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 출산하기
2019년 7월 24일 오전 10시 16분
이탈리아 로마에서 둘째 아이를 출산했다.
한국처럼 신생아실이라는 개념이 별도로 없는 이 곳 병원에서는 출산 후 3시간여쯤 지나면 아이는 엄마 병실로 자연스레 올라오고 퇴원 (그래 봤자 이틀)까지 모자동실이 기본이다
첫째 아이를 낳았던 대학병원에 큰 불편함이 없었기에 둘째는 고민도 없이 동일 병원에서 출산했고 이탈리아 출산 시스템(?)에 대해 전혀 무지했던 동양인 엄마 아빠는 병실 문에 달아 줄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했었던 2년 전 첫째 때와는 달리 둘째는 그나마 풍선이라도 하나 달아줄 수 있었다.
(이탈리아 병원에서는 출생과 동시에 출생신고가 진행되기에 아기의 이름을 미리 정해두는 편이다. 때문에 성별도 일찍 알려주는 편이고 출산을 축하는 의미로 병실마다 아기 이름이 수 놓이거니 예쁜 인형이 달리거나 하는 이름 팻말을 걸어둔다, 이런 문화에 대해 알리 없었던 우리는 2년 전 첫째 출산과 동시에 이런 광경에 대해 처음 경험했고 우리 병실만 마치 빈 병실처럼 아무런 이름 팻말 없이 꽤 쓸쓸해 보였었다.)
출산 직후부터 엄마가 아기를 온전히 케어해야 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내 눈 앞에 이렇게 작은 생명이 숨 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심지어 저 작은 생명이 내 뱃속에서 함께 열 달을 있어준 친구라는 것만 해도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기타 구구절절 살을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들도 많지만 그건 차차 이야기하기로 하고, 이번 글은 기억 속에서 더 이상 잊히기 전에 기록용으로라도 남겨야겠다 싶은 이탈리아에서 갓 출산한 산모식사에 대해서이다.
이미 개인 블로그(로마 언니)를 통해 첫째 출산 때 한 번 기록한 적은 있지만 2년이 지난 지금도 생소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산모식사는 대부분 비슷하구나 공감도 되고, 뼛속까지 한국인으로서 내 나라가 아닌 타국, 이탈리아에서 내가 아이를 둘씩이나 낳고 이런 식사를 두 번씩이나 하게 되리라고 어디 나라고 알았을까.
오전에 출산하고 곧이어 점심때가 되면서 받아 든 첫 번째 식사
야채 육수와 잘게 자른 푹 익힌 파스타
우리네 백숙 같은 닭다리 한 조각과 버터 풍미가 끝내주던 매쉬포테이토
바나나 하나와 딱딱한 빵 한 조각, 시원한 얼음물
2년 전과 비교해도 너무나 비슷한 식사에 한 번 웃고 두 번째 받는 산모식사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적응 안돼서 두 번 웃고
시원한 얼음물과 딱딱한 빵 한 조각 빼면 그나마 부드럽고 부담스럽지 않은 식사로 어쩌면 우리 산모식사와도 닮은 듯 다른 식사임에는 틀림없다
저녁에도 육수에 말아(?) 먹는 푹 익힌 파스타와 빵과 곁들일 치즈, 찐 당근과 과일 퓌레
이탈리아 생활 10년 차에 출산 2번을 제외하고는 병원 갈 일이 그다지 없었던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냐만은 사실 이탈리아 병원시스템이 참 불편하고 귀찮은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 의료는 대부분 무료 (물론 때에 따라 비용을 지불하기도 하지만)이다.
출산 역시 마찬가지인데 자연분만 또는 제왕절개 역시 무료이다. 출산 당일 포함 이틀이면 퇴원을 하고 (산후조리원 따위는 결코 없다) 이탈리아 산모들은 출산 당일부터 아무렇지 않게 걷고 샤워하고 일상생활에 아무 지장이 없어 보이더라, 마치 이 병원에서 아이를 낳은 건 오직 나뿐인 듯, 왜 나 혼자만 어기적 어기적 걷고 나만 온몸이 아픈 것 같은지 말이다. 지금이 기원 전인지 기원후인지 로마 역사 속에서 한데 어울려 살아가다 보니 로마의 의외의 낙후된 시설은 자연스러운데 한국이었다면 당연시되었을지도 모르지만 로마에서 1인 병동에서의 자동 침대 시스템은 경험할수록 ‘로마도 이럴 수가 있구나’ 싶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다음날 아침
홍차 한 잔과 비스켓
헛웃음이 절로 나온다
모유수유해야 하는 엄마들에게 딸랑 홍차 한 잔이라니, 우리나라 어르신, 아니 친정엄마가 이 사실을 알기라도 한다면...
점심엔 토마토소스 파스타와 푹 익혀서 간 조차 전혀 하지 않은 생선찜, 펜넬 볶음, 여전히 딱딱한 빵과 시원한 물, 후식은 딱딱한 복숭아
글을 쓰면서 2년 전 첫째 때 식사를 다시 한번 찾아보았더니 바뀐 건 그나마 아침 홍차 또는 우유를 이젠 도기 잔에 준다는 정도이다.
아침이라고 건네준 것이 플라스틱 그릇에 우유와 비스켓은 정말이지 이게 산모식사가 맞나 싶을 정도로 그때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했던가
SNS의 조리원 식사라고만 검색해도 엄청 화려하고 푸짐하며 비주얼까지 끝내주는 음식들 사진이 줄 줄이건만 비롯 여로모로 많이 부실해 보이지만 내가 지금 이거라도 먹어야 아기에게 우유를 만들어 줄 수 있다는 엄마의 사명감으로 똘똘 뭉쳐 그릇들을 깨끗이 비워 내다 보면 ‘어머, 생각보다 너무 맛있어’ 어느새 감탄하게 되는 산모식 맛집으로 변모하는 건 한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