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데이트(update)
휴일 운동을 앞두고 오랜만에 연습도 할 겸, 스포츠센터 밑에 있는 마트에서 시장도 볼 겸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섰다. 아파트 뒷길의 한적한 이면 도로 삼거리에서 한 번에 스포츠센터로 건너가기 위해 좌우를 살핀 후 길을 건넜다. 아내는 횡단보도가 표시된 곳으로만 두 번 건너서 스포츠센터 입구에서 미리 기다리고 있던 나와 다시 만났다.
아니나 다를까 아내는 왜 횡단보도를 두고 무단행단을 하느냐며 꼰대 같다고 화를 냈다. 모범생인 아내의 성격을 뻔히 알면서 횡단보도를 두 번 건너는 게 번거롭고 불편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한적한 이면도로라 해도 배운 사람 답지 못한 행동에 사과하고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을 해야만 했다.
연습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엘베를 내리자마자 새로 이사를 오는 분이 아파트 인테리어 문제로 관리소장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요지는 전에 살던 분이 불법, 편법으로 수리를 해놓았더라도 그 사실을 알게 된 이상, 안전을 위해 원상 복구해 놓아야 한다는 당연한 관리소장의 주장이었다.
지금의 시대정신인 공정과 정의보다는 늘 편법과 타협이 우선이었고 능력으로 인정받았던 후진국을 살았고, 그 시대를 거치며 치열하게 살아온 세대가 있다. 가끔은 패러다임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 시대의 정신과 경험으로만 살다가 큰 낭패를 당하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게 CCTV, 모바일폰의 녹음 기능과 촬영, SNS,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불법, 불의한 은밀한 일들이 공개되기 때문이다.
가끔 집 밑에 있는 카페에 노트북을 들고 내려가서 넷플릭스 영화를 보거나 브런치 글을 쓸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꼭 에스프레소를 주문하고, 두 시간 이상 체류할 때는 페리에 생수를 한번 더 주문하는 버릇이 생겼다. 물론 에스프레소를 좋아하긴 하지만 두 가지 모두 은근히 꼰대 티를 내지 않기 위한 나름의 방편이다. 주문할 때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에스프레소 더블샷을 주문한 게 정말 맞냐고 다시 한번 확인하는 카페 직원의 물음이 내가 꼰대임을 잊지 않도록 해준다.
또한, 남들은 몰라도 스스로 꼰대임을 느낄 때가 있다. 화장실을 가기 위해 잠시 자리를 떠날 때는 반드시 핸드폰은 챙겨간다는 사실이다. 후진국부터 개발도상국을 살아낸 나는 잠시라도 핸드폰을 두고 가면 마음이 불안하다. 그에 반해 좌우 양옆에 앉은 젊은 친구들은 노트북과 백팩, 심지어 핸드백이나 스마트폰을 놓아두고 화장실을 다녀오는 경우도 많다.
MZ세대, 그들은 그만큼 안전하고 선진화된 대한민국에서 살아왔으며 나쁜 경험이 그리 많지 않은 젊은 친구들이다. 서울에 가면 눈뜨고 코베인다는 당부와 함께 속옷에 주머니를 만들어 대학 등록금을 넣고 아들을 서울로 올려 보냈던 자상한 어머니를 둔 대학 동기가 생각난다. 지금 세계 최강국인 미국에서 조차 카페에서 노트북과 핸드폰을 두고 화장실에 다녀온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만큼 우리는 치안이 안전한 나라에서 살고 있다.
얼마 전 내부고발로 사회문제가 되었던 군부대 급식만 해도 그렇다. 유년시절부터 학교에서 유기농 무상급식을 먹으며 자란 청년들이 국가를 위해 군 복무를 하는 마당에 그들에게 난민 수용소보다 못한 급식을 제공하고, 시대정신에 공감하지 못한 일부 부대 관계자들은 아마도 곧 타의에 의한 강제 전역을 당하게 되더라도 너무 당황하지 말기를 바란다.
굳이 사병들의 핸드폰 사용 방침을 탓하기 전에 시대정신을 공감하지 못한 자신을 성찰하고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최근에도 공군, 해군, 육군 돌아가며 반복되고 있는 성희롱, 성폭력 문제도 마찬가지다. 그처럼 패러다임 쉬프트에 따라 스스로 변화하지 않고,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면 사회나 국가는 강제에 의해 변화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과거 시대의 경험만을 맹신한 자기 확신과 시대정신을 업데이트하지 않고 시간을 낭비한 죄, 그때는 뒤늦게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