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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마언니 May 24. 2022

어서와, 이탈리아에서 경매는 처음이지?

이탈리아에서 내 집 마련하기 5


혹여나 하는 경계심에 “우린 한국사람이예요” 했다.

-오호라,

우리 아들은 한국에서 오래 일을 했어

한국 사람들은 정말로 친절하고 멋진 도시라고 늘 이야기 했거든, 반갑구려


“뒷 집이 경매에 나왔어요, 알고 계시죠?”

- 그렇지! 이 동네 대부분이 아직은 그래,

나도 우리집 경매로 들어왔는걸


분위기는 화기애애했고 할아버지와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섰다.


“다행이야, 적어도 동양인 혐오는 없는 것 같잖아 그치?”


언젠가 집을 보러간 동네에서 해당집의 주인도 아닌 앞집의 할아버지가 온갖 불신의 눈초리로 바라본 적이 있었다. 아무렴 호기심 많은 이탈리언의 시선에 낯선 이방인이 궁금할터이니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일땐 늘 우리 소개를 먼저 하는 편이었다.


부동산에 떡하니 나와있는 집이었다.

약속을 했고 한 날 한 시에 몰아서 보여주기로 한 건지 이미 집을 둘러보고 있는 사람, 기다리는 사람들 또한 있었다. 그럼에도 어르신은 대뜸 우리에게 들으란투로

- 그 집 안 팔껄? 그 집을 팔리가 없는데?

가만있어보자.. 하며 휴대폰을 뒤져 집주인에게 전화까지 하는 듯해보였다.

통화가 되지 않자 옆집 문을 두드리며

-저기! 옆집 프란체스카 집 내놨어?


당황스러웠다.


집주인이 집을 팔겠다는데.. 아무리 작은 동네, 집집마다 숟가락 갯수까지 아는 사이라고 해도 동네 이장도 아니고 아니 설령 이장이래도.. 만일 이런 할아버지가 내 앞집 이웃이라면??

상상도 하기 싫어졌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집도 그럭저럭이라 쉅게 단념할 수 있었던 기억이 있는지라 집 자체만 놓고도 고민거리가 투성이인데 주변 이웃까지 신경써야한다는 게 만만치는 않았지만 어쩐지 이번 이웃 주인 할아버지와의 첫 인상은 썩 나쁘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 후로도 두어번을 더 만났다.

별다른 언급도 없었고 늘 사람 좋게 웃고 지나쳤다.


여러조건을 비추어볼 때 우리 기준에서는 썩 나쁘지 않은 조건이지만 사실상 대중교통도 전혀 없고 이 동네 살 던 사람이 아니라면 위치도 안으로 훅 깊은 편이고 건설사의 부도로 미처 완공되지 못한 빌라들이 약 10년 가까이 방치되어 있던 곳이었다.

애초 경매에 나왔던 빌라는 총 22곳, 다음해에 11곳으로 대폭 줄어들긴 했지만 경매 특성상 다음 경매로 넘어갈 때마다 20% 가격인하가 된다는 장점은 있었다.

꽤나 마음에 들지만 가진 현금으로는 다소 부족했던 지난번에 반해 이번엔 참야해볼만하다 했고 나름 우리 기준 부합한 곳을 골라 경매 참가비를 지불, 경매 당일이 되었다.


“후미진 이 동네, 이 깊은 곳까지 누가 들어와서 살려고 하겠어? 우리니까 여기라도 살려고 하는거지 대중교통도 아예 없잖아 편의시설도 아직이고..”


경매업체에도 누차 확인을 했지만 별다른 정보를 묻는 자도 없다고 했으니 이정도면 완벽한 우리의 것! 이 될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경매 10:30분 시작.

10:15분, 경매 사무실 앞에 도착을 하니 이미 한 커플이 서 있다. 불안감이 엄습해오고

“괜찮아, 11곳 중 우리랑 겹치진 않을꺼야.. 괜찮아”


사무실에 들어서 안내받은 곳에 착석을 하니 놀랍게도 사람들이 제법 몰려들었다.

게중엔 동네사람들이 제법인지 우린 그들을 잘 몰라도 그들은 우리를 오며가며 동네에서 많이 본 듯

- 어머! 너네 브루노 바 에서 본 적 있어!

