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LOVE IS EQUAL
코로나 재확산으로 천만 서울시민 잠시 멈춤 주간을 맞아 안온한 일요일 오후의 한낮, 방구석 1열이란 영화 프로그램을 보았다. 일 년 전 늦가을에 문득 아내와 함께 보러 갔던 영화여서 좋았던 그 느낌과 함께 방구석 1열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 영화에 대해 미처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이나 내가 놓쳤던 부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관점을 제공해주기도 하고, 또한 그 작품에 출연했던 배우들이나 감독을 초대해 작품에 대한 해설과 함께 그 영화의 숨겨진 뒷얘기를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서 영화를 애정 하는 사람들이라면 빼놓지 않고 보는 프로그램이다.
오래전 읽었던 소설인지 영화 때문인지 이젠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나는 겨울이면 언제나 하루 종일 눈이 내린다는 북해도, 그중에서도 오타루와 하코다테를 겨울에 가보는 게 꿈이었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듯이 꿈은 꿈일 뿐 거의 이십 년을 매해 겨울마다 북해도를 생각하며 살았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리 어려울 일도 아닌데 일상에서 문득 일탈해볼 용기가 없었거나, 아니면 말처럼 더 이상 참지 못할 정도로 가보고 싶었던 게 아니고 그냥 막연하게 꿈을 꾸고 있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살다 보면 그런 꿈도 꿈이니까 아무런 꿈도 꾸지 않는 것보단 나을 수도 있다.
꿈은 언젠가는 이루어진다는 말처럼 지난해 초여름 유월에 갑자기 시간을 내서 아내와 함께 북해도 오타루를 다녀왔다. 이십 년 만에 이루어진 꿈이지만 겨울이 아닌 초여름이었다. 굳이 그렇게 서두를 이유가 없었는데 갑자기 문득 빨리 오타루를 다녀오고 싶어 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코로나 사태가 올 줄 알고 계신 하느님께서 미리 정해주신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기도 한다. 겨울이 아닌 여름의 오타루라 아쉽긴 했지만 오타루 운하 시계탑 앞에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서 먹으며 걸었던 오타루 운하는 눈이 내리고 가스등이 켜진 겨울 운하의 낭만은 없었다.
영화 ‘윤희에게’를 케이블 영화 채널에서 찾아서 휴일 오후의 평화로운 한낮에 다시 보았다. 몇 번을 보았지만 잔잔하게 스토리가 전개되면서 보여주는 장면, 장면은 한 장면도 놓치기 아까운 영화였다. 한국과 일본 배우들의 열연과 함께 너무나 자연스러운 스토리 전개는 더욱더 영화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와준다. 또한 소원하던 눈 내리는 오타루의 이곳저곳의 소소한 겨울 풍경은 재미를 더해 준다. 굳이 퀴어영화란 장르에 묶지 않아도 될 만큼 인간의 보편적인 사랑과 삶, 그리고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 아름다운 감동적인 영화일 뿐이다. 왜 2019년 부산 국제 영화제의 폐막작품으로 선정되었는지 이해가 간다. 개봉 이후 영화 관람객이 12만 명 밖에 안되지만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왜 인생영화라고 하는지도 보면 볼수록 동의할 수밖에 없다.
김희애란 배우의 명품 연기와 딸을 연기한 김소혜 배우의 자연스럽고 현실 모녀 같은 케미 또한 영화에 대한 집중력을 높여줄 뿐만 아니라, 일본 배우 나카무라 유코, 키노 하나의 편안한 연기가 일본이란 나라에 대한 편견을 무너뜨릴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만들어 준다. 며칠 전 지병으로 사임한 아베스러운 나라, 지금은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나라 일본이 그들처럼 따뜻한 이웃으로 지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해 준다. 이십 년이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찾아가게 되는 주인공들의 삶이 지금까지의 죄 없는 사람들의 형벌 같은 삶이 아닌 자신들과 자신들 스스로의 꿈을 찾아가는 삶에 응원을 보낸다. 앞으로의 삶은 스스로 선택할 수 없었던 소수자로서의 삶에 꽃길만이 함께 하기를 바란다. 겨울 오타루에 끝없이 내릴 것만 같은 함박눈도 언젠가는 그치는 것처럼.
“나도 내가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래, 우리는 잘못이 없으니까.”
영화 속 윤희가 쥰에게 쓴 편지 중에서
스스로 선택하거나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히는 삶이 아닌 그들 스스로의 삶은 존중될 필요가 있다. 그 어느 누구도 잘못이 없는 그들의 삶을 폄하하거나 비난해서는 안된다. 이 세상에는 본인의 뜻과 다르게 선택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소수자들의 삶이 있다. 그들이 LGBT(성소수자)라 할지라도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고, 또한 이웃으로서 그들의 삶을 존중하며 그들이 더 이상 스스로를 부끄럽지 않게 살 수 있도록 포용하는 따뜻한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눈 내리는 겨울 오타루를 꿈꾼다.
추신. 나도 니 꿈을 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