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재난지원금
밖에 자유롭게 돌아다닐 순 없었지만 그래도 꽃피는 봄날이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만물이 소생하는 어수선한 봄이지만 코로나 사태로 마스크 끼고 겨우 동네 공원을 산책하는 수준이었다. 이제 그마저도 갑자기 기온이 오르면서 오늘이 여름에 접어든다는 절기상 입하란다. 최근에 아쉬운 봄을 보내는 마음을 더욱 어수선하고 혼란스럽게 만든 사건 사고가 몇 개 일어났다. 상상도 하지 못할 안타까운 이천물류센터 화재가 일어났고, 오월 연휴 초입에는 연례행사처럼 강원도 고성에서 산불이 크게 났다. 다행히 고성 산불은 지난해 봄과는 달리 걱정했던 것보다는 신속하게 대응하고, 빠르게 산불을 진압해 국민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왜 소방관들을 국가직으로 전환하고 그들에게 자긍심을 높여주어야 했는지를 여실히 증명해주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모두 인간의 욕심과 부주의가 부른 인재였다. 이천 물류센터 화재도 그 속을 들여다보면 노동 현장의 구조적인 문제와 제도상의 허점을 피해 간 결국은 돈에 대한 인간의 욕심이 부른 참사였다. 해외에서 온 이주노동자나 비정규직인 일용직 노동자들이 그 희생의 중심에 있다는 현실이 마음을 아프게 하고 선진국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부끄럽다. 매번 반복되는 후진적 참사와 재난 앞에서 아직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멀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 TV에서 보았던 범죄심리 전공 교수께서 한 말 중에 인간에게는 더 이상 희망이 안 보여서 자기는 동물 관련 프로그램만 시청한다는 말에 공감을 하게 한다.
세계적인 팬데믹 현상의 코로나 사태 대응과 방역에서 보여준 한국의 위상과 세계적 찬사로부터 벗어나서 이제는 조금 더 겸손하게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할 것 같다. 최근에 다행히도 코로나 사태로 삶이 더욱 피폐해진 280만 가구의 저소득층을 위하여 긴급재난 지원금을 신청의 유무와 관계없이 은행계좌 통장으로 현금이 우선적으로 선지급이 된다고 한다. 국가의 존재 이유를 잘 설명해주는 일이다.
또한 왜 정치가 필요한지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에게는 정치는 별 소용이 없을 수도 있다. 그리고 세계 여러 선진국들의 민낯과 실상이 이번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모두 드러나고 말았다. 그동안 제도권 교육과정과 일부 정치인들이 필요할 때마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것만 가져다 써먹으며 곡학아세 하던 것들로부터 제대로 된 글로벌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이제 긴급 재난지원금이 오월부터 전 국민에게 지급이 된다고 한다. 처음엔 소득기준 하위 70%에게만 지급된다고 하다가 그 구분이 오히려 애매하고 또 다른 사회적 갈등을 만들 것을 우려해 일단 전 국민에게 지급하기로 모처럼 여야가 신속히 합의를 하고 국회 동의를 끝내주었다. 유종의 미를 거둔다더니 동물 국회란 오명을 조금이나마 씻었다.
하지만 이제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그 긴급재난지원금을 받지 못할 뻔했던 상위 소득 30%에 속했던 분들로부터 코로나 사태로 인한 실직 등의 고용안전기금으로 사용할 수 있게 끔한 자진 기부의 문제다. 나는 국가에서 생각하는 것만큼 과연 그분들이 자진 기부를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관심이 가는 대목이다. 대통령께서도 기부를 강요해서 또 다른 사회 갈등을 만들어서는 안 되며 기부행위는 보람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기부를 하고 안 하고가 어떤 판단의 기준이 될 수도 없으며 되어서도 안된다. 전적으로 개인적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데 동의한다. 어찌되었던 내 인생에 정부에서 무조건 큰 돈을 그저 준다고 하는 참 이상한 나라에서 살아보다니, 너무 고맙다.
나는 감사하게도 행복한 고민을 가져다준 그 상위 소득 30%에 속한다. 원래 받을 생각도 없었지만 또 괜히 큰돈을 그저 준다고 하니 나는 갑자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 돈을 받아서 연로하신 부모님께 드리고 효도를 해볼까, 아니면 애들에게 선물로 주고 어깨에 힘을 한번 넣어볼까, 평소에 자주 못 가던 재래시장에 가서 한 번에 미친 듯이 모두 써버릴까 등등.
진작부터 신청을 안 하고 삼 개월 후에는 자동적으로 기부 처리되어 고용안전자금으로 전환되도록 하겠다고 선언한 아내는 내 얘기를 듣고는 펄쩍 뛴다.그래도 세대주에게 대표로 지급한다면 나한테 그 권리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다가 금방 이성을 찾고 가정의 평화를 지키기로 현명한 결정을 한다. 그래, 살면서 세상에 잘 한일 보다는 잘못한 일이 훨씬 더 많았는데 가끔은 보람 있고 기특한 일을 할 때도 있어야 그게 진짜 인생이다.
누군가 그랬다.
우리는 살면서 세상에 잘 한일 보다는
잘못한 일이 훨씬 더 많다고.
그러니 우리의 삶은 언제나 남는
장사이며 넘치는 축복이라고.
그러니 지나고 후회 말고
이 순간을 감사하라고.
정말 삶은 축복이고 감사일까.
(tvN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