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
늦은 저녁을 브런치 먹듯 대충 챙겨 먹고 분리수거도 할 겸 아내와 함께 가까운 성당으로 밤 산책을 다녀왔다. 집에 돌아오면서 마트에 들러 주말 동안 먹을 일용할 양식을 사 가지고 왔다.
든든하게 냉장고를 채운 후, 마지막으로 아이들이 먹을 새로 사 온 요플레를 냉장고에 넣고 오래전 사다 놓은 유통기한이 지난 요플레를 먹으면서 ‘플라이 투 더 댄스’를 보고 있었다.
시장 본 물건들을 정리하고 옆에 앉아 같이 TV를 보던 아내가 내가 먹고 있던 요플레를 보더니 깜짝 놀란다. 지난번에 사다 놓고 마지막 한 개 남은 거를 먹느냐고 묻는다. 그 말뜻을 알기에 당연히 새로 사 온 요플레가 아니라 유통기한이 하루 지난 요플레를 먹고 있다고 말했다. 아내는 미안한지 그냥 멋쩍게 웃는다.
결혼하고 서울 근교 작은 아파트에서 첫아이를 낳고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쯤의 일이 문득 생각났다. 회사에서 야근을 마치고 밤 열두 시가 넘어 집에 도착했다. 출출해서 냉장고를 열어보니 맛있는 사과가 있길래 무심코 깎아 먹었다.
다음날 아침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를 위해 과일을 준비하던 아내가 묻는다. 위칸에 있는 빨간 사과를 내가 먹었냐고 묻길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아내는 싫은 소리를 매우 서운하게 말했다.
그건 아이에게 간식으로 싸 보낼 유기농 사과란다. 아내가 말하기를, 내가 먹어도 되는 것은 언제나 과일 칸에 있는 일반 사과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그냥 존중받지 못한 마음에 서운함을 감추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 후 아내의 태도가 바뀐 것은 아니었다.
지금까지도 몇 가지는 아이들이 먹는 것과 내가 먹는 것은 다르다. 아이들은 유기농 바나나, 난 그냥 필리핀 바나나, 아이들은 동물복지형 계란, 나는 일반 계란 등등.
하지만 지금은 조금도 서운하지 않다. 오히려 아이들을 생각하는 아내의 마음이 고맙기만 하다. 아내는 장모님이 자신을 귀하게 키웠듯, 아이들을 귀하게 키워야 자존감이 높아지고 누구에게나 귀하게 대접받고 산다는 믿음이 있다. 집에서 많이 사랑받으면, 밖에서 사랑을 구걸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젊은 시절, 요즘 젊은이들과 달리 공동 육아, 공평한 가사노동의 분담 등 가정의 공정과 상식에서 일부 벗어났던 행동들에 대해 많이 반성하고 있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굳이 위안을 삼자면 남자는 철들면 재미가 없다.
가끔은 독박 생계와 존버 정신에 투철했던 스스로를 합리화하기도 한다. 어차피 우리들의 인생이란 잘못하지 않고, 실수하지 않으려고 태어난 것은 아니다. 처음 해보는 모든 것에 충분한 학습이나 연습이 없으면 실수하거나 잘못하기 마련이다. 문제는 같은 실수나 잘못을 반복하는 것이다. 결혼 생활도 마찬가지다.
지난 시절에 부족했던 것, 잘못했던 것에 대해 뒤돌아보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면 된다. 우리의 삶이 그렇다는 뜻이다. 과거의 잘못에 매몰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잘못하는 것이 두려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실수할까 걱정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그것이 최악이다.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지만, 배는 항구에 머물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파올로 코엘료, 순례자). 우리의 인생 또한 마찬가지다. 젊다는 것은 질풍노도의 시절과 같다. 그 말 그대로 ‘대단히 빠르게 불어오는 바람과 미친 듯이 닥쳐오는 파도’, 어쩌면 태풍이 불어오는 것이다.
태풍이 불어올 때는 모든 나무가 비바람에 심하게 흔들리며 버텨내지만 오직 한 나무만 움직이지 않는 나무가 있다. 그건 ‘뿌리 깊은 나무’가 아니라, 그 나무는 이미 죽은 나무이기 때문이다.
태풍이 불어올 때는 태풍이 부는 방향으로 함께 흔들리는 나무들만 살아남는다. 그 태풍에 흔들리지 않고 맞서는 나무는 결국 뿌리째 뽑혀 날아갈 수밖에 없다. 우리의 삶도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