하며 아는 척 하는 사람도 있었다.


경매 참가자는 우리 포함 총 8팀

판사와 공증인이 함께하는 자리에서 서류 제출 순서대로 봉투를 열었다.


첫번째는 우리의 봉투였다.

Lotto 12 (낙찰 받고자 하는 건물의 토지 번호)


다음으로 4번, 5번, 8,9,10번까지 하나의 겹치는 번호 없이 차례대로 나왔다. 이대로만 간다면 우리 모두 경매 낙찰자로 모두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는 것이다.


봉투는 이제 2개만 남았다.

그리고 남편 곁으로 한 남자가 다가와 이미 알고 있던 사이인양 반갑게 인사를 했다.

- 이야기 들었어! 난 앞 집 아들이야!


…… 뒷통수를 강력하게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앞 집 아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두리번 거려보니 앞 집 할아버지도 계셨다.


이윽코 봉투는 열렸고,

할아버지의 봉투는 Lotto 12..

경쟁이 되었다.

마지막 봉투 또한 Lotto 12


오마이갓!!


우리 셋을 제외한 나머지 4,5,8,9,10 경매 참가자는 순탄하게 낙찰을 받아 Fortuna (행운을 빌어요) 외치며 기쁜 마음으로 자리를 떠났다.


적막이 감돌았다.

남들은 저리 순탄히 낙찰받아 떠나는데 하고많은 것 중 하필이면 우리것만 이렇게 경쟁이 치열한가 화가 나는 반면 경쟁자가 인상 좋던 앞 집 할아버지라는 사실이 더 참을 수 없었다.

적어도 그는 우리가 이번 경매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알고 있던 사람인데, 심지어 그 소스 또한 우리가 제공했다 생각하니 괘씸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거다.

다른 한 경쟁자는 부동산 업자 였다.

그 또한 이미 만나본 적이 있는 건너집의 주인으로 그는 지난 번 경매에 낙찰 받았고 올 수리를 거쳐 완공된 상태로 집을 되판다고 했다.

본인이 낙찰받을 당시보다 20% 가격적으로 다운이 되다보니 업자로서 욕심이 났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는 경쟁을 하려는 생각은 없었다.


할아버지의 아들은 생각이 달랐다.

- 나는 끝까지 가 볼 참입니다

선전포고를 했다.


판사와 공증인 앞에 진정한 경매가 시작되었다.

경매가는 6500€ (한화 대략 천만원) 단위로 뛰었다.

선방은 우리가 날렸다 6500

할아버지 아들 6500

부동산 업자 6500

합 19,500€ (한화 약 3천만원) 이 순식간에 뛰었다


서로 눈치를 보다가 이번엔 할아버지 아들이 선방을 날렸다

6500, 우리, 업자 순으로 3천만원이 또 뛰어 총 6천만원이 올랐다.


사실 이쯤에서 우린 관둬야 했다.

더는 무리수 인 걸 알면서 끝까지 가겠노라 하던 그 아들의 말이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못먹는 감 찔러라도 보는거야!!’

6500!!!

업자는 포기했고 예상대로 아들은 따라왔다. 2천 추가

토탈 8천 추가


더없이 커진 판에 고민해야했다.

이미 우린 두번째 이후로 멈춰야했지만 한번을 더 던졌고 금액은 터무니없이 높아졌다

아들을 골탕먹게 하려고 한 번을 더 던지자니 만에 하나 독박을 쓸지도 몰랐다.

그래 그냥 이쯤에서 접자..

낙찰을 위해선 그는 한번을 더 외쳐야하는 상황

애초 경매가격보다 9천만원 더 웃돈을 얹어야하는 상황, 그 역시 고민한 듯 했지만 판사의 모래시계는 (1분) 기다려주지 않았다.

아슬아슬한 모래를 남기고 그는 울며겨자먹기로 외쳤고 최총 할아버지 아들에게 Lotto12는 돌아갔다


억울하고 허무하고 멕이 빠진 상태로 너덜너덜 사무실을 벗어나는데 부동산 업자가 우리를 불러세웠다.

명함 하나를 건네며

- 다음 경매 땐 우리 미리 연락을 해서 중복되지 않게 합시다


글쎄요..

다음이 또 있을까요..

다음에 우리 모두는 웃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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