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
주말 오전, 국립극장 앞에서 열리는 마르쉐, 농부시장을 다녀왔다. 시장을 보고 난 후 원래 계획했던 늦가을 남산 순환도로 산책은 아내의 열정 부족으로 캔슬했다. 그리고 농부시장에서 구입한 김밥 한 줄은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해결하고 말았다.
시장 본 쌈채소와 고기구이로 점심을 함께 만들어 먹고 예능 프로그램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를 보았다. 오스트리아에서 여행 온 미녀 세명이 부산의 놀이동산에 놀러 가서 교복 코스프레를 하고 놀이동산을 신나게 즐기는 장면이 나왔다.
지난 봄날, 튤립이 만발하던 용인 에버랜드에 갔던 일이 문득 생각났는지 아내가 말했다.
“여보, 봄에 에버랜드 갔을 때 생각나요?”
“그럼요, 근데 뭐가요?”
“당신, 저렇게 교복 입고 돌아다니는 남녀 커플들 보고 학교 땡땡이치고 놀러 왔다고 말했잖아요.”
“그러게요. 누가 들었으면 정말 창피당할 뻔했어요.”
그땐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 빼곤 놀이동산을 다녀본 적이 많지 않았기에 새로운 요즘 트렌드를 알지 못했다. 아니, 알 수가 없었다. 그 많은 교복 입은 학생들이 모두 학교 수업을 빼먹고 놀러 온 줄 알았다.
어떤 생각이나 추측은 알게 모르게 스스로 살아온 자신의 삶을 반영한다. 중학교 3학년 때, 친구와 함께 일교시를 마치고 학교 담장을 넘어 버스를 타고 명동에 놀러 갔던 일이 있었다. 그 당시 명동에 있던 삼대 백화점을 모두 섭렵하고 이소룡 주연의 영화, ‘맹룡과강’(1974)까지 보고 난 후 마지막 수업이 끝나기 전에 겨우 학교로 돌아왔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전에 교실 분위기를 파악하고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바로 담임선생님께 불려 갔고 선생님은 그 배신감에 소리를 질렀다. “야, 너마저”, (You, too, Brutus!!)라고 말했다. 잘못 번역된 “또, 너냐, 부루투스!!“ 는 분명히 아니었다. 중학교 시절의 나의 일탈은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의 염려 덕분에 무사히 중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고 사춘기를 잘 극복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남들보다 조금 더 마음의 소리에 응답했을 뿐이었다. 얼마 전에 일어났던 상상할 수 없는 이태원 참사에 희생된 중고생들 또한 그랬지 않았을까 생각하면 너무 가슴이 아프다. 더 이상 다른 말은 필요 없다.
지난봄, 에버랜드에서 있었던 그 헛소리를 잊지 않고 있다. 그 후 잘 알지도 못하는 일에 바로 반응하고 응답하기보다는 한 템포 멈추고 먼저 생각해보는 버릇이 생겼다. 어떤 학교를 다녔든, 어떤 경력을 가졌던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얘기하는 것은 잘못이고 죄악일 때가 많다. 골프도 스윙탑에서 한 템포 쉴 때 힘이 비축되고 거리가 나는 법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한다. 석기시대는 돌이 없어 끝난 게 아니다. 자신이 배우고 경험했던 모든 것들이 무용지물이 되는 순간이 있다. 무엇이든 잘 모르면 나서지 말고 먼저 학습해야 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의 과거 경험을 일반화해서 어떤 현상에 대해 섣불리 응답하다 보면 꼰대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