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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날 낳으시고 먹여 기르셨네

이탈리아에서 출산하기

by 로마언니

주님, 열 달을 품어 아이를 낳는 고통과 행복을 제게 주셨으면, 최소한 모유수유만큼은 아빠 몫으로 아빠에게도 그 행복감 나누어주셨으면 참 좋았을 텐데요...


남편의 육아 할당, 대체 어디까지 이어야 할까?


해외에서 아이를 낳고 기른다는 것이 아무것도 모를 때는 마냥 좋아 보일 수 있는 부분이지만 그 내막을 알고 나서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일단, 내 양 손을 벗어나 도와줄 이가 아무도 없다.

흔히들 말하는 친정 찬스, 시댁 찬스는 물론이거니와 산후조리원도 없고 산후도우미 이모님도 없다 (물론 해외도 어디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적어도 현재 내가 머물고 있는 유럽권, 특히 이탈리아는 더더욱 그렇다)


전적으로 남편과 나의, 아니 엄밀히 말하면 오직 나의 몫으로 돌아온다.


열 달을 잘 품어 온 몸의 뼈가 삐그덕 대는 출산의 고통과 아이를 만나는 기쁨

반갑지만 반갑지 아니한 경계선을 지나고 나면 모유수유 혹은 육아라는 더 큰 산이 기다리고 있다


사실 첫째 아이 때는 힘들고 해도 얼마나 힘들지 감도 안 왔고 무조건 내 몸 부서져라 무지의 상태로 모유수유와 육아를 해왔다면 둘째는 아는 거라 더 두려운 공포, 아는 것이 힘이라고 했던 그 옛말은 적어도 내게 이 순간만큼은 틀렸다. 알아서 더 무섭다.


이탈리아에서는 병원에서 출산을 하고 최대 3시간 안엔 아이를 엄마 병실로 보내준다. 즉 모자동실이다.

한국 시스템처럼 신생아실에 아이를 계속 두지 않으니 한국의 매스컴에서 심심찮게 등장하는 신생아실에서의 사건사고는 전무하다고 봐야겠지만 몸 회복도 안된 엄마에게는 조금 가혹할 수도 있다.


모유수유 또한 권장사항 중의 하나이기에 무조건 모유 위주

배가 고파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가 안쓰러워 분유 조금 줄 수 없느냐 물어도 자꾸 물려야 젖이 빨리 돌지!라는 대답만 돌아 올뿐, 알지, 나도 알아, 그렇지만 참 서글퍼 눈물이 절로 나더라


출산 이틀이면 퇴원을 한다.

딱히 병원에서 이렇다 하게 해 준 것도 없지만 집으로 돌아가서 혼자 하려니 그건 조금 더 막막하다.

이제부터 본격 육아 시작이니 지지고 볶고 해내야만 한다.


틈틈이 기저귀 갈기는 물론이거니와 2시간 텀으로 수유해야 하는 둘째 아이, 엄마 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24개월의 첫째 아이

둘이 같이 울음이라도 터지는 순간에 덩달아 함께 울고 싶을 만큼 멘붕의 연속


이 상황에서 남편은?


매번 말은 참 잘한다.

출산에 대해 직, 간접 경험 없이 그 고통을 대체 얼마나 알겠냐만은 '고생한다. 왜 안 힘들겠냐' 그래도 위로랍시고 몇 마디 건네는 것에 고마웠다면 충분히 도와줄 수 있는 영역인 육아에 크게 동참하지 않는 건 대체 왜? 란 말인가


신생아 경우 보통 2시간 텀으로 수유를 하다 보니 낮이고 밤이고 엄마는 늘 피곤한 상태이다.

게다가 앞서도 언급했지만 우리에게는 두 살 터울의 첫째 아이도 있으니 낮이고 밤이고 이 둘을 케어하는 엄마는 피곤에 '찌든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낮이고 밤이고 수유는 완전한 엄마의 몫.

직접적인 수유는 할 수없을지라도 적어도 아이 침대에서 아이를 엄마 품에 안겨주고 트림시켜주고 정도라도 솔선수범으로 아빠가 도와주면 참 좋을 텐데 빛 좋은 개살구 마냥 입만 나불대니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인데 도와주려는 본인에게 화로써 일관한다며 그것 또한 마뜩잖다 하니 나는 보살인가요?


주님, 최소한 엄마가 낳았으면 수유라도 아빠 몫으로 넘겨주지 그러셨어요. 그러면 적어도 출산과 육아의 공평한 행복감을 맛볼 수 있었을 텐데요

왜 다 엄마 몫인 거죠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니’라고 했지만, 현실은 어머니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먹여 키우셨네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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