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의 머리 위를 지나듯 살라 했건만,

헤어질 결심

by 봄날


트위터, 유튜브, 브런치 모두 지금 영화 ‘헤어질 결심’으로 난리가 났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을 아내와 함께 보았다. 영화가 개봉하기도 전부터 이미 그 내용을 대충 알고 있었다. 칸느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덕분에 유명세를 타면서 취재 경쟁 속에 여기저기서 보고 들었던 내용만 짜깁기해도 이미 그 영화 내용의 대부분을 알게 된 것이다.



영화를 보는 동안 긴장감이 없어서 그랬는지 전반부에는 내용에 몰입할 수가 없었고 탕웨이의 패션과 부족한 한국말 대사만 들렸다. 다음 장면이 그려지기도 했지만 한 남자를 파멸에 이르게 한다는 구식 팜므파탈형 애정영화의 플롯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은 낯선, 조금은 친숙한 영화 ‘헤어질 결심’을 그렇게 감상했다.



영화가 끝나고 영화에 집중했던 아내는 나보고 영화 보는 동안 잠깐 졸지 않았느냐며 추궁하기 시작했다. 이미 대충 영화 내용을 알고 본 데다 장면마저 너무 낯익어서 그랬는지 다음 후반부로 넘어가기 전 잠깐 졸았는지도 모르겠다. 칸느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영화를 보고 졸았다는 것을 인정하면 아내에게 더 이상 존중받을 수 없을 것을 알기에 딱 잡아뗐다. 그동안 나도 누구처럼 학문보다 항문을 더 열심히 닦고 살았나 보다.


하지만, 꾸준함이란 측면에서는 억울함이 있다. 결혼 전 아내와 연애하는 동안에도 아무리 재미있는 영화를 봐도 집중할 수가 없었다. 두 시간 동안 서로 화면만 바라보고 있는 게 너무 지루했다. 오히려 아내를 마주 보고 있는 게 백배는 더 재미있었고, 다시는 영화관에 가지 않겠다고 결심했었다. 그때 아내에게 그 결심을 고백했어야 했다. 인생은 언제나 타이밍이다.


그 영화를 보고 난 후 각종 매체나 브런치에 올라오는 많은 후기와 리뷰를 보면서 영화의 디테일과 장면, 장면이 하나둘씩 머릿속에 그려지면서 다시 한번 영화에 몰입하게 되었고, 영화 삽입곡 ‘안개’(가수 정훈희)를 몇 번씩 들었다. 세계 3대 영화제인 칸느 영화제에서 왜 새로울 것이 없는 구식 영화에 감독상의 영예를 안겼는지 충분히 동의할 수 있었다. 모든 진실은 늘 디테일에 숨어있기 마련이다.



그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고뇌에 찬 헤어질 결심을 하는 이유와 달리, 현실에서는 어느 조사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연애하는 동안 헤어질 결심을 하는 이유 중 가장 많은 세 가지 경우가 문득 생각났다.


첫째, 밥 먹는 게 꼴 보기 싫어질 때( 먹는 게 아니라 처먹는 것처럼 보일 때), 둘째, 행동 하나하나가 미워질 때(꼴 보기 싫어질 때), 셋째, 연락하기 귀찮아질 때 등이다.


영화는 영화일 뿐, 현실에서는 영화처럼 복잡다단한 감정이 승화하거나 깊은 사랑의 결심 때문이 아니라 헤어질 결심은 그냥 단순하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연애하는 동안 대개는 무슨 특별히 대단한 이유로 헤어질 결심을 하지는 않는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끈기가 없다. 이유 있는 호감에서 시작된 사랑의 감정은 언제든 반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들었던 결혼식의 주례사 중 “지금까지는 서로가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사랑하게 되었다면, 앞으로는 서로가 이런저런 이유에도 불구하고 서로 변함없이 사랑하라”던 말씀이 떠오른다.


어떻게 보면 꾸준함은 재능에 속한다. 연애하는 동안 서로 변함없이 사랑할 수 있는 것도 그 꾸준함이다. 누가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그를 존경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가 의자에 오래 앉아 집중할 수 있는 그 끈기만큼은 존중받을 수밖에 없다.


쁘띠 프랑스


우리가 서로 오랫동안 변함없이 사랑하는 연인들을 존중하는 이유도 그 꾸준함의 재능이다. 서로에게 너무 많이 기대하지 말고 서로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그리고 서로에게 덕 볼 생각만 하지 말고 오히려 서로가 그 덕을 베풀 생각을 하면 그 꾸준함은 마침내 지속 가능할 수도 있다. 조만간 ‘헤어질 결심’을 곧 다시 볼 결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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