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신념이란,
삼십 대 초반, 서울 변두리 도시 재개발 지역에 성냥갑을 줄 세워 놓은 듯한 아파트 단지에서 마을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회사를 다니면서 치열하게 생활하던 때가 있었다. 어느 날, 저녁을 먹고 난 후 이런저런 시사이슈를 말하던 중 아내가 문득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여보, 우리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 노인을 모시고 함께 살면 안 될까”
갑자기 그런 뜬금없는 말을 하는 아내를 바라보면서 특별히 놀라지는 않았다. 90년대 초에 열린 남북 고위급 회담을 취재하던 북측 기자에 의해 그의 부인의 편지가 남측에 전달되며 북에 있던 가족의 생사가 확인되었고, 그 후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이인모 노인을 북으로 보내주자는 여론이 일고 있었고, 북측도 회담과 대남 메시지를 통해 끈질기게 그의 송환을 요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왜 하필 하고많은 사람들 중에서 우리가 모시고 살아야 되는가 하는 이유에 대해 무척 궁금했다. 아내의 말은 자신이 믿는 신념을 지키고자 40년의 세월 동안 교도소에서 갖은 회유와 억압 속에서도 전향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지킨 어른을 모시고 살면 아이들도, 그 어른도 서로 좋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이었다. 아내의 휴머니즘적 생각은 이해했지만, 그때 좁은 아파트와 가정 형편에 모실 입장이 아니었기에 그 해프닝은 싱겁게 끝났다.
요즘 정치인들이 자신의 신념을 자꾸 내세우기에 한 인간의 신념이란 무엇일까 생각해보면서 그때 일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 해프닝과는 다른 얘기지만, 문득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질 때 가장 위험하다.”라는 말이 생각났다. 특히 이념적, 종교적 신념은 더더욱 그렇다. 여기서 무식하다는 것은 못 배우고 덜 배운 게 아니라, 잘못 배웠거나 한번 배운 이후로 더 이상 학습하지 않아 변화된 환경이 업데이트되지 못한 상태를 말한다. 결국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그 이인모 노인은 그때 북한의 현실을 마주하고 자신의 신념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을까 궁금하다.
영화 ‘1987’(2017, 장준환 감독)에서 보더라도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의 은폐에 깊숙이 관여된 영화 속의 치안본부 박 처장(김윤석)이 이념적 신념을 갖게 된 동기가 그렇다. 해방이 되고 북한에 공산정권이 들어서면서 집안의 머슴이 붉은 완장을 차고 박 처장의 집안을 풍비박산으로 만들었다는 설정을 보면 그 배은망덕한 머슴과 박 처장의 두 무식한 신념이 얼마나 무섭게 우리 사회에 작동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그처럼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갖게 된 일반화의 오류, 특히 여성, 남성, 사이비 종교, 좌우 이념에 대한 잘못된 신념은 더더욱 그렇다.
회사 생활에서도 가끔은 추진 업무에 대한 잘못된 신념을 가진 부지런한 상사가 제일 무섭다. 쓸데없는 잦은 회의와 잘못된 업무지시로 실제로는 회사를 가장 위태롭게 만들 때가 있다. 오히려 똑똑하지만 적당히 게으른 상사가 정확하게 방향을 제시하고 후배들이 자율적이고 창의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권한 위임을 해주어 후배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리더십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신념이라는 것도 결국 시대 정신과 주변의 공감을 받을 때 그 신념은 더욱 빛을 발휘할 수 있다. 세상의 흐름과 변화를 적극 수용하고 정확한 팩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 때만 스스로와 이웃에 도움이 될 뿐이다. 요즘은 인터넷 검색 기능을 활용할 수도 있지만 SNS, 페이스북과 트위터, 인스타그램만 꾸준히 들여다 보아도 삼고초려의 제갈공명처럼 세상의 움직임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볼 수 있다.
또한 굳게 믿는 마음, 어떠한 신념은 환경변화와 세상의 흐름에 따라 새롭게 업데이트되지 못한다면, 잘못된 신념을 가지게 되고 세상과 이웃에 흉기로 변할 뿐이다. 그 천박한 신념을 가진 사람은 불행하게도 스스로 누구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무식하다는 것은 공부를 많이 하고 적게 하고의 문제가 아닌, 어떤 사실을 제대로 배우지 않은 데다 보고, 듣지 못하여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세상이 변할수록 우리가 스스로 계속 학습하고 업데이트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