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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늑대의 시간은 가고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by 봄날


해가 뉘엿뉘엿 기울고 산등성이에 땅거미가 내려앉을 무렵, 점점 어두워지면서 개인지 늑대인지 구별이 안 되는 시간, 저녁 어스름에 주로 산책을 나가곤 한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하루 일과를 끝내고 모두가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개와 늑대의 시간이란 말도 요즘엔 맞지 않는 말인지도 모른다. 도시를 포함한 모든 농어촌에 전기가 들어가면서 이젠 개와 늑대의 시간이었던 저녁 어스름은 깊은 산골에서나 경험할 수 있을 듯하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벌써 6년째, 인생에서 가장 참혹한 장면을 TV 생중계로 지켜보는 잔인한 시선을 거둘 수 없었던 그날이 오늘이다. 아직도 해마다 그 날이 오면 하늘도 갑자기 맑다가 흩어진 구름이 모여들어 어두워지고 검은 구름 사이로 한줄기 강렬한 빛을 내려보내는 신비로운 경험을 할 때가 몇 번이나 있었다. 미신을 믿진 않지만 그런 자연의 신비로움을 마주할 때마다 하늘에 있는 그들의 빛이 내려온 게 아닌가, 어른으로서 그들에게 지은 죄가 있어 그런지 가슴이 두근두근하고는 했다.



며칠 전 강경화 외무장관이 프랑스 방송사와 인터뷰를 하면서 한국이 코로나 19 방역과 대응에서 세계의 모범과 표준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로 겪었던 국민들의 학습과 트라우마도 한몫을 했다고 말했다. 국난 극복의 DNA뿐만 아니라 우리는 서로 그 아픈 상처를 끄집어내기 싫어 말하지 않을 뿐 매우 공감하는 말이다. 어떤 것은 직접 당해보지 않아도 일정 부분 이해는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것을 공감한다는 것은 반드시 스스로 경험해보아야만 가능한 일이다.


6년이 지난 아직도 그날의 진실은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으며 다시 재수사를 한다고 야단법석을 떨고 있지만, 그 재수사의 주체조차도 아직 스스로의 범국민적 신뢰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으니 그 결과에 대해서는 큰 기대가 없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세월호 참사에 대한 막말로 부끄러운 선거를 치르고 있는 안타까운 일도 벌어지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개와 늑대의 시간은 이제 기술의 발달로 사라진 지 오래다. 하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가 않다. 우리 모두 참과 거짓을 구별할 수 없는 암흑의 시대가 아닌 희망찬 21세기 문명국가에 살고 있는데도 4.16 그날의 진실은 개와 늑대의 시간처럼 뚜렷하게 보이질 않고 흐릿한 어둠에 가려져 있다. 누구나 어렴풋이 그 날의 진실을 알고는 있지만, 일부는 그 희미한 진실을 이유로 개를 개라 말하지 않고, 늑대를 늑대라 말하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틀 전 세월호 참사 6년 만에 한국 기자협회가 기자 사회를 대표해 세월호 유족에게 '보도 참사'를 사과했단다.



세월호 그 날의 진실은 반드시 밝혀지고 책임 소재가 분명하게 가려져야 한다. 훗날 아니, 곧 진실이 낱낱이 밝혀지고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는 ‘ 그 날 ‘ 이 오더라도, 모든 사람들이 그 날의 진실을 순순히 받아들일까 하는 데에는 가끔 의문이 들곤 한다. 깊이 잠든 사람은 깨울 수 있어도, 자는 척하고 있는 놈은 깨울 수가 없다.


“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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