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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Sep 02. 2022

밥 먹는 게 꼴 보기 싫어질 때 ‘헤어질 결심’을 한다

면치기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서 배우 이정재와 정우성이  모 여자 연예인과 함께 비빔국수 맛집을 찾았다. 이정재는 식사 내내 면 음식을 먹을 때 더 맛있게 먹기 위해 소리를 내는 '면치기'를 하지 않았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소리도 안 내고 조용히 먹었고, 그 여자 연예인은  "국수를 소리를 안 내고 먹냐. 소리를 안 낸다"면서 "아, 소리가 나야죠"라고 의아함을 드러냈다.


 또한 그녀는 보란 듯이 화려한 면치기 기술을 자랑했다. 조용히 국수를 먹던 이정재는 깜짝 놀란 듯 식사를 멈추고 그녀를 바라봤다. 출연진은 "이렇게 먹어야지"라며 환호했다. 해당 장면을 접한 네티즌들은 이정재와 그녀의 식사 예절을 비교하며 그녀를 향해 비판을 쏟아냈다.


리움 미술관


 이정재는 한국의 올바른 식사 예절을 보여준 반면, 그녀는 '면치기'라는 잘못된 예절을 보여줬는데도 방송에서는 마치 그녀가 옳은 것처럼 그려졌기 때문이었다. 어느 요리 칼럼니스트는 오래전 모 신문 칼럼에서  “국수를 먹는 민족 가운데 일본만이 소리를 내는 것이 오히려 ‘예의’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국수 빨아들이는 소리가 결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 일제 치하에서 전해진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라면서 그전에 이미 조선에서 국수를 소리 내어 먹지 말라는 문헌의 글이 발견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중국도 소리 내어 먹는 건 결례라고 생각한다라고 올바른 식사 예절을 설명했다.



 그동안 꽤 오랫동안 각종 예능에서 국수류를 먹을 때 국수를 끊지 않고 소리 내어 흡입하듯 먹는 면치기를 우리나라의 음식 문화인 것처럼 방송해왔다. 늘 그 면치기 식사 장면을 볼 때마다 공감할 수 없었고 미안하지만 조금 천박해 보이기까지 했다. 어느 조사 결과에 따르면 ‘헤어질 결심’을 하는 첫 번째 이유가 밥 먹는 게 꼴 보기 싫어질 때라고 한다.


 물론, 그런 이유로 헤어질 결심을 하는 사람들일수록 첫 데이트에서는 국수가 아닌 비싼 초밥을 먹었을지도 모른다. 스스로 좋은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많이 경계하고 있지만, 나는 ‘무지하고 편향된 사람들’과는 가능하면 말을 섞지 않는다.



 끼리끼리는 과학이다. 어차피 기울어진 운동장인데 쓸데없는 논쟁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연예인의 직업상 예능이라고 생각하면서 국수 맛을 재미있게 표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러나 아무리 예능이라고 해도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이제 드디어 네티즌들도 인내의 한계를 넘어섰다고 생각했는지 많이들 비판하고 있고, 사실 관계는 바로잡아야 하기에 용기를 내본다.



 언젠가 읽은 글을 보면 “청나라에 사신으로 간 조선 양반이 그곳 천주 회당에서 하인이 치켜든 요강에 오줌을 누다가 서양인 신부에게 제지를 당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걸 문화적 다양성이란 말로 옹호할 수는 없다. '문화'는 제 땅을 벗어나는 순간 보편성의 시험을 거치기 마련이다.”라는 대목이 있다.


 오랫동안 해외 비즈니스를 했지만 미국, 중국, 베트남, 유럽 등은 물론이고 심지어 파스타의 본고장 이태리에서도 스파게티면을 먹을 때 ‘면치기’를 하지 않는다. 아니 면치기를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식당에서 그렇게 면치기 하는 모습을 본다면 아마도 그들은 그 면치기 하는 사람을 절대 존중하지 않을 것이다.



 그처럼 문화적 다양성이나 설사 종교적 신념이라고 해도 인류 보편의 시험을 거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이 다시 회교 근본주의자들인 탈레반의 치하에 들어간 지 오래되었다. 여성들을 다시 검은 부르카로 덮어 씌우고 작은 구멍 몇 개로 시야를 확보할 뿐만 아니라 여자들에게는 아예 교육의 기회조차 빼앗아버리는 만행과 학대를 거듭하고 있다.



 어느 누구도 그 탈레반 정권이 무슨 거창한 구호를 들고 나온다고 해도 인류 보편적 가치를 저버린 그들을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정치인이든, 누구든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이 다를 때는 언제나 행동이 진실을 가리키는 법이다. 아무리 옳고 심오해 보이는 그 무엇이라 해도 그 사람의 삶과 동떨어진 말과 글은 무게와 깊이를 가질 수 없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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