 사소한 복선이나 장치들도 적절한 곳에 잘 깔아놓았고, 한 장면, 한 장면 사소한 듯 하지만 생각하며 신중히 찍은 티도 역력하다.
연출의 극대화를 위해 관객들의 심리를 밀고 당기는 실력도 나쁘지 않은데, 곳곳에서 간결한 연출과 점점 볼륨이 커지는 사운드트랙을 잘 활용하며 무난하게 긴장감을 고조시켜 준다. 마지막 결말을 알면서도 그 과정에 긴장할 수밖에 없고, 그러면서 다시 안심과 긴장을 반복하며 안타까운 결말에 다가가는 과정이 충분히 매끄럽다.
발키리 작전 곳곳에서 예상치도 못하게 발생하는 변수도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이다. 히틀러와 같이 암살하고자 했던 친위대장 하인리히 히믈러 (Heinrich Himmler)의 부재나 회의 직전 장소의 변경이라든지
폭약의 위력을 맹신하여 spare를 활용하지 못한 점, 울브리히트 장군의 망설임 등등 흔히들 예상하는 불안한 결말로 치닫게 하는, 곳곳의 변수들도 영화 감상의 재미있는 포인트였다.
다만, 시간상 다소 급하게 전개되는 이야기가 좀 허무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건, 임팩트를 늑대굴 폭발 시도에 두었지만, 실제로 폭발 장면은 이후 사건 전개를 위해 너무 급하게 보여주느라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고 그 이후에 벌어지는 쿠데타 진행 과정도 좀 더 긴장감 있고 치밀하게 그려 주었으면 했지만 그러지 못한 것 같은 느낌 있지만, 그래도 이 정도 연출이라면 준수한 편.
이 영화가 단지 2차 대전과 히틀러와 Nazi에 대한 영화이기만 한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해 본다.
영화에서 주인공 슈타우펜베르크 (Claus von Stauffenberg) 외 등장인물들은 모두 어떤 '선택'을 하게 되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게 된다.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처럼 철저한 신념을 가지고 자신의 믿음에 모든 것을 내던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드시 옳다는 건 아니지. 사실, 이런 믿음에 대한 무조건적인 예찬은 위험한 것이,
거꾸로 말하면 히틀러도 자신의 그릇된 믿음에 모든 것을 던진 거니깐) 울브리히트 장군처럼 일이 실패해서는 안 되기에 감당 못할 뒷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망설이고 고민하다가 다소 뒤늦은 선택을 하는 이도 있고 (어떤 면에서는 영화에서 가장 인간적이기도 한 인물), 프롬 장군처럼 끝까지 간을 보며 어떤 선택도 거부하다 스스로 가장 안전한 길에 슬며시 올라타는 인물도 자신만의 선택을 한 것일 테고. (결국엔 처형당하지만)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모두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되고, 그 결과를 (다른 방식이지만) 모두들 받아들인다는 점만큼은 동일하다. 그 순간에서만큼은 개인적인 '선택'이었겠지만, 이런 선택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쇄반응을 일으키며 역사의 흐름이 전개되는 것 아닐까...
비록 역사의 결과를 바꾸지 못했더라도, 특정 인물을 제거하지 못했더라도 우리들의 사소한 선택은 언제나 결과가 나타나게 마련이고, 어떤 식으로든 다른 선택들에 영향을 주게 된다. 수많은 사건들 속에서 수많은 개인의 수많은 선택들이 쌓여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를 이루고, 그 속에서 우리는 다시 수많은 선택을 하며 지금도 살아가고 있는 것, 그것이 우리가 이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지금 우리가 이 영화를 보며 그 당시의 슈타우펜베르크 대령 및 발키리 작전을 실행에 옮긴 이들을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그들은 나치에 의해 죽임을 당했지만, 그들의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발키리는 그러한 '선택'과 '결과'에 대한 점을 관객에게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만약에 히틀러 암살과 그들의 쿠데타가 성공했더라면, 그 선택은 우리에게 지금 어떻게 평가되고 있을까?
- 블루레이 디스크 안의 부가영상 (무려 2시간짜리 다큐멘터리)을 보니, 베를린의 어딘가에 그들의 이름이 적힌 곳이 있다고...
- 독일 출장을 대여섯 번쯤 다녀왔었는데, 쾰른에서 나치 박물관을 다녀왔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