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엔 깊은 고요가 잠들고 시름은 이제 이슬처럼 가볍다

어쩌다 나는,

by 봄날


가을을 그냥 떠나보내기 싫어서 제주도에 내려왔다. 시월초, 페이스북에 류근 시인이 아래와 같은 글을 써놓았길래 깜박 속아서 옆에 있던 아내에게 뜬금없이 부다페스트에 가서 보름만 살다오자고 말했다. 아내는 코로나 때문에 아직은 여행이 두렵다며 싫다고 했다.


그럼, 나 혼자 가서 늦가을을 보내고 부다페스트에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면 돌아오겠다고 말했다. 아내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결국 나는 부다페스트 대신 함께 제주도에 내려와서 해지는 가을 들길을 걷고 있다.



“지금 부다페스트는 서늘하고 축축합니다. 어제 아침 인천을 떠나 바르샤바를 경유해서 부다페스트에 닿았습니다. 바찌 거리에 있는 호텔 창가에 앉아서 이 글을 씁니다. 새벽 가로등 불빛에 비친 다뉴브강의 빛깔을 당신에게 보여줄 수 없어서 슬픕니다. 당신은 분명 더 깊고 푸르러진 눈을 반짝이며 내게 기쁨의 시 한 구절을 들려주었을 텐데요. 혼자 떠나와서 미안합니다.


세체니 다리


날이 밝으면 세체니 다리로 산책을 가려합니다. 당신은 영화 <글루미 선데이>를 좋아하지 않았지요. 그 우울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영화에 나오는 세체니 다리 입구의 혀 없는 사자상을 이야기하며 예술가의 영혼을 이야기하던 저녁이 생각납니다. "강물에는 깊은 고요가 잠들고 시름은 이제 이슬처럼 가볍다..." 요제프 아틸라의 시를 읽던 저녁도 생각납니다. 아, 그토록 오랜 저녁이 우리에게 머물렀던 겁니다.



서울의 10월을 견디지 않으려고 비행기를 탔습니다. 시간의 경계가 바뀔 때마다 내가 간직한 상처와 열망들은 제 무게를 덜었을까요. 언젠가 당신이 선물해 준 음반엔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5번>이 수록돼 있었습니다. 손열음의 착한 눈빛을 당신은 사랑한다고 했고, 나는 손열음의 착한 잇몸을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웃었군요. 그보다 더 웃을 일이 많았을 텐데 자주 웃어주지 못해서 또 미안합니다.



13세기의 도시 에스테르곰에 며칠 머무르는 것 외엔 줄곧 부다페스트에서만 10월을 보낼 것입니다. 에스테르곰에는 당신도 좋아하는 바실리카 성당이 있지요. 나는 아침마다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던 당신 뒷모습이 참 좋았습니다. 부다페스트에선 주로 카페 뉴욕과 카페 제르보, 그리고 또 변함없이 술집과 술집 사이에서 가슴을 허물게 될 것입니다. 10월의 부다페스트는, 나처럼 부유한 가난뱅이가 쓸쓸해지기에 참 좋은 도시로군요. 도나우 강변에서 또 쓰겠습니다. 이만 총총.


ㅡ 이래 놓고 광장시장에 낮술 먹으러 감. 시바”



페이스북에 이래 놓고 류근 시인은 광장시장에 낮술을 먹으러 갔지만, 나는 또 그의 글을 읽고 헛된 꿈을 꾸었다. 맨날 시바, 시바 하는 류근 시인을 좋아한다. 지난해 겨울, 양양 낙산사에 여행 갔을 때 그가 대학시절 지은 시에 가수 김광석이 곡을 입힌 노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불후의 명곡, 에일리)을 밤에 듣고 센티멘털해져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지금까지 살았던 계획한 삶이 아닌, 문득 어디론가 떠났다가 그곳에서 가난한 시인처럼 생활하고 다시 연어처럼 돌아오는 삶을 꿈꾸었다. 근래 부다페스트에 대한항공 직항이 가을부터 취항했다는 기사를 읽고 더욱 그랬다. 류근 시인의 글처럼 세체니 다리가 내려다 보이는 호텔방에서 새벽 가로등 불빛에 비친 다뉴브강을 바라보면서 상념에 젖고 싶었다.


크리스마스마켓


그리고, 늦은 아침에 천천히 일어나 산책하듯 세체니 다리를 건너고, 카페 뉴욕에서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하지만 시인 류근의 시처럼, ‘어쩌다 나는’ 늦가을의 제주도에서 개기월식의 붉은 달이 뜬다는 밤에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5번을 듣고 있는지 모르겠다. 인생이 그러하다. ​류근 시인에게 묻고 싶다. 페북에 이런 감성 충만한 글을 올려놓고 광장시장에 혼자 막 낮술 먹으러 가면 돼요, 안돼요? 진지하면 반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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