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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Jan 10. 2024

대개 인간은 내가 불행하면 남에게 관심이 많아진다

피의자, 피해자


 요즘 같은 겨울이 되면 가끔 한 번씩 다시 보게 되는 영화나 드라마가 있다. 그중 하나가 영화는 ’ 꽃피는 봄이 오면‘(2004)과 드라마 ‘나의 아저씨’(2018)이다. 물론 그 영화나 드라마의 배경이 겨울이기도 했지만 겨울도 녹일 수 있을 만큼 따뜻한 연출이 좋았다. 또한 바쁜 일상에 지친 도시인들이 위로받을 수 있고, 새로운 희망을 찾고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그 영화에서 탄광촌의 고향을 지키면서 조그만 약국을 운영하며 살아가는 수연(장신영)이라는 역할로 우리에게 밝고 선한 이미지로 다가왔던 한 배우가 있었다. 이십 년 전, 아마도 그때 그녀가 처음 영화에 데뷔하지 않았을까 싶다. 최근 그 배우의 남편 이야기로 연일 언론과 SNS에서 매우 시끄럽게 도배를 하고 있어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잘못과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대개는 반성과 사과면 그만이지만, 그 잘못이나 실수가 사회적인 규칙이나 규범을 어겼으면 그에 상응하는 법적 제재를 받는다. 또한, 그렇지 않고 윤리와 도덕에 관한 문제이면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될 뿐만 아니라, 누군가 지금까지 이루어놓았던 사회적 명예와 존경을 한순간에 잃고 만다.


 지난 연말, 불행하게도 우리는 영화 ‘기생충’(2022)을 통해 세계적으로 그 재능을 인정받았던 훌륭한 한 배우를 잃었다. 여기 브런치를 비롯해 많은 지성인들이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애도했던 것은 그가 일으킨 사회적 물의를 무작정 두둔하자는 게 아니었다. 우리가 안타깝게 여겼던 것은 그 사건의 피의자에 대한 불법적이고 무분별한 수사기관의 ‘피의사실’ 공표와 가감 없는 언론의 받아쓰기에 분노했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 사건의 피의자에 대한 재판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무죄추정의 원칙’이 무너지고 법으로 엄연히 금지하고 있지만, 그 법을 수호해야 할 수사기관이 관행적으로 언론에 피의사실을 공표해서 그 사건에 대한 재판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피의자를 여론재판에 내몰았다는 사실이다. 특히 연예인일 경우에는 그 정도가 심해 사회적 타살에 이르게 할 만큼 심각한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는 것이다.


 어떤 사건의 피의자가 연예인일 경우, 그의 실수나 잘못의 백배, 천배 더 높은 죗값을 치르게 되거나 사회적 비난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물론 일반 대중의 사랑을 받고 사는  연예인은 그 기대가 일반인과 다를 수 있다. 게다가 언론은 사적인 영역까지 끄집어내고 피의사실 공표에 따른 자극적인 기사로 클릭 장사를 한다. 대개 인간은 내가 불행하면 남에게 관심이 많아진다.



 또한, 일부 잘못된 대중은 수사결과나 재판의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그 기대를 저버린 연예인들의 언론기사나 연예인들의 SNS에 몰려가 악의적인 비난 댓글을 달고 그들이 저지른 실수나 잘못의 백배, 천배 분노를 표출하고 화풀이를 하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수사기관이 알게 된 피의사실을  언론에 흘리고, 알 권리를 넘어선 그 연예인의 세세한 사적 대화까지 공개하는 것은 너무 심한 사생활 침해가 아닌가. 시시비비는 법정에서 가리면 된다.



 연예인도 개인의 인격을 가진 존재이고, 그들의 사생활을 함부로 공개해서는 안 된다. 또 연예인들은 이미 평소에도 대중의 관심만큼이나 각종 거짓 소문과 악성 댓글, 스토킹에 시달리고 있다.  하긴 뭐, 얼마 전에는 판다곰 푸바오를 사육하는 동물원 사육사에게까지 댓글 공격을 가했을 뿐만 아니라, 그 비난 댓글 중에는 심지어 태도가 불량하다며 판다곰 푸바오를 비난하는 댓글도 있었다고 한다. 누구나 우리는 가시가 가득한 세상에서 위태로운 풍선처럼 살아가고 있다.



 한 해를 마감하는 연말에 안타까운 비보를 접하고 어디 마음 둘 데가 없어 새해가 될 때까지 우울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물론, 새해 벽두부터 터진 그 배우남편의 사건은 연말의 비보와는 조금 결이 다르기는 하지만, 그 연말의 비보를 겪고도 조금도 달라진 게 없다. 나만 아니면 된다. 즉, 우리 사회가 자정기능을 상실했다는 뜻이다.


 점점 더 잔인해져 가는 우리 사회와 언론의 현실이 답답하기만 하다. 또, 한 가정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곧, 29개 문화예술단체로 결성된 ‘문화예술인연대‘를 대표해 봉준호 감독, 가수 겸 작곡가 윤종신 등이 기자회견을 열고 ’故 이선균 배우의 죽음을 마주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요구’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한다고 하니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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