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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후 우울증, 나는 그런 거 모릅니다

이탈리아에서 출산하기

by 로마언니


누워서 침 뱉기인 결국은 내 가족의(시댁이든 친정이든) 흉이기에 지목하여 어느 쪽 어르신인지 밝히지는 않을 예정입니다. 본문 내용만으로 유추해보는 재미가 더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뭣모르는 육아 초보였지만 첫째는 지지고 볶고 우리 부부끼리 알아서 잘해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둘째는 조금 난감하다.

출산하고 집에 와서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보겠지만 당장 출산할 때 아이를 어쩌누.

기관을 다니지 않았고 오롯이 엄마와만 함께하던 시간이 길었던 아이라 그런지 유독 낯가림이 심했다. 그런 아이를 출산 때 몇 번 만나적 밖에 없는 지인의 댁에 맡기는 것도 아이의 정서적으로나 내 심신으로나 달갑지 않았다.

대체 상황을 이해를 하고는 있는 건지 남편은 속수무책 본인이 알아서 하겠다는 허무맹랑한 대답뿐이고, 그래! 대체 그 알아서가 뭔지 들어나보지! 라고 했을 때 돌아온 대답은 아이를 데리고 출산하는 내 곁까지 함께 지키겠다는 거다.

가능하겠니?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결국은 한국에 SOS를 보내기로 했다. 흔쾌히 수락하지는 않으셨지만 또 그렇게 부정적이지도 않으셨다.

늘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아들 내외/ 혹은 딸 네와 함께 사는 것이 소망이라시던 그 소박하지만 꽤나 어렵던 꿈을 어쩌면 이루신 건지도 모른다.

막상 오신다고 하니 그때부터 이것저것 걱정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뭐 별 일이야 있겠어, 출산 후에도 산후조리 시스템이 없는 곳이다 보니 어찌 됐든 아이를 맡기는 것, 나의 산후조리를 부탁하는 것 또한 내 가족이 나을 거라는 좋은 생각만 하기로 했다.


아이와의 적응시간을 위해 조금은 일찍 와주십사 했고, 그래도 멀고 먼 해외에서 터를 잡고 사는 자식네 도와주러 오시는 길, 긴 비행 조금이라도 덜 힘들다 느끼시게 비즈니스 좌석으로 티켓도 끊었다.


만삭의 임산부, 두 돌이 다되어 가는 아이 그리고 한국에서 오신 (외) 할머니의 고군분투가 시작되었다.


집에 도착하신 다음날부터 집 안 대청소를 하셨다.

마음에 썩 들진 않으셨겠지만 그래도 어르신 오신다고 무거운 만삭의 몸으로 나름 청소를 했건만, 결국 헛수고였다. 싹 다 뒤집어 청소하시면서 이건 뭐냐 저건 어디 둘까 하시는 바람에 덩달아 한 순간도 앉을 틈 없이 이리 움직이고 저리 움직이고 그날 밤 배가 뭉쳐 고생 꽤나 했었다.


살림 스타일도 음식 스타일도 참 안 맞았다.

내 집이지만 한동안 살림 도맡아 해 주실 테니 마음에 안 들어도 나도 일체 말하지 않았고 음식 스타일 역시 해 주시는대로 열심히만 먹었다. 어차피 출산하고는 미역국만 먹었다 (개인적으로 미역국 참 싫어한다. 게다가 40도 폭염이던 로마의 여름날에 뜨거운 미역국...) 무엇보다 음식 솜씨가 좀 많이 없으신 편이다.


그래도 와 계신 덕분에 그나마 덜 무거운 마음으로 첫째 아이를 온전히 맡기고 비록 이틀이긴 했지만 출산을 하고 퇴원을 했다. 출산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 갓난쟁이 병원 외출도 몇 번은 했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고 또 감사하다.


산후조리... 잘 모르겠다.


