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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겠는가?

시절 인연

by 봄날


시골 초가집에서 불이 나면 농부의 유일한 재산인 외양간의 소를 끄집어내는 일이 큰 일이다. 소는 절대로 밖으로 나오지 않으려 한다. 아무리 힘센 장사가 끌어내도 소용이 없다.


지 죽는 줄도 모르고 되새김질을 하며 꿈쩍도 않는 소를 밖으로 신속하게 끌어내는 방법이 하나 있는데 소의 여물통을 엎는 것이다.


그러면 소가 '이제는 이곳에 희망이 없구나, 이곳에는 더 이상 내가 먹을 것이 없구나' 생각하는지 그제야 불길을 피해 밖으로 천천히 걸어 나온다.




우리들에게 아니, 내게 상처를 주는 미련한 소의 여물통 같은 집착은 과연 무엇입니까?


일, 연애, 재물, 권력, 인간관계...


호수 속에 있으면 호수의 푸르름을 볼 수 없듯이
떠나고 나면 한 줌도 안 되는 것들을 위해


미련한 소처럼 그 여물통을 붙잡고 죽을 만큼 상처 받으며 되새김질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렇게 봄날이 가고 여름이 오듯,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겠습니까?



시절 인연



불가 용어에 시절 인연 이란 게 있다
모든 인연에는 오고 가는 시기가 있다는 뜻이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만나게 될 인연은
만나게 되어 있고
무진장 애를 써도 만나지 못할 인연은
만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이나 일 ,
물건 과의 만남도 또한
깨달음 과의 만남도 그 때가 있는 것이다
아무리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어도
혹은 갖고 싶은 것이 있어도
시절 인연이 무르익지 않으면
바로 앞에 두고도 만날 수 없고
손에 넣을 수 없는 법이다
만나고 싶지 않아도
갖고 싶지 않아도
시절의 때를 만나면 기어코 만날 수밖에 없다
헤어짐도 마찬 가지다

헤어지는 것은 인연이 딱 거기까지 이기 때문이다
사람이든 재물이든 내 품 안에 내 손 안에서
영원히 머무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재물 때문에 속상해하거나
인간관계 때문에 섭섭해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죽을 만큼
사랑했던 사람과
모른 체 지나가게 되는
날이 오고,
한때는 비밀을 공유하던 가까운 친구가
전화 한 통 하지 않을 만큼 멀어지는 날이 오고,
또, 한때는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웠던 사람과
웃으며 볼 수 있듯이
시간이 지나면
이것 또한 아무것도 아니다.

변해버린 사람을
탓하지 않고
떠나버린 사람을
붙잡지 말고,
그냥 그렇게 봄날이 가고 여름이 오듯..






(시절 인연, 작자미상, 퍼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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