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위의 꿈
꿈이라는 주제로 대학생들 한테 특강을 할 때면 늘 강의 마지막에 받는 질문이 있다. 대학생 때 꿈이 무엇이었냐고 물어본다. 두 시간 넘게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주제로 강의해 놓고 대답하기엔 좀 쑥스럽지만 나는 대학교 때 사실 별 꿈이 없었다고 대답한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 생각난다. 주인공인 덕선이와 아빠가 골목 계단에 앉아 아빠가 덕선이에게 꿈이 무엇이냐고 묻는 장면이다. 덕선이는 망설이다가 특별한 꿈이 없다고 대답한다. 그때는 나도 그랬다.
나는 굳이 꿈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을 찾으라면 대학교 2학년 마치고 군대 다녀와서 고시 공부를 하고 공무원이 되는 게 꿈이었다. 꿈이라기 보단 공무원 생활로 정년퇴직까지 하신 아버지의 권유 때문이었다. 나 또한 공무원이 되면 잘 살지는 못하더라도 그냥 안정적으로 편하게 살면서 인생 마칠 수 있을 것 같았다. 최근 코로나 사태 방역과 대응을 바라보면, 지금의 공무원들은 그때와는 사뭇 달라져서 직업의 안정성을 제외하고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계획대로 자원해서 군대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대학 3학년에 복학을 했지만 80년대 중반 군사정권 시절이라 연일 벌어지는 학내 데모와 어수선한 사회분위기에 휩쓸려 그마저도 생각이 바뀌고 말았다. 솔직히 말하면 학교 중앙 도서관에 고정석을 맡기 위해 새벽에 등교해서 도서관 자리 좌우로 골판지를 덧대고 앉아 세상을 등지고 고시공부를 하기엔 나는 너무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복학 후 열심히 대학생활을 하고 즐기면서 4학년이 되어서야 대기업에 취업하고 빨리 결혼해서 부모님의 수고를 덜어드려야 하겠다는 현실적인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계획대로 대학 졸업 후 바로 취업하고 일 년 후 조금은 이른 결혼을 하게 되었다.
이렇다 할 꿈도 꾸지 못하고 그렇게 또 회사생활을 시작해서 함께 입사한 동기들이 모두 회사를 그만둘 때까지 끝까지 존버 하게 되었다. 힘들고 지쳐서 퇴사하고 싶은 유혹에 빠질 때마다 “Never ever give up”이란 한 장의 사진을 보며 버티곤 했다. 미국에 이민 간 분이 부도가 나고 죽고 싶을 때, 누군가 보내준 이 그림을 보며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 성공했다는 신문 기사를 읽고 카피해 회사 책상 앞에 붙여 놓은 것이었다. 개구리 한 마리가 논에서 황새에게 잡혀먹히기 일보 직전의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맞짱 뜨고 있는 모습을 연필로 대충 그린 그림이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무엇을 하겠다는 특별한 꿈은 없었지만 가정을 이루고 취업을 했으니 생계를 위한 책임감만은 무척 강했다. 나에게 꿈이라고 하면 생계를 책임진 가장으로서의 의무와 부담감이 곧 꿈이었다. 그때는 누구나 독박 생계, 독박 육아를 할 때였으니까 대개 그랬었지 않나 싶다. 그리고 생계를 위해 직장생활에서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으며 앞만 보고 살아왔다. 하지만 요즘은 세상이 바뀌고 패러다임이 변한 지가 오래다.
지속 가능한 꿈을 꾸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세상이 도래했다. 더 이상 고속 경제 성장도 없고, 인재는 차고 넘쳐서 기업이 별별 아이디어를 다 짜내서 인재를 선발해 지친 취준생들을 더 힘들게 하고, 결혼은 반드시 해야 할 필요충분조건도 아닌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세상이 되었다. 또한 글로벌 경계는 무너지고, 반드시 취업을 해야만 먹고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출퇴근 없이도 자유롭게 디지털 노매드, 프리랜서로 살아갈 수도 있으며 주류사회에 진입할 수도 있다.
지금은 정보화 사회에 뒤 이어 올 미래 사회, 즉 꿈과 이야기와 같은 감성적인 요소와 상상력이 중요한 드림 소사이어티로 이동하고 있다. 꿈을 높고 크게 꾸면, 그 꿈이 현실로 이루어질 확률이 더 높아진다.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베이스캠프를 높은 곳에 쳐야 한다. 어떤 사람이 되고 어떤 목표를 이루었냐가 행복과 성공의 기준이 될 수 없는 세상,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어낸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다. 행복한 사람은 지속 가능한 꿈을 꾸면서,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인디언의 기우제처럼 꿈이 이루어질 때까지 그 꿈을 놓지 않고 생활할 수 있는 사람이 인생이란 삶의 주인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