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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Aug 10. 2023

세상의 모든 것이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저출산


 얼마 전에 한국의 레즈비언 부부가 곧 아이를 출산한다는 뉴스가 화제가 되어 인터넷상에서 갑론을박이 있었다. 벨기에에서 합법적으로 정자를 기증받아 임신을 했다고 한다. 인터넷 뉴스에서 파리 에펠탑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만삭의 사진과 함께 올린 기사를 읽었다.


 그 기사에 달린 여러 댓글처럼 남의 인생을 가지고 서로 논쟁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우리나라도 예전에 내가 일로 만났던 선진국 사람들처럼 다양한  가족 구성과 다양한 삶의 형태로 그렇게 변해가는구나 싶었다. 그리고 내가 오랫동안 살아왔던 과거와 다른 패러다임의 변화를 실감했고, 특히 그 댓글 중의 하나에 관심이 갔다.


보링포센(Voringfossen)


“레즈비언 임신 출산에 사회가 아이 처지를 걱정할 게 뭐 있냐, 대부분 허수아비밖에 없는 다른 가정 대신 저 집은 엄마만 둘인데. 돌봄을 받아도 배로 받겠지. 메리트 말고는 아무것도 안 느껴진다.”라는 댓글을 보았다. 지금은 달라졌지만, 하필 아이들 키울 때는 독박생계, 독박육아로 치열하게 살 수밖에 없었던 나의 과거를 돌이켜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하고 공감했다.



 동시에 언젠가 브런치에서 읽었던 글이 문득 떠올랐다. 세 아들을 의사로 키운 시아버지가 80대에 이르러 인생을 돌아볼 때 가장 후회하는 것 한 가지를 며느리가 글로 옮긴 내용이었다. 며느리 입장에서 보면 자식들을 잘 키워놓고 훌륭하게 부모로서의 소임을 마친 시아버지가 무슨 후회를 할까 궁금했다고 했다.



 그 시아버지는 그 나이에 이르니 인생이 참 허망한 생각이 든다고 말씀하시면서, 치열하게만 살았던 옛날에 좀 더 아내에게 잘해주었으면 좋았을걸 하고 후회하신다고 말했다고 했다. 아마도 지금은 알콩달콩 잘 사시는 것 같은데 젊을 때 그렇게 재미있게 살았으면 더 좋았을걸 하고 후회하시는  좋은 어른일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또한 그 어르신의 말씀에 공감이 가는 나 자신의 이유를 돌아보았다.


 그 레즈비언 부부가 곧 아이를 낳는다는 뉴스를 아내에게 소개하며, 동시에 그 브런치 글을 얘기해 주었더니, 아내가 또 자신이 읽은 글을 소개해 준다.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행복한 부부들만 많이 인터뷰하고 만나본 어떤 사람이 행복한 부부는 공통점이 한 가지 있었다고 말했다며 맞추어보라고 했다.



 몇 번 오답을 말하고 난 후 아내가 말했다. 그 행복한 부부의 공통점은 그 행복한 부부를 취재를 하거나 인터뷰를 할 때조차도 손님인 취재원이나 인터뷰어를 먼저 배려하고 신경 쓰기보단 남편이 그  순간에도 매번 아내를 더 배려하고 신경 쓰고 있었다고 말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아내와 함께 누구를 초대하거나 모임에 가면 예의 그 사회성이라는 이름으로 아내를 먼저 배려하고 신경 쓰기보단 남들을 먼저 배려하고 신경 쓰는 바람에 아내에게 많이 컴플레인을 받았던 일이 생각났고 미안했다. 그나마 위안 삼는 것은 그땐 철이 없었고 어렸다고 이해받을 때가 있지만, 앞으로는 국물도 없다는 경고로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게이랑에르 피오르, 노르웨이


 다시, 저출산 문제로 돌아가면 우리나라는 지난 십 오 년간 280조를 투입했지만 합계출산율은 0.78까지 떨어졌고 지금은 인구소멸과 저출산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심지어 미성년자인 ‘고딩엄빠’(mbn)라는 TV 프로그램까지 제작하는 수준에 이러렀다. 하지만, 아이들을 키워보니 애들이 있으면 있는 대로 행복하고, 애들이 없으면 없는 대로 행복할 것 같다. 가끔은  무자식 상팔자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란 걸 공감할 때가 있다.


빙하


 우리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이고, 자연의 모든 동식물들 또한  그들이 살아가기에 척박한 환경에서는 아무리 인위적인 노력을 가한다고 해도 그들의 씨를 퍼뜨리거나 번식하지 않으니 실패할 수밖에 없다. 즉, 번식을 위해서는 비바람을 막고 온도를 유지하는 비닐하우스를 짓거나 해충을 박멸하는 농약을 치든, 아니면 위험한 인간들이 들어갈 수 없도록 울타리를 만들던지 그 척박한 환경을 바꾸어줄 수밖에 없다.



