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날 Jan 14. 2024

우리는 모두, 결말이 불확실한 여행을 하는 자유인이다

coffee


 요즘은 내 영어이름이 ‘coffee’로 바뀐 지 오래된 기분이다. 나와는 몇 시간 시차가 있는 아내가 매일 아침에 눈을 뜨고 거실에 나오면, 라디오 클래식 음악을 듣고 있는 내게 무심하게 ”커피!! “하고 말하는 게 나를 부르는 영어 이름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coffee!!”하고 부른다. 내가 아내와 함께 매일의 일상을 소화한 지 몇 년 만에 내 영어 이름이 ‘coffee’가 되었다.



 나는 그 이름을 반갑게 수용하고 편리한 네스프레소 커피머신으로 에스프레소를 내릴 때마다 보람으로 생각한다. 오히려 어떤 날에는 “coffee!!”하고 두세 번 부르지 않으면 서운할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지난가을부터 보게 된 ‘나는 SOLO‘(sbs plus)를 함께 보며 TV속 출연자들이 누가 서로 짝이 될까 맞추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내 꿈은 당신과 나태하게 사는 것


내 꿈은 당신과

나태하게 사는 것

더 이상 치열하지 않아도

괜찮은 것

그저 내 키만 한 소파에

서로 기대어 앉아

과자나 까먹으며

TV 속 연예인에게

깔깔댈 수 있는 것

그냥 매일 손 잡고

걸을 수 있는

여유로운 저녁이 있는 것

지친 하루의 끝마다 돌아와

꼭 함께하는 것

잠시 마주 앉아 서로 이야길

들어줄 수 있는 것

네가 늘 있는 것

네가 늘 있는 것


그냥 매일 손 잡고

걸을 수 있는

여유로운 저녁이 있는 것

지친 하루의 끝마다 돌아와

꼭 함께하는 것

잠시 마주 앉아 서로 이야길

들어줄 수 있는 것

네가 늘 있는 것

네가 늘 있는 것


내 꿈은 당신과

나태하게 사는 것

당신과 남은 생을 사는 것


노래, 슌(shoon)



 그동안 꿈꾸었던 ‘내 꿈은 당신과 나태하게 사는 것‘, 그 오랜 꿈을 이루었다. 치열한 사회생활을 하면서 내가 원했던 삶은 사라지고 세상이 만든 삶만 남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젠 소소한 일상의 삶에 매사 감사하게 생활한다. 행복은 우리가 삶에서 느끼는 감사함의 연속이니까. 아무 때나 자고 싶으면 자고, 잘만큼 잤으면 일어난다. 드디어, 아침시간이 좋아졌다.


 조출만퇴(早出滿退), 바쁜 직장생활에서 가장 싫어했던 짝퉁 사자성어였지만 존버했다. 지금은 재미있게 생활하고 자유롭게 살고, 남에게 폐 끼치지 않으면 그만이다. 가끔은 주변도 좀 둘러보고. 새해,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결심하지 않는다. 삶은 어차피 끝없는 반복이니까.



 얼마 전에 트위터에서 읽었던 글이 생각난다. 말기암으로 죽음을 앞둔 어느 중년여성이 신부님에게 한 말이라고 했다.


 "신부님, 저는요. 남편이 집안을 돌보지 않아서 남편에게 하나도 미안한 거 없고요. 빌딩청소한 돈으로 자식 대학까지 공부시켜서 자식한테 미안한 것도 없어요"


"..."


"대신, 47년 동안 고생만 한 제 자신에게 너무나 미안해요"


 짧은 내용이었지만 그 여성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십 년 전쯤, 새벽에 앰뷸런스를 타고 가까운 대형병원에 실려갔던 경험이 있다. 정신줄이 붙었다 끊어지기를 반복했다. 그 순간에 삶은 매우 단순하게 정리되었다. 나라를 구하는 것도 아닌데, 회사 일만 하다가 이렇게 루저가 된다고 생각하니 너무 억울했고 스스로에게 미안했다.


TRINITY


 문득, 몇 해 전에 보았던 한국 뮤지컬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2022)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무뚝뚝한 남편 진봉(류승룡)과 무심한 아들, 딸을 위해 무작정 헌신하며 살아온 세연(염정아)이 어느 날 자신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무심한 남편한테 책망하고 울면서 하는 말이다.


“옷정리하려고 그랬어. 근데 여름옷을 버려야 할지 겨울옷을 버려야 할지, 아직 한 번도 못 입은 옷도 있어. 아끼고 아끼다가 택도 못 뗐는데..”



 인생 별 거 없다. 하루하루 숙제하듯 살지 말고 많이 먹고, 많이 돌아다니고, 너무 걱정하지 말고 재미있게 살면 된다. 좋은 옷 있으면 아끼지 말고, 좋은 차나 커피 있으면  넣어두지 말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말 자꾸 미루지 말고, 지금 말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고마운 사람에게 지금 고맙다고 말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결말이 불확실한 여행을 하는 자유인이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대개 인간은 내가 불행하면 남에게 관심이 많아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