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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Jul 27. 2020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한다

직장 생활과 일의 의미


 특별한 꿈이나 좋아하는 일에 대한 고민 없이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 대학 입학을 국어, 영어, 수학만 보는 본고사 마지막 세대 인지라 전기 대학에 떨어지고 난 후 재수의 갈림길에서 선택한 후기 대학에 합격했다. 그 콤플렉스 탓인지 기업 취업만큼은 연봉, 후생 복리, 근무 환경은 처음부터 기업을 선택함에 있어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무조건 기업그룹 총매출이 한국에서 제일 많은 회사면 좋겠다 싶었고 무난히 입사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여러 가지로 운이 좋았고 시대를 잘 만났다. 요즘 입사 기준이면 1차 서류전형도 통과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때까지  번도 내가  일을 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해보지 않은  같다. 좋은 부모를 만나 학비 걱정 없이 대학까지 다녔고,  기대에 부응해서 취업을 하고 결혼을 했으니 가족을 부양하려면 당연히 일을 해야 된다고 생각을 기 때문이다. 대신 가족의 생계가  어깨에 달려있다고 생각하니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에 보람과 숭고함을 느낄  있었다.


 내 삶의 고비 때마다 회사는 내게 언제나 비빌 언덕이 되어 주었다. 회사에 입사하고 결혼도 했으며 아이들도 낳고 키우며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회사는 나를 성장시키고 지원해주는 그런 든든한 비빌 언덕이 되어 주었다. 말 못 하는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가려운 곳을 비비거나 풀을 뜯어먹을 언덕을 디뎌 볼 수 있는 것처럼, 누구나 의지할 곳이 있어야 무슨 일을 시작하거나 이룰 수가 있다.



 언젠가 대학에 특강을 나갈 기회가 처음 주어졌을 때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그때 한 학생이 대학 시절 나의 꿈이 무엇이었는지 질문을 했다. 나는 특별한 꿈은 없었고 그냥 대학을 졸업했으니 부모님의 부담을 빨리 덜어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취업을 했고 그 후로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열심히 일했다고 답을 해주었다. 거창한 꿈이 아니라 실망스러웠겠지만 사실이었다.


 일본의 경영의 신이라고 불리는 교세라그룹의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의 저서 ‘왜 일하는가’ 란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금 당신이 일하는 것은 스스로를 단련하고, 마음을 갈고닦으며, 삶의 가치를 발견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행위라는 것을.”


 다시 말해 우리가 일을 하는 것은 인격을 수양하고 자아를 실현하기 위한 거룩한 행위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결국 이런 말의 의미를 이해하기까지는 회사 일을 시작하고 난 후 1997년 IMF와 2008년 국제 금융위기가 지나고 거의 20년이 걸려서야 진심으로 이해가 되었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자신의 존재감을 키우고 확장하려는 탐욕과, 또한 자신을 공격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 자신의 기대와 보상이 다른 것에 대한 불만을 가지게 될 수밖에 없다. 누구나 당연한 거쳐야 할 통과 의례인 것이다. 다만 깨달음 없이 그냥 통과하거나, 그것이 지나칠 때 문제가 되는 것이다.



 회사라는 조직은 정의를 구현하는 곳도 아니고, 자유, 평등, 박애의 가치를 추구하는 곳은 더더욱 아니다.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고 고용을 창출해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곳이다. 탐욕, 분노, 불만은 우리 인간만이 가지는 세 가지의 독이라고 불가에서는 말한다고 한다.


 이러한 세 가지 독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고, 단지 일을 열심히 함으로써 희석시킬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가 좋은 회사라고 생각한다면 회사에서 주어진 일에 대해 좌고우면 하지 말고 집중하고, 누구보다 성실하고 열심히 일함으로써 자연스럽게 그 세 가지 독을 해독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가 좋은 회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운동화 끈을 다시 고쳐 매고 우선 지금의 회사를 발판으로 삼아 좋은 회사를 먼저 찾아 나서야 한다. 이제 퇴사나 이직, 전직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세상은 변하고 달라졌다. 나에게 비빌 언덕이 되어 줄 수 없는 회사라면 내가 먼저 과감하게 그 회사를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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