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an not breathe(숨을 쉴 수 없어요)
최근 미국에서 일어난 인종차별적인 백인 경찰에 의한 흑인 시민 압사 사건은 정말 실망스럽다 못해 분노를, 아니 그 불의에 저항하는 시위에 나도 참여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유튜브나 그 뉴스 화면을 한 번만 제대로 본다면 아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제도권 교육에서 우리가 배워온 ‘아름다운 나라’라는 미국은 정말 아름다운 나라인가 의문을 갖게 한다. 나라의 수준에 미달하는 미국이거나, 아니면 캘리포니아에서 좋은 쌀을 많이 생산해서 쌀의 나라 미국이 아닌가 싶다. 정말 분노를 유발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을 사랑하는 일에서 멀어져선 안된다는 어느 소설가의 말대로 살아가려고 억지로 노력하고 있는데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인간에게서 과연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양분된 시각에서 긴 침묵을 가지게 한다. 한편으로는 그 사건에 분노해서 미국 각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위 군중을 지켜보면서 절반쯤은 백인이 섞여있는 걸 보고 그래도 아직은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이 사건과 관련해 12살 된 흑인 소년이 부른 노래가 화제가 되고 있다. 먹잇감으로 사냥당하지 않고 하느님께 그저 살고 싶다고 호소하는 애절한 노래다.
대학에 다닐 때 리영희 교수의 ‘전환시대의 논리’라던지, 미국이 국가 이익이라는 명분 하에 제3세계에서 취한 그들의 행위를 학습하다 보면 그들이 수행한 의도하지 않은 결과의 선행은 제쳐두고, 순수했던 젊은 대학 지성인이라면 반미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고 그들을 신뢰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초중고의 반공교육이 끝나고 대학교만 들어가면 70, 80년대엔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한국 근현대사를 학습해 본 대학생이라면 학생 운동권의 주의 주장에 일견 동조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세계의 존경을 받을 만한 나라인가, 코로나 사태를 대처하는 그들의 태도나 대응을 보면 의문이 든다. 이번 미국 백인 경찰의 체포 과정에서 벌어진 흑인 압사 사건을 대처하는 그들의 자세를 보면 너무 참담하고 슬픈 일이다. 며칠을 뉴스에서 그 사건을 다루는 것을 지켜보면서 과연 미국을 한자 뜻 그대로 아름다운 나라로 계속 인식해야만 할까 인류애적인 관점에서 분노가 치민다.
고교시절에 대학 입시를 준비하면서 독해 예문으로 성문 종합 영어에 예시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명 연설문인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I have a dream)”란 글이 생각났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그들이 미국의 흑인 사회에 저지르는 잔혹한 인종 차별적인 상황과 폭력 행위들을 지켜보면서 인류애적인 보편적 감정과 함께 부끄러움은 모두 우리의 몫이 되고 만다.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영화 ‘그린북’(2019)의 배경인 1960년대 초반과 반세기가 흐른 지금도 별반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You never win with violence. You only win when you maintain your dignity."
(폭력으로는 절대 이기지 못합니다. 품위를 유지할 때만 이길 수 있는 겁니다.)
Dr. Don Shirley (영화 ‘Green Book’ 주인공)
지금 이슈가 되고 있는 위안부 할머니의 참혹한 트라우마를 만들었던 이웃나라 일본을 바라보는 안타까움과 지금 동맹국 미국이란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뿌리 깊은 인종차별을 바라보는 분노의 시선이 왜 같은 선상에서 맥락을 함께 하는지 깊은 사색이 필요할 것 같다. 늘 그들 중 일부의 사람들이라고 위로는 해보지만 백 년이 다 가도록 변하지 않는 그들의 태도와 대응을 바라보면, 과연 앞으로 또 다른 백 년 안에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꿈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싶다. 미안하지만 그들의 국력이 쇠퇴해 가고 있는 시점에서 나타나는 ‘마지막 발악’이 아닐까 의심해 본다. 지금의 지구촌 환경에서는 초강대국인 미국의 불행은 곧 세계의 불행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동의하지는 않지만 세계의 떠오르는 리더십인 중국을 두려워하고 견제하는 것이 우선순위가 아닌, 그들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쇠약해지고 있는 글로벌 리더십의 붕괴 원인을 내부에서 먼저 찾아보아야 한다. 늘 망하는 나라는 외부의 침략보다는 내부의 적으로부터 망하는 것이 역사적 사실에서 많은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지금 이슈가 되고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있게 한 원인도 결국은 우리의 근대사를 돌아보면 나라를 팔아먹은 내부의 적인 친일파들로부터 시작되었다. 세계를 리딩하고 있는 일본, 미국 두 나라는 인류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고 새로운 리더십으로 재무장하고 더욱더 분발해야 될 것이다. 그의 명복을 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의 네 자식들이 이 나라에 살면서 피부색으로 평가되지 않고 인격으로 평가받게 되는 날이 오는 꿈입니다.
(I have a dream that my four little children will one day live in a nation where they will not be judged by the color of their skin, but by the content of their character.)
어둠으로 어둠을 몰아낼 수는 없습니다. 오직 빛으로만 할 수 있습니다. 증오로 증오를 몰아낼 수는 없습니다. 오직 사랑만이 그것을 할 수 있습니다.
(Darkness cannot drive out darkness only light can do that. Hate cannot drive out hate only love can do that)