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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길고양이와 함께 살아요

이탈리아라이프

by 로마언니


밥그릇까지 사다가 밥을 먹이는 정성까지 보였건만



내 배가 만삭일 때 같은 만삭의 배 불뚝이 길고양이가 집 근처에 어슬렁 거린 적이 있다.

몸은 비쩍 말랐는데 배만 뽈록한 게 같은 임산부로서 마음이 꽤 쓰여 비싼 건 아닐지라도 고양이 사료를 사다가 테라스에 뒀더니 눈치를 살피며 먹고 가곤 했더랬다.

그러던 어느 날, 새끼 고양이 4마리와 함께 왔다.

평소 고양이를 딱히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먹을 것을 찾아 우리 집 테라스까지 서슴없이 들어오는 고양이가 한편으로 안쓰럽기도 했고, 무엇이됐든 새끼 때는 모두 예쁜 법, 꽤 한동안 고양이 사료를 챙겨줬었다

처음엔 바닥에 그냥 흩어주던 사료가 거슬려 밥그릇까지 사서 챙겨주는 스스로에게는 꽤나 정성으로 보살폈다고 생각했는데 깔끔함의 대명사 고양이라더니, 고양이는 아무 곳에서나 용변을 보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어찌 테라스 구석구석 똥을 싸지른 흔적이 있는지 살짝 괘씸하기도 했다.

마지막 사료 봉지를 털고 선 더 이상 사료를 구입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양이 가족은 우리 집 정원에 들어와서 뛰어놀기도 하고 누가 보면 그냥 우리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처럼 행동을 했었다.

고양이는 처음이었지만 글 속에서 만났던 혹은 보았던 길고양이들 답지 않게 새끼 때부터 보아와서 그런지 사람을 딱히 경계하지도 않았고 애교도 많아 몇 번이나 데려다 키울까? 하는 혼동의 마음이 생기기도 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끝까지 책임질 수 없는 동물이라면 애초에 책임 질 일을 만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과 더불어 잦은 여행을 하는 우리 집 특성상 고양이만 두고 여행길에 오를 수도 없는 노릇, 고양이 가족이 안쓰럽긴 했지만 우리의 관계는 이 만큼의 거리가 딱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킹크랩도 함께 먹었다



그리고 나는 아이를 낳았고, 온 세상 나의 정신은 아이에게만 쏟았던 시간들이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서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겼을 때 딱 그때쯤 고양이 가족이 생각났지만

특별한 관심을 주지 못해서 그랬는지 더 이상 밥이 없어서 그랬는지 그 이후로도 고양이 가족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때 새끼 고양이 중의 한 마리였던 먼지 (우리 부부가 구분하기 위해지어 준 이름)가 새끼를 낳아서 데리고 다시 왔다.

추측 건데 먼지는 막내로 태어나 처음부터도 몸집이 작았고 먹이 줄 때도 다른 형제들이 다 먹고 나면 뒤늦게 와서 먹고 가곤 해서 그때도 꽤 안쓰러웠던 마음이 있었다. 한데 그런 작은 몸집의 여전히 새끼 고양이 같은 몸집의 먼지가 어느새 3마리의 엄마가 되었나 보다

엄마 고양이나 새끼 고양이나 비쩍 마른 것이 너무 안쓰러운데 마땅히 줄 것이 없어서 우리 아기 먹이려고 사다 둔 시판 쇠고기 맛 이유식을 뜯어주었더니 허겁지겁 너무 잘 먹는 것이 같은 애 엄마라서 그런지 더 애잔했다.


한창 모성애로 똘똘 뭉친 엄마 마음 한 켠을 진하게 훑고 지나간 덕분에 그 이후 다시 테라스 한 켠엔 사료 봉투가 쌓이고 그렇게 길고양이들 밥 주기는 다시 시작되었다.


아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주한 동물이 고양이라니, 단 한 번도 상상조차 해 본 적 없는 전개였고 아무리 애교가 많고 사람을 잘 따른다 할 지라도 사람의 손 길을 거치지 않은 길고양이다 보니 혹여나 깨어 날 본능의 야생성도 걱정이고 노파심에 절대 아이는 고양이 곁으로 가지는 못하게 하는 노력도 더불어 해야만 했다.

