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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Jan 03. 2021

남들이 뭐라 해도 넌 너의 길을 가라

Be calm and strong

  


 오래전 아내가 지인들 모임에서 남편들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내 흉을 본 모양이었다. 밖에서는 어떻게 생활하는지 모르겠지만 집에서는 잘할 줄 아는 게 별로 없다며, 전구도 못 갈아 끼우고 간단한 가전제품의 고장 수리는 고사하고 오히려 만지기만 하면 고장을 내고, 주식 투자는 자기 회사 주식을 사는데도 상승세를 멈추고 내려간다고 불평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내는 내가 밖에서 일은 제대로 하는지 궁금하다고 했단다.


 그 모임에서 아내보다 대여섯 살 정도 연장자인 분께서 다 듣고서는 하시는 말씀이 남편 분이 괜찮은 사람인 것 같다고 했다 한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궁금해 그분께 물어봤는데, 그분 말씀이 밖에서 제대로 생활하시는 분들은 집에서 까지 잘 난척하지 않을뿐더러, 밖의 일에 집중하다 보면 집안일에는 조금 소홀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고 한다.



 반대로, 집에서 식구들에게 잘난척하고 큰소리치며 가부장적인 권위를 내세우는 남자들은 대개 밖에서 일하는 데 있어 존재감이 약하고 자존감이 떨어지다 보니 집에서라도 자존감을 높이려고 하는 반증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밖에서 일로 인한 스트레스를 집으로 가져온다는 것이다.


  어떤 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해서 집안일에 어리바리한 나는 자기 합리화가 되었다. 그러니 밖에서의 회사일에서 성과를 못 내거나 승진에라도 밀리면 나는 이도 저도 아닌 신세가 될 판이었다. 다행히 좋은 선배, 훌륭한 후배들을 만나서 운이 좋아 승진에 밀린 적은 없었다. 하지만 반드시 그분의 말씀이 맞다고 동의하지는 않는다. 또한 일반화시킬 수 있는 말씀은 아니었지만, 아내에게 나의 체면을 살려준 그분께 감사드린다.


남한산성 현절사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전후 베이비붐 세대인 그분들의 시대에는 나라도 너무 가난하고, 일자리도 충분치 않아서 먹고사는 문제로 너무 힘들게 일했던 시대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씀이 아닌가 생각된다. 어릴 때 어른들은 학업 스트레스로 인한 투정이라도 조금 부릴라치면,


“학생이 무슨 고민이 있어. 너희들은 공부만 하면 되는데, 돈을 벌어오라 하냐, 아니면 식구들을 먹여 살리라고 하냐. 들어가서 공부나 열심히 해!!!”



 이런 식의 핀잔을 주시곤 하던 시절이었다. 돌이켜 보면 그때 그 시절의 어른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상상이 간다. 단지 먹고사는 것만이 오로지 목표가 되었던 그 시절의 어른들을 생각하면 지금 시대의 청년세대들과의 가치관의 차이와 갈등을 이해 못할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마냥 이해하고 지지할 수만은 없다.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고, 시대가 바뀌면 생각도, 가치도 변하고 그에 맞게 함께 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늘 무언가 잔뜩 화가 나있는 그런 불편한 얼굴을 하고 있는 어른이 될 수밖에 없다. 문제 해결의 방법은 아주 쉬울 수도 있다. 내가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면, 나만 변하면 된다.



 지금 이 순간, 누군가가 집에서만 큰소리치고 가부장적 권위를 세습하려고 한다면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내가 혹시 밖에서 자존감이나 존재감이 약하고 기죽어 있지는 않는지, 또는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게 없는지 조용히 자신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집에서 식구들에게 큰소리치고 잘난 척할게 아니라 밖에서 큰소리칠 수 있는 존재감, 자신감, 자존감을 높이는 게 먼저가 아닐까 돌아보아야 한다.


 반대로, 회사에서 그렇게 큰소리치고 호탕하게 굴던 사람들이 가끔은 회사 일을 하다가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져서 회사를 본의 아니게 떠나게 되는 경우를 가끔 본 적이 있다. 내 직급이 낮았을 땐 그냥 제 성질을 못 이기거나, 너무 열심히 일하다가 과중한 스트레스가 원인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내가 그런 분들의 직급이 되었을 때는 그분들은 대개 스트레스를 견딜만한 내면의 힘이 약한 사람이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오히려 집에서 존재감이 약하다 보니 직급이 있는 회사에서 만큼은 자존감을 높이고 싶어서이거나, 겉으로 보여주는 남자다운 호탕함, 호방함은 사실 자신의 유약함을 감추기 위한 과장된 몸짓이었던 것이다. 대문 앞에 있는 개가 무슨 인기척만 나도 먼저 짖는 것처럼, 가끔은 개들도 사실 너무 무서워서 그런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금까지 언급한 사례들은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한 번쯤은 스스로를 돌아보거나 아니면 집에서만 큰소리치는 사람들을 다른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중요한 것은 지치고 상처 받은 그런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집안이든, 회사든 자존감을 높여주고 존재감을 키워줄 수 있을까 배려하고 공부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남의 칭찬이나 비난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내면의 힘을 키울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남의 칭찬에 너무 기분이 들뜨고, 남의 비난에 너무 기분이 가라앉는다면, 그 사람은 항상 남들을 바라보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천만 번이 변해도 나는 나일뿐이다.



“남들이 뭐라 해도 넌 너의 길을 가라(tu vai oltre, continua la tua strada).”



단테의 ‘신곡’ 중에서


남한산성 장경사의 풍경


 자존감을 높여주는 기본은 애정을 가진 배려와 함께 기를 살려주는 칭찬만으로도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한다. 따뜻한 격려와 신뢰, 그리고 응원이 필요하다. 때로는 많이 힘들 때도 있지만, 우리는 언제나 사랑하는 사람을 믿고 기다려주면 좋은 결과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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