체력 하나는 정말 으뜸인 첫째를 전적으로 맡아서 놀아주고 먹이고 씻기고 해 주시지만 잠투정이 유독 심한 아이의 잠재우는 것과 특히 똥기저귀는 여전히 내 몫이다.

12킬로 넘는 첫째 아이를 이리저리 안고 들고 약 5킬로의 갓난쟁이 둘째 역시 안고 들고 하려니 산후 직후라 손목이 더없이 아파온다.


둘째는 모유수유 덕분에 또 전적으로 내 몫이다.

하루 온종일 수유하고 아침 녁에 아이 자는 틈에 잠시 자는 게 요즘 최대의 잠자는 시간이다.


둘째는 아무리 울고불고해도 손탄다하시며 절대 안아주지 않으신다. 어쩔 수없이 내 새끼 내가 안아 달래는 수밖에 없다. 결국 손목뿐만 아니라 온 몸이 아파오기도 했다.


나는 나 나름대로, 본인은 본인대로 열심히 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툭툭 내뱉으시는 말 한마디가 상처로 훅 치고 들어올 때도 있다.


“누구네 사위는 (며느리는) 그렇게 잘한다더라,

애 봐주고 한 달에 용돈으로 얼마씩 받았다지 아마, 그 집 아들(사위)은 금요일 6시 땡 하면 퇴근해서 온다더라, 그러면 그때부터 그 집 할머니는 주말 내내 쉬고 월요일 다시 애 봐주러 간다네?

육퇴(육아 퇴근)가 있는데 나는 한 집에 이리 사니 퇴근이 없네...” 등등


속상한 마음에 남편에게 하소연했더니, 적어도 삼칠일까지는 내가 온전히 누워서 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단다. 우리 예상을 시원스레 빗나가긴 했지만 결국 우리 도와주러 오신 거니 서로 잘 맞춰보자는 어쩔 수 없는 남의 편 같은 남편들만 대상으로 하는 ‘남의 편 교과서’라도 있는 줄 알았다.

물론 함께하는 시간 동안 잘 지낼 수 있다면 더없이 좋다. 내 아이들 내가 케어하는 거, 너무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가족이라면 닥친 내 상황 정도는 이해하고 배려해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 식구라도 개개인의 성향이 다르니 전수 생각이 똑같을 수는 없다. 게다가 우리는 해외생활이 길어진 탓인지 어느덧 한국식 문화도 이 곳 현지의 문화도 아닌 어중간한 어느 곳에도 포함되지 않는 그야말로 ‘이방인’스러운 사고방식 또한 가지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어르신의 ‘한국에서는 이런데, 저런데’ 하는 방식도 탐탁잖고 우리 방식 또한 어르신은 못마땅하시다.


두 달이 지날즈음 별 것도 아닌 것에 폭발했다.

그동안 서로 조금씩 눈치만 보던 것들이 한 번에 터져버린 어쩌면 처음부터 예견되었던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간 서로의 불평, 불만, 섭섭함을 토로하며 대성통곡으로 마무리되었다.

물론 약간의 어색함과 냉랭함이 이틀여 지속되긴 했지만 내 가족이 좋은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웃고 넘길 수 있다는 거다.


육아는 진행형이고 몸은 여전히 힘들고 투닥거리고 삐그덕 될 때마다 섭섭함 또한 여전히 쌓이고 있다.

그 날 이후 어르신과 나, 여전히 서로 결합점을 찾아 반복되는 쳇바퀴 같은 느낌도 없진 않지만 그래도 우리는 가족이니, 가족의 힘으로 견뎌내야 하고 또다시 함께 웃는 시간은 반드시 돌아온다.


모두 잠든 어두운 밤,

졸린 눈 비비며 홀로 앉아 수유를 위해 아이를 꼭 껴안았다. 따뜻한 아이의 체온이 마치 나를 위로하는 듯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를 조금만 이해해주길 바란 건 너무 큰 내 욕심이었나?


산후우울증, 나는 그런 거 절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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