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원
잡지에서 우연히 사유원에 관한 기사를 읽고 한 번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그곳, 특별히 신록의 계절 오월에 가려고 아껴두었었다. 아무래도 푸르른 나무들과 들꽃, 그리고 아름다운 건축물들을 둘러보고, 산책하며 그 이름처럼 사유하고 명상하기에는 오월이 최고일 것만 같았다. 한 사람이 평생 바라본 세상은 그가 읽은 책의 합이라지만 나는 여행하며 바라본 합이 오롯이 내 세상인 것 같다.
다른 것은 몰라도 나는 여행 다닐 때만큼은 돈을 아끼지 않으려고 한다. 여행은 삶의 수단이 아니라 목적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치열하게 생활하고 열심히 일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을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할 수 없고 갈 수 없다면 일이라는 삶의 수단은 그저 힘든 노동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경상북도 군위에 있는 사유원은 철강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모 회장이 사재를 털고 승효상 건축가가 전체적인 기본 설계를 했다.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 건축상을 두 차례나 수상한 “건축의 시인’이라 불리는 포르투갈의 알바로 시자 등 세계적인 건축가와 정영선 등 조경전문가들과 함께 만들어낸 군위에 있는 사립 수목원이다.
사유원을 소재로 한 글을 쓰는 이유는 그의 좋은 뜻을 널리 알리고 싶어서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었다면 그곳에 골프장이나 만들고 싶었을 텐데 CNN 여행채널에 소개될 정도의 사유하고 명상할 수 있는 매우 특별한 자연과 건축 공간을 만들어낸데 대한 존경심의 발로이다.
일본 부잣집의 조경을 위해 팔려가는 삼백 년이 넘은 모과나무 네 그루가 안타까워 대신 비싼 값을 치르고 구매한 얘기부터 사유원의 설립 이야기는 시작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부의 뜻깊은 사회적 환원이라는 좋은 취지로 만든 사유하고 명상할 수 있는 공간, 사유원의 설립동기부터가 남다르다. 그 숭고한 뜻을 기리는데 동참도 할 겸, 다시 되찾은 삼백 년 넘은 모과나무를 직접 만나보고 싶어 찾아갔다.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사유원을 둘러보고 산책하면서 만나는 건축물과 숲 속 정원, 그리고 연못들은 오월을 더욱 빛나게 했다. 여행은 반드시 삶에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여유가 필요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우리 인생의 소중한 순간을 담기 위해서는 일시정지 버튼을 눌러야 할 때가 있다. 인생 뭐, 별거 없다. 매사 너무 머리 아프게 고민하지 말고 선물 같은 삶을 즐기는 태도가 중요하다.
또한, 자신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우리 인생에 큰 선물은 없다. 오래전부터 매년 연말이 되면 일 년 동안 수고한 나 자신에게 스스로 좋은 선물을 하나씩 사주곤 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일 년 동안 또 잘 살아냈으니 그냥 나를 귀하게 여기고 싶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는 삶의 의미 있는 순간들을 음미하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왜 그렇게 삶을 쉼 없이 조급하게만 살아왔는지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아직 다가오지도 않은 먼 미래의 일을 고민했다. 지나고 보면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어차피 걱정은 실행으로 덮을 수밖에 없다. 그냥 매일매일 오늘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하고 끝내면 된다. 어떻게든 된다.
오히려 머리를 비워야 한다. 그래야 다시 채울 수 있다. 우리 인생에서 삶의 수단과 목적이 뒤바뀐다면, 훌륭한 사람이 될 필요도 없고 성공할 필요도 없다. 모두 부질없는 일이 되고 말 테니까. 열심히 사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생각 좀 하고 살 일이다.
지금까지는 삶의 수단과 목적이 불명확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 또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에는 시간이 없다. 우리 인생에서 실수는 언제든 할 수 있지만, 문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다.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구나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는 않는다. 누군가 나이가 오십이 넘어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면 그것은 실수가 아니라 그 사람의 삶의 태도일 뿐이다.
“기분이 우울하면 과거에 사는 것이고, 마음이 불안하면 미래에 사는 것이고, 마음이 평화롭다면 지금 이 순간에 사는 것이다”라는 노자의 말씀이 있다. 생각은 과거에 머물지 말고,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앞서서 걱정하지 말고, 지금 오늘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살아갈 일이다.
어느 뇌과학자에 의하면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다고 느끼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가 언제나 청춘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새로운 것을 배우고,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길을 걷는 것이라고 한다.
여행하고 걷는 것, 산책은 뇌가 휴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사유원을 찾은 관람객 대부분이 도시의 일상에 지친 수도권 20, 30대 젊은 층이라고 하니 그 뜻이 널리 전파된 모양이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 고민하는 청춘들에게 누구네 엄마표 응원 멘트처럼 “어차피 넌 잃을 것도 없는데, 그냥 재미있게나 살아”라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