마냥 아가일 땐 자신의 눈 앞에 움직이는 고양이가 신기했고 물론 지금도 너무 어린 아가지만 요즘은 하루에도 몇 번씩 창문 너머로 고양이가 왔는지 살펴보고 외출 시 고양이를 마주하기라도 하면 온 몸으로 이리오라고 손 짓하는 통에 살짝 걱정스럽기도 하면서도 동물과의 유대 형성의 좋은 학습이 되진 않을까 좋게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좋아하는 만화영화 할 시간에 티비를 틀어뒀는데 도통 만화에 관심이 없고 창 밖을 보고 자꾸만 소리를 치는 거다

창에 붙어 옴짝달싹 하지 않는 아이 곁으로 가서 “왜 그래?”라고 묻는 동시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너는 누구니?”


처음 보는 고양이었다.

게다가 이 쪽은 외부와 단절된 우리 집 만의 공간이다. 집 안을 완전히 통과해서만 출입구가 되고 외부로는 높은 담장과 함께 철창까지 둘러싸인 곳인데 처음 보는 너는 대체 어찌하여 그곳에 있게 된 거니?



창문 하나 사이로 길고양이와 아이


전날까지만 해도 전혀 볼 수없던 녀석이었는데 아마도 밤 사이 먹이 찾아왔다가 3미터도 넘는 담장 아래로 떨어졌나 본데 어디 다치진 않았는지 걱정과 동시에 너무나 앙칼지게 울어재끼는 통에 도통 무서워 문을 열 수가 없는 거다

아이가 창 앞에 서면 고양이가 다가와서 한 참을 울부짖다가 슬그머니 구석 한 귀퉁이에 가서 온 몸을 웅크리고 앉았다

앉아있는 틈에 잽싸게 문을 열어 간단한 먹이와 물을 주었더니 다시 잽싸게 와서 허겁지겁 먹는 것이 다행히 특별히 다치진 않아 보여 안심이었다


아이가 창 곁으로 갈 때면 마치 자기를 구해달라는 냥 울부짖는데 알 길 없는 아이는 창 유리 하나 너머의 아주 가까이 있는 고양이를 보고 마냥 신이 났다


꺄악 꺄악 소리를 지르며 온 집 안을 뛰어다니건만 저 녀석을 어찌 꺼내 줘야 할지 내 속은 안절부절이다.

집 밖으로 고양이를 데리고 나가려면 집 안 전체를 통과해야 했기에 아이까지 데리고 혼자서는 도저히 무리라는 판단에 남편이 올 때까지만 기다렸다

다행히 그날 남편의 퇴근은 빨랐고 혹여의 불상사를 대비해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그래 봤자 두 겹의 장갑을 끼고 그 위에 고무장갑을 덧 씌웠을 뿐) 남편이 창 너머로 들어갔다.

격렬하게 저항할 줄 알았던 고양이는 다행히 온몸을 잔뜩 웅크린 채 기다려주었고 목덜미를 얼른 잡아 들고 잰걸음으로 집 안을 통과, 테라스에 놓는 순간 야옹야옹 유유히 도 걸어가더랬다


동네엔 길 고양이가 참 많고 우리 집을 제 집인 냥 드나드는 고양이도 참 많은데 그 이후로도 이 고양이는 두 번 다시 만나지는 못했다


목덜미를 잡고 들고나와 테라스에 놓으니 유유히 걸어갔다


우리 집에 떨어진 낯선 길고양이

그리고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길고양이

어디서 어떻게 태어났는지는 아무것도 중요치 않다

집 고양이이든, 길 고양이든 하나의 생명인 것만 중요하다. 고양이에 대한 특별한 애정까지는 없었던 나였지만, 내 아이가 태어나 처음 접한 동물이 고양이가 될지는 상상조차 해본 적도 없지만, 적어도 내가 아이를 낳고 키우게 되면서 다시 한번 소중히 깨달은 것이라면 무엇이되었든 생명은 꼭 지켜져야 하고 고귀하다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하지만 너무나 지켜지지 않는, 비록 집 안까지 들여서 따뜻한 아랫목(물론 유럽 집 특성상 따뜻한 아랫목은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지만)을 내어줄 수없고 값비싼 사료로 호의호식 키울 수도 없지만 우리 집에 드나드는 이상 적어도 고양이 가족이 굶지는 않았으면 한다.


오늘 장 볼 땐 잊지 말고 길고양이 가족을 위한 깡통 특별식을 준비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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