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마언니 Apr 25. 2020

내가 쌓아올린 그 장애물



우리는 늘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해왔다.

원리원칙대로 지극히 FM적인 남편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지만 사람 대 사람에 지쳐 어느날 대인기피증처럼 다가왔던 나는 점점 사람을 멀리하게 되었다.

어디서든 마찬가지겠지만 해외살이에서 사람과의 유대는 장단점이 더욱 극하게 존재한다.


노력안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좁은 한인 사회안에서는 언제나 자유롭지 못했다.

의도했던 의도치않았던 상처주고 상처받는 이런 관계를 계속 유지할 의미가 없었다

어느날 대모님은 말을 멈추는 것만이 지속해나가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 일러주셨다

점점 진심은 저 뒤 멀리 가고 빈 껍데기만 나 돌 뿐이었다.

자발적 타의적 우리 둘만 남게 되었다고 느낄 때가 한 없이 많았다

되려 그 속에서 우리는 꽤나 행복했고, 불편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잘해낼거라 믿으면서도

대체 내나라도 아닌 이 곳까지 와서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 한 번 생각해보기도 한다


우리 둘은 좋았지

성인 남여에서의 독고다이적인 행보는 큰 문제될 것이 없다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남의 도움 받지않고 더구나 우리는 내 조국도 아닌 철저한 이방인 이탈리아의 삶 속에서 피해주지 않고 피해받지 않으면 그 것이 오직 최선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건만 그런 성격 탓인지 이탈리아 생활 15년 차임에도 불구하고 왕래하는 한국가족 심지어 이탈리아 가족 또한 없으니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이 것 또한 옳은 방향은 아닐거라는 생각이 불현듯이다


그렇다고 우리의 성격을 한 순간에 바꿀 수는 없다

그렇다고 아이에게도 이런 독고다이적인 성격을 물려줄 수도 없다

어느 하나의 발걸음도 물러설 수 없는 선택지 앞에서 우리는 어떠한 결정을 해야할 지 그 앞 길이 솔직히 깜깜하다


아파트라고 하기엔 한국에 비해 다소 차이는 있을지언정 우리집은 이탈리아식으로 아파트이고 단지 내에 대략 35가구 쯤 거주하고 있다

우리를 포함한 하나의 대문 속에 35가구가 존재하고 이탈리언들도 많지만 다행스럽게 외국인도 참 많다

어찌보면 이탈리아에서 살아가는 우리도 이방인 그들도 이방인으로 더 친해질 수 있는 매개체는 충분하다 여기는데 그걸 우린 못했다, 아니 더 정확히 지금도 여전히 못하고 있다.

이 단지내에서 살아온지도 벌써 6년이 넘어서건만 동네에 특별히 친한 이웃이 하나 없다

물론 얼굴보면 다들 인사는 하지만 그건 당연한거니까


우리집 마당엔 살구와 체리, 무화과, 포도, 레몬 나무 등 다양한 과실수가 있다

한 여름이 되면 알알이 맺힌 과실들이 정말 탐스럽고 솔직히 우리집 혼자서 해결하기엔 너무나 벅찬 양이기도 하기에 어느날 옆집의 동유럽권 (6년째 옆 집에서 살지만 정확히 어느나라 사람인지도 모르는) 이웃에게 살구를 좀 나누어 주고 싶다 마음을 전하니 너무나 좋아하는거다. 그들의 모습을 보니 그동안 이게 뭐라고 무한정 망설이기만 했는지 내가 살구를 나누어 주고 싶다 말하면 혹여 기분 나빠하지는 않을까 하고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내 속 마음이 그저 무색해졌다. 그때를 계기로 매년 살구를 수확하면 옆집과 나누어 먹게 되었고 어느날은 우리집 살구로 만들었다며 되려 살구잼을 선물받기도 했다

이웃과 소통하는데 고작 말 한마디면 되는데 6년을 머뭇거렸다.


첫 아이를 임신하고 만삭이 다 되었을 때, 뜻하지 않은 남편의 긴 출장 일정이 생겼다.

애가 오늘 나올지 내일 나올지 알 수도 없는 상황에 출장이 대체 무슨 소리냐며 한바탕 했지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여행업의 특성상 거부할 수 없는 조건의 꽤 좋은 일자리였기에 방법 또한 없었다.

제발 남편 출장동안에 아이가 태어나지 않기만 기도하고 또 기도할 뿐이었다.

그런 나를 홀로 두고 떠나는 남편의 입장 또한 얼마나 불편했을까,

그는 집 주인 할머니에게 만일 불가피한 상황이 되면 나를 도와 병원을 다녀와줄 수 있겠냐 물었고

그녀 역시 너무나 흔쾌히 아무런 걱정하지마 ! 너희와 우리는 이미 가족이잖니, 나는 그녀의 할머니이기도 해, 그러니 너는 걱정말고 일을 잘 다녀오렴! 했단다

그날 밤 집 주인 할머니의 그 말이 너무나 고마워 펑펑 울었다 (임산부의 호르몬 영향이었을지라도 너무나 고마웠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남편이 출장가 있던 동안 아이 역시 잘 기다려주었고 남편이 출장에서 돌아와 며칠이 지나지 않았을 때 남편과 함께 우리는 그렇게 첫째 아이를 만날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급작스레 멈추었을 때도 쾅쾅 두드리는 소리에 단 걸음에 달려와 장비로 문을 열어 우리를 구해주었던 아파트 1층의 부부와 아이들이 태어날 때마다 축하인사를 건네주는 사람들


어쩌면 그들은 우리에게 항상 마음이 열려있는데 유독 우리만이 그들에게 마음을 닫고 우리는 이방인이야! 그러니 우리 뿐이야! 하는 우리만의 틀 속에 갖혀있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중국에서부터 시작되던 초기에 동양인 혐오로 이어질까 꽤 조바심 났던 적이 있다

같은 단지내에 살지만 그들은 우리가 중국인인지 한국인인지 분명 모를테고 동양인=중국인 이라는 얼토당토 않은 해석으로 오해하면 어쩌지, 아이들을 미운 눈으로 보진 않을까 별별 생각을 다했건만 우리에게 미운 눈길을 보내는 이웃은 결코 아무도 없었다. 이탈리아가 코로나의 늪에 빠져 있을 때 (물론 현재도 외출금지령 중이다) 한국은 열심히도 제자리를 찾아가는 상황이고 이탈리아의 다수의 매스컴에서는 한국의 수순을 밟자! 한국방식을 채택하자! 등 한국소식이 종종 들려왔다.

어깨가 으쓱하는 한 편 그러면 뭘하나 우리는 결국 동양인=중국인 일텐데 라고만 생각했는데 사람들은

언젠가 우리는 한국인이라고 했던 그 소소했던 말들을 기억하고 있었더라


다가서고 싶은데 방식을 잃어버린 기분

조금 더 가까워지고 스스로 우리를 가두고 있는 그 장벽을 허물수있는 용기가 지금 우리에게는 무엇보다 필요할 것같은데 그게 알면서도 참 어렵다


우리만의 세상이 아닌게 되었다

아이가 있는 삶은 또한 달라졌다

모두가 한데 어우러지는 세상이라는 것을 적어도 내 아이에게 배우게 해주고 싶다면

엄마 아빠부터 달라져야한다


그 어렵고 힘든 마음의 숙제를 하나씩 실타래 풀 듯 풀어나가볼 참이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 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금 나는 취중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