 하물며 말 못 하는 동식물도 그렇거늘, 유사 이래 가장 훌륭하고 똑똑한 우리 MZ세대들이 마음 놓고 아이를 키우기 어려운 환경에서 아이 낳기를 주저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고, 자연스러운 자연의 현상일 뿐이다.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선택을 바꾸도록 강요할 수도 없고 강요해서도 안된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미래에 대한 희망과 출산정책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purple heather


 지금의 우리나라 출산환경은 치열한 입시경쟁과 학교폭력이 일상이 된 교육환경,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아이가 아프면 데려갈 소아과나 아니, 아이를 낳을 산부인과조차 점점 소멸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 소중한 아이를 낳은 여성들은 경단녀가 되거나 노동 현장에서 차별받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고 최근에는 결혼을 위해, 또는  아이를 낳아기를 보금자리를 어렵게 마련했지만 기성세대들의 탐욕으로 인한 전국적 전세사기로 그들을 자살로 내몰고 있디.


Bergen, Norway


 자살률은 세계 1위이고, 청년고독사는 매일 열명이고, 연애단계의 데이트 폭력이나 스토킹 폭력 또한 매일 뉴스를 장식하니 이런저런 이유로 연애조차 하지 않는 MZ세대가 65%라는 통계가 있었다. 남자들은 경제적인 이유로, 여자들은 운에 맡길 수밖에 없는 지극히 위험한 연애에 적극적일 수가 없다. 그들의 부모 또한 연애를 해도 걱정, 안 해도 걱정일 것이다.



 가끔은 네 쌍둥이와 사진 찍고 사회적으로 후원하는 뉴스도 좋지만 그것 또한 누구나 해낼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기성세대는 맨날 말로만 인구소멸을 걱정하면서, 위에 지적한 사회문제를 먼저 해결하겠다는 올바른 정책이나 법률 하나라도 제대로 시행하거나 통과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런 우리 사회를 믿고  순진하게 ‘무턱대고 낳다 보면 거지꼴 못 면한다’라는 산아제한 시절에 쓴 표어의 역습이 현실이 될 것을 MZ세대들은 걱정하고 있을 뿐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또한 지금의 중년세대는 마처세대, 즉 부모 세대를 모시는 마지막 세대이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MZ세대인 자식들의 부양을 받지 못하는 처음 세대가 된다고 한다. 게다가 은퇴 후 꿈에 그리던 자신의 인생을 편안하게 즐기기는커녕 예외 없이 사회적 지위, 경력과 무관하게 국가와 제도를 대신해 손주손녀의 돌봄까지 맡고 있는 실정이다.


 은퇴했지만 여전히 돌봄 없는 주말의 쉼을 기다리고 있고 그 돌봄은 대개 80세가 되어야 끝난다. 전후 베이비붐 세대 860만 명이 은퇴 쓰나미에 돌입한 지 오래지만 백세시대를 위한 노후준비는 대부분 미흡하다고 한다. 자연현상에 따르는 인구 감소를 걱정할 게 아니라 기성세대 스스로를 걱정할 때이다.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비슷한 저출산 경험을 가진 프랑스는 이런저런 출산정책과 돌봄 제도를 마련한 결과 현재 합계출산율이 1.8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나쁜 출산환경에 따른 자연현상인 인구 감소를 걱정만 할 게 아니라 출산 환경을 개선할 수 있도록 우리 스스로가 먼저 행동해야 할 것 같다. 이번 잼버리사태에서도 보듯 국가는 늘 사고만 치고 그 뒷수습은 온 국민이 나서서 하는 게 단군이래 오래된 우리의 전통이기 때문이다.


마돈나, 에드바르트 뭉크


세계 10대 경제대국임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우리의 현실은 아직 다른 선진국의 생활수준에 한참 못 미친다. 국토면적대비 인구 과밀로 인한 좋은 일자리 경쟁으로 취업률은 낮고 서울과 지방, 도시와 농어촌간 빈부 격차는 점점 심화되고 있다. 아니 노인들 뿐인 농촌과 어촌은 곧 사라질 것처럼 보인다.


국립미술관 카페, 오슬로

 

 어찌 보면 그런 나라보단 북유럽의 많은 나라들처럼 국토 면적에 비해 인구는 오백만 또는 천만명이지만 개별국민소득은 높고 모두가 함께 행복한 강소문화복지국가는 실현 불가능한 꿈같은 얘기일 뿐일까.


 인생은 짧다. 남에게 관심도 없으면서 애를 낳으라 마라, 쓸데없이 남의 인생에 간섭 말고 그럴 시간에 내 애들이나 안아줄 수 있을 때 한 번이라도 더 안아주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한 번이라도 더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게 낫지 않을까. 사필귀정, 세상의 모든 일은 자연의 이치대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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