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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Jan 05. 2024

설거지를 하지 않으면 그릇을 깰 이유도 없다

영화, 세렌디피티


 지난 연말, 매년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영화채널에서 보여주곤 하는 영화, 세렌디피티(serendipity, 2002)를 다시 보았다. 개인적으로 매우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오래전 재미있게 보았던 영화, 진주만(2001)에 출연했던 배우 ‘케이트 베킨세일’이 주연을 맡았고 또한 뉴욕의 야경을 실컷 볼 수 있기 때문에 채널을 돌리지 않았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좋아하는 취향이라면 이 영화 내용은 이미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니 부연 설명은 필요 없다. 사랑의 모든 것은 운명에 달려있다고 믿는 여주인공 사라(케이트 베킨세일)가 믿는 세렌디피티, 사전적 의미로 뜻밖의 발견, 의도하지 않은 발견, 운 좋은 발견을 의미한다. 이 영화에서는 운명적인 만남을 뜻한다.



 하지만, 이 세상의 모든 사랑이 운명으로  이미 결정되어 있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그 영화의 남자주인공 조나단(존 쿠삭)처럼 모든 것은 노력으로 이루어진다고 믿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이지 않을까. 모든 사랑 영화에서 보듯, 인간은 대개 인생에서 가장 열정적일 때가 연애를 하는 그 순간이다. 그리고 이별을 하든, 결혼을 하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소는 키워야 하니까.


 설거지를 하지 않으면 그릇을 깰 이유도 없다. 아직도 가사노동을 도와준다는 인식의 수준에 머물고 있지만 틈만 나면 아내의 수고를 덜겠다고 설거지를 하다가 그릇을 깨면, 물론 아내에게 잔소리를 듣는다. 조금 억울한 마음은 들지만 안 도와준 것만 못하니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고 그릇 한 번 깼다고 그것이 두려워 설거지를 하지 않으면 사랑받을 일도 없다.


월미도, 인천


 사랑도 마찬가지다. 운명적인 만남만 기대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지나고 보면 인생의 모든 것들이 운명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난 후 지금은 잊었지만, 다시 돌이켜보면 절대 그렇지 않다. 매번 어떤 선택이나 두 가지 갈림길에서 우리는 늘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살아왔던 것이다.


 모든 것은 그, 때가 있다. 젊을 때 실패를 두려워 말고 이것저것 많이 해봐야 자기가 무얼 좋아하는지 알 수 있고, 꿈을 가질 수 있다. 편식하지 말고 이것저것 많이 먹어봐야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음식을 찾을 수 있는 것과 같다. 연애도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을 만나봐야 자신의 ‘취향과 스타일’을 제대로 알 수 있다. 아니면, 누구라도 한 사람 깊이 사귀어보던가. 어차피 인간은 모두 같은 종(Species)이니까.



 그래야 십 년 넘게 잘만 살다가 갑자기 ‘성격 차이’라는 애매모호한 이유로 헤어지지 않을 수 있다. 운명처럼 다가온 사랑이라면 더더욱 객관적일 수 없으니까. 나쁜 인간만 아니라면 어차피 성격은 살면서 맞추어가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별이 두려워, 또는 상처를 받을까 봐 새로운 만남을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물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상처받을 일도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누군가에게 사랑을 전적으로 준 적도, 전적으로 받은 적도 없는 삶이 뭐 그리 자랑스럽겠는가.



 “더 많이 사랑하지도 말고, 그래서 다치지도 않고, 그래서 무사하고 그래서 현명한 건 좋은데.. 그래서 그렇게 해서 너의 삶은 행복하고 싱싱하며 희망에 차있는가 하고.. 그래서 다치지도 않고 더 많이 사랑하지도 않아서 남는 시간에 너는 과연 무엇을 했으며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언젠가 읽었던 소설책, ‘봉순이 언니’(공지영, 해냄출판) 속의 한 구절이다.



 누구든 그 연애의 순간만큼은 열심히 사랑하면 된다. 아님 말고,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흘러가는 인연은 그냥 흘러가게 놔두면 된다. 그렇다고 그 영화의 내용처럼 만나게 될 인연은 반드시 만나게 된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으면 결국 다시 만나지 못할 테니까. 단지,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그 빈자리를 메꾸려고 쓸데없는 조급함에 헛것을 채우는 일이다.



 결핍은 누구에게나 있다. 특별히 더 공부할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연애란 상대방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니까. 현실에서는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2022)처럼 누가 갑자기 나타나서 이유 없이 “나를 추앙해요”하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내가 누구를 한 번도 제대로 채워준 적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나를 가득 채워주지 않을 테니까. 연애도 운명도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일 뿐이다. 운명은 앞에서 날아오는 돌멩이와 같다. 우리가 하기 나